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또 다시 '정경유착' 불명예 쓸 것인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또 다시 '정경유착' 불명예 쓸 것인가
  • 정종석
  • 승인 2020.09.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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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면 절대적으로 안 돼...여당 집회 '집권 20년' 발언은 치명적인 설화이자 오점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한국산업은행 회장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총재로 불렸다. 그때만 해도 총재들은 대부분 힘있는 재무부 출신 관료 출신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등장한 이근영·엄낙용·정건용·유지창·김창록 총재가 대표적 모피아’(재무부+마피아의 영문 이니셜 합성어)들이다.

총재가 회장’(금융지주 회장)으로 바뀐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이다. 민영화를 명분 삼아 산은법을 개정했지만, 2015년 들어 조직이 옛 체제로 돌아가면서 민영화는 실험에 그치고 말았다. 조직 형태가 금융지주로, 총재란 직함이 회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산업은행 총재와 회장 가운데 3년의 임기를 제대로 마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대부분이 검찰수사 등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고 평균 재임기간도 임기의 절반인 18개월에 그쳤다.산업은행의 주인은 정부다. 인사에서 정부의 입김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지분을 다 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산업은행 수장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당장 이 회장 이전에 이름이 같았던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도 중도하차했다.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 회장으로 임명된 지 17개월 만에 임기 15개월을 남겨두고 물러나면서 역대 산업은행 수장들과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앞서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출범하자 당시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는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사퇴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김창록 전 회장,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강만수 전 회장이 물러났다.

물러나는 뒷모습도 대부분 좋지 않았다. 강만수 전 회장은 구속돼 20185월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았다. 대통령 경제특보와 산업은행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홍기택 전 회장은 서별관회의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발언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B) 부총재에서 물러났다.

이같은 흑역사를 쓴 것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회장의 권한과 위상이 그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산은은 대출·투자·보증 등 산업자금의 공급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산은 회장은 산업과 기업의 지원 및 구조조정을 맡은 막강한 자리다. 그가 휘두르는 칼의 방향에 따라서 거대 기업이 살거나 죽는 등 경제와 산업계에 엄청난 파장과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기업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칼잡이'나 다름이 없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2일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 참석해 건배사를 자처했다. 건배사로 이 회장은 “(이 대표가 한 말 중) 저에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말 중 하나는 우리가 20년 (집권)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라며 “민주 정부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놓으면 그게 얼마나 빨리 허물어지는지 봤기 때문에 절실한 심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동걸 회장, 2017년 5월 대선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캠프에 합류해 경제정책 짜는 데 기여

이어 “이 자리를 빌어서 ‘이해찬’하면 열심히 하자는 취지에서 첫째는 ‘가자’ 말씀드리면 모두가 ‘20년’ 말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당 의원이라면 몰라도 적지 않은 참석자들이 깜작 놀란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여당 소속 의원이 아닌 국책은행 수장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제 발전을 위해 어느 곳보다 균형과 객관성이 필요한 국책은행의 수장이 특정 정당의 장기집권을 찬양했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아울러 그가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 검증이 아닌 정치적 배경 덕분이라는 것을 이 회장 스스로가 입증한 격이라는 비난도 일었다.

"가자, 20년" 건배사가 논란을 일으키자 이 회장은 "정치 원로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고 뒤늦게 해명하기는 했다. 문제는 금융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면 절대적으로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회장은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우리나라 금융계의 중요한 직책에 있는 그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탓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요하는 게 금융인데 진영논리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공격의 소재를 자기 스스로 제공하고 말았다는 비판이다.

지난 2017년 9월 11일 취임한 이 회장은 최근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10일 정부가 연임을 결정하면서 이 회장은 2023년 9월10일까지 산업은행을 더 이끌게 됐다. 산은 회장은 별도의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산은에서 연임에 성공한 사례는 지난 1950년대(구용서 초대 총재)와 1970년대(김원기 총재) 각각 한차례, 1990∼1994년 이형구 총재(25∼26대)가 연임 성공 이후 26년 만에 이동걸 회장이 성공했다.

산은 회장 자리는 청와대의 승인으로 직이 유지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연임에 대한 감읍(感泣)의 표시였을까. 아니면 여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었던 것일까. 권위와 무게가 있는 국책은행 수장의 발언이라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다. 단순히 실언을 넘어서 평소에 그가 여권과 일심동체의 심리를 유지하며 매우 정치지향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회장은 2017년 5월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캠프에 합류해 경제정책을 짜는 데 기여했다. 이에 따라 애초 금융위원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이동걸이 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하자 낙하산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는 201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저는 전문성을 갖춰 낙하산이 아니다”며 “정권의 철학을 공유하는 것과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원칙주의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그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은산분리 원칙을 주장했고 그를 설득해 보려던 대기업의 회유나 공격에도 절대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산은 회장이 된 뒤에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원칙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대쪽같은 성격이란 평가도 많다.

3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야...산은 회장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깨닫고 자중하며 처신해야

그러나 그동안 이 회장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연임 결정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국회와 감사원 등을 통해 산은에 대한 각종 의혹과 비리들이 수면위로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특혜 논란부터 갑질이나 공금 사적 유용 등까지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국적은행의 모럴해저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산은 임직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와 이로 인한 내부 비리도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산은은 퇴직자가 설립한 업체가 포함된 컨소시엄에 4년에 걸쳐 83억원 규모의 영업점 경비용역 계약을 부당하게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다음 달 열릴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에선 산은에 대한 집중공세가 벌어질 전망이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이번 기회에 산은의 각종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강력한 조치를 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감에서는 이 회장의 ‘20년 집권’ 발언도 다시 야당 의원들의 성토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이 있다. ‘외밭에서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머리에 쓴 관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이 회장은 공식석상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등 할 말은 하는 성격으로 전해진다. 학자 출신으로 자존심이 매우 세고 비판에 매우 민감하다는 얘기도 많다. 언론과 소통에도 활발하다. 산업은행 회장으로 취임한 뒤 여러 차례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민감한 현안을 놓고 의견을 거침없이 밝혔다. 다소 적나라한 표현도 자주 쓰는 편이다. 다만 자기 할 말만 한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산업은행을 이끄는 수장이 하기에 부적절한 발언도 여러 차례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 회장의 이번 ‘20년 집권’ 발언은 때와 장소를 분간치 못한 설화(舌禍)이자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스스로 원칙주의자이면서 대쪽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번 일로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말해 주고 싶다.

산은 회장은 결코 쉽지 않은 자리다. 재임 시절엔 정부 입김 아래 산업·기업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휘두르지만, 대부분 말로가 좋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커진 권력을 오남용하거나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산은 회장(총재) 9명 가운데 6명이 검찰 조사를 받거나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른바 ‘산은 회장 잔혹사’라는 말이 나올 만 하다.

이 회장은 3년 전 취임하면서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혁신기업 지원, 부실기업 구조조정 마무리, 산업은행 경쟁력 제고 등이다. 이제 3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 산은 회장 취임 당시 한 약속을 되돌아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할 듯 하다. 국책은행인 산은 회장은 다른 금융지주 회장처럼 금융계의 황제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또 다른 정격유착의 오해를 받아서도 안된다. 산은 회장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깨닫고 자중하며 처신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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