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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상속세 부담에 기업 승계 '비틀'...우리가 외국보다 선수쳐야
세계 최고 상속세 부담에 기업 승계 '비틀'...우리가 외국보다 선수쳐야
  • 권의종
  • 승인 2020.11.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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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 낮춰달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라!" 기업들 ‘비명’...남아남을 기업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 상속세 뿐 만 아니라, 증여세, 소득세, 재산세 등 관련 세제 전반에 대한 심층 분석 필요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후 상속세 논의가 뜨겁다. 2018년 LG그룹 구광모 회장이 9,000억원 넘게 상속세를 부담하게 된 데 이어, 지난 1월 롯데그룹이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로 4,0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떠안게 되면서 상속세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삼성 일가가 이 회장의 삼성그룹 지분을 물려받을 때 부담하게 되는 상속세는 규모 면에서 이들 재벌가와 비할 바 아니다.

상속세 부담이 가혹하다고 기업들이 아우성친다. “징벌적 상속세가 사망선고처럼 들린다.” “두 번 상속하면 회사가 사라진다.” “상속세를 낮추는 대신 차라리 법인세를 더 내게 하자.” 불만의 목소리가 여간 크지 않다. 세 부담이 상속 재산 감소에 그치지 않고 경영권 승계를 어렵게 해 기업가 정신을 훼손한다는 항변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기업들은 사회적 역할을 다하면서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상속세 합리화’를 원한다. 세율을 내리거나,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capital earning tax)로의 전환을 바란다. 자본이득세는 상속이나 매각 등 자산을 통해 이득을 얻을 경우, 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 기업 승계 시점에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으나, 주식, 채권, 부동산, 기업 등 자산을 매각할 때마다 소득에 과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13개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때맞춰 보고서를 내놨다. ‘기업 승계 시 과도한 상속세 부과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전하는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50%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승계 주식 가치에 최대 주주 할증평가 20%가 더해지면 최고세율이 60%까지 높아진다. 사실상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상속세로 기업가 정신 훼손...사회적 역할 다하며 경영권 지킬 수 있는 ‘상속세 합리화’ 기대

소득세와 상속세 최고세율의 합계에서도 우리나라가 단연 우위를 보인다. OECD 국가 가운데 일본(100%)에 이어 2위(92%)다. 최대 주주 할증평가까지 적용하면 102%로 1위로 올라선다. 소득세와 상속세의 부담이 가장 무거운 것이다.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 세수 비중 또한 OECD 회원국 중에서 세 번째다.

보고서는 이건희 회장 상속을 예로 들었다. 삼성그룹 주식 가치 추산액인 18조2,000억원을 직계비속에게 상속하는 경우 부담하는 상속세를 국가 별로 비교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실효세율이 58.2%로 가장 높다. 일본(55.0%) 미국(39.9%) 독일(30.0%) 영국(20.0%)의 수준을 능가한다. 캐나다는 16.5%의 실효세율을 부담하고, 호주와 스웨덴은 상속받은 자산을 추후 처분할 때까지 과세가 미뤄지는 자본이득세 적용에 따라 상속할 때 세금이 없다.

나라에 따라 상속세액이 달라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이 우리나라에서 주식을 상속받으면 10조5,900억 원을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 미국에서 상속했다면 7조3,000억 원, 독일에서는 5조5,000억 원만 내면 된다. 호주나 스웨덴은 상속받은 사람이 주식을 처분할 때 과세하기 때문에 당장 내는 세금이 없다.

상속세 부담으로 경영권을 넘긴 사례를 보고서가 적시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제조업체였던 쓰리세븐은 2018년 150억 원의 상속세 부담에 지분 전량을 매각한 뒤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다. 역시 세계 1위인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는 50억 원의 상속세 부담을 이유로 2017년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밀폐용기 생산업체인 락앤락도 상속세 부담을 고려해 2017년 말 홍콩계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했다.

기업 승계를 ‘부의 이전’으로만 보면 곤란...기술력·경쟁력 이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함이 마땅

일각에서는 반대도 있다. 국내 재벌 등 일부 기업들에나 적용되는 최고세율이 높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상속세가 기업 존속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라는 시각이다. 상속세의 근본 취지가 '부의 재분배'에 있음을 힘주어 말한다. 실상 파악이 어렵지 않다. 현행 최고상속세율 60%을 적용해 보면 대략적 판단이 가능하다. 두 차례 상속이 이뤄지고 나면 주주 지분이 30% 이하로 뚝 떨어진다. 안정적 경영이 힘들다.

상속 지분으로 상속세를 내야 하는 기업주로서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기업사냥꾼이나 적대적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될 소지가 커진다. 경영권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1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이 나오기 힘든 현실도 이런 시대착오적 상속세 구조와 무관치 않다. 기업 승계를 단순한 부의 이전으로만 바라보면 곤란하다. 기업이 장기 축적한 기술력과 경쟁력을 이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장단기적 치유책이 요구된다. 우선 현행 상속세율의 적정성부터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 아울러 상속세 뿐만 아니라, 증여세, 소득세, 재산세 등 관련 세제 전반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 최대 주주 할증과세의 존속 여부, 기업 승계와 관련한 상속세 폐지 및 자본이득세 도입도 숙고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의 활성화, 대기업으로의 성장 등 산업생태계의 선순환 문제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상속세 완화로 기업 부담을 덜어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글로벌 전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국내 기업에 세제 지원이 절실하다. 유리한 대접은 못 해줄 망정 불리한 대우를 해서는 비교우위 확보가 어렵다. 경제의 핵심 주체인 기업의 경영활동을 돕는 일이라면 되레 우리가 외국보다 선수라도 쳐야 한다. 이번 상속세 논의가 세제 발전의 실마리가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기업처럼 대놓고 말은 안 해도 국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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