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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부러운 이유(1) 조지 워싱턴 등 존경하는 정치지도자 즐비
미국이 부러운 이유(1) 조지 워싱턴 등 존경하는 정치지도자 즐비
  • 민계식
  • 승인 2021.04.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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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계식 칼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하늘을 원망하고, 이탈리아에 가면 조상을 원망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미국은 땅덩이도 넓거니와 옐로스톤과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 자연의 수려함에 천연자원의 풍부함까지 더해 천혜를 누리며 세계의 패권 국가로 군림하고 있고, 이탈리아는 유서 깊은 유적들을 찾는 관광객들이 뿌리고 가는 돈만으로도 잘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부러운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은 동서양의 문명국보다 짧기는 하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99)을 비롯해 국민이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정치지도자가 즐비하다.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D.C.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워싱턴이 수도는 아니었다. 1789년 연방정부가 수립됐을 때의 수도는 뉴욕이었고, 워싱턴 대통령도 이곳에서 취임했다. 1790년 수도를 필라델피아로 옮긴 워싱턴 대통령은 1791년 허허벌판이던 현재의 워싱턴D.C.를 새 수도로 정하고 국제공모전에 당선된 설계를 기반으로 1792년 수도 건설에 착수해 1800년 완공했다. 백악관은 워싱턴에 처음 세운 건물이며,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부터 지금까지 220년 넘게 미국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로 쓰이고 있다.

계획도시인 워싱턴의 중심에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란 공원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워싱턴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워싱턴기념탑 주위에는 50개 주(州)를 뜻하는 성조기 50개가 펄럭이며 50개 주가 워싱턴을 중심으로 뭉쳤음을 상징하고 있다.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미국처럼 수도의 명칭을 특정인의 이름으로 정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워싱턴 대통령이 그만큼 국민의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워싱턴은 버지니아주의 작은 농장주 가문에서 태어났다. 십대 초반에 아버지를 잃고 형과 함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 때에는 수줍음이 많고 용감했으나 약간 경박한 편이었다고 한다. 워싱턴은 북미대륙의 패권을 놓고 다툰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1754~63) 때 버지니아주 민병대 장교로 영국 편에서 싸웠다. 1758년 제대한 워싱턴은 이듬해 결혼했고,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농장주로서 평온한 삶을 살며 인품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고 한다.

역사가들의 인물평에 의하면 워싱턴은 부분보다는 전체를 볼 줄 알고, 외양보다 본질을 파악할 줄 알며, 판단을 내릴 때에는 균형을 우선시했고, 무엇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무겁게 여겼다. 젊은 시절의 경박함에서 벗어나 신중해졌고, 돈이나 권력 같은 세속적 욕망에 초연했다. 자연스럽게 워싱턴의 명성은 높아졌고 주변의 신망은 두터워졌다.

독립전쟁(1775~83)이 일어나자 13개 주의 대표들은 임시정부격인 ‘대륙회의’를 구성하고 대륙군, 즉 독립군을 창설한 뒤 워싱턴을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민병을 중심으로 조직된 식민지 군대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대영제국의 정규군을 이기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대륙군은 워싱턴의 통솔 아래 불가능해 보이던 전쟁을 지속해 마침내 승리를 쟁취했다.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대륙회의와 대륙군 총사령관인 워싱턴의 관계는 미묘했다. 13개로 분열된 식민지에서 대륙군은 유일한 전국 조직으로 무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대륙군이 승리를 거둘수록 워싱턴 총사령관의 명성과 권위가 높아져 갔으므로 대륙회의는 워싱턴 휘하의 군대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다. 세계 역사상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나 인기 있는 군인과 강력한 군대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상황을 초래했으며, 민주주의 경험이 전무한 독립전쟁 당시의 미국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 우려 때문에 대륙회의는 종종 워싱턴을 전폭 지원하는 데 주저하곤 했다.

영국군이 항복하고 1783년 파리평화조약으로 전쟁이 끝나자 세상의 이목이 다시 워싱턴에게 집중되었다. 감히 누구도 워싱턴에게 대륙군 총사령관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많은 사람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에게 황제가 될 것을 간청하는 형편이었다. 당시 전 세계는 황제나 왕의 시대였으므로 무리도 아니었다.

워싱턴은 그러나 독립의 대의와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잊지 않았다. 그는 “제게 부여된 임무를 끝마쳤으니 사직서를 제출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사령장을 대륙회의에 반납하고 고향인 버지니아주 마운트버넌으로 은퇴해 버렸다. 국민이 선출한 문민정부가 군대 위에 존재해야 한다는 공화국의 이상과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모든 것을 바쳐 위기를 해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국가지도자의 참된 자세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대륙회의는 은퇴한 워싱턴을 가만 놔두지 않았고, 그는 미국을 위해 계속 봉사해야 했다. 제헌의회 의장으로 미국 헌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초대 대통령으로 미국이란 나라를 만드는 데 헌신했다. 대통령은 임기 4년에 한 번만 연임이 가능하다는 헌법을 만들고, 두 번째 임기를 마치자 종신 집권을 권유하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미련 없이 물러났다.

권력을 잡으면 부패하고 타락하기 쉽다. 그게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워싱턴은 황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일반 시민의 길을 택했다. 워싱턴의 행동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심어 주었다. 미국인들은 워싱턴의 위대함을 알고 있으며, 사후에 그를 신의 경지에 올려놓고 국부로 추앙하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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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민계식 ( minksdr@gmail.com )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석좌교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자상 수상자협의회 부회장
(전) 국제 선박해양 연구협회 부회장
(전) 현대중공업 사장, 부회장, 회장
(전) 한국 로봇산업협회 회장, 한국 태양광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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