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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윙’ 부동산 대책... 전(全) 공직자 재산등록으로 투기 잡힐까
‘오버스윙’ 부동산 대책... 전(全) 공직자 재산등록으로 투기 잡힐까
  • 권의종
  • 승인 2021.04.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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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과(過)하면 탈'이 나는 법...대책이 크고 강하면 효과가 클 걸로 여기는 ‘오버스윙’ 교훈으로 삼아야
정책 추진,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자세로 위험 요소를 미리미리 파악해 상황에 맞은 최적의 대안 추출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과(過)’자가 붙어 좋은 단어가 없다. 접두어로 들어가면 좋던 이미지가 정반대로 돌변한다. 속도가 빠르면 과속이 되고 소비도 지나치면 과소비가 된다. 의욕이 과하면 과욕이 되고 음식물 섭취도 많으면 과음과 과식이 되고 만다. 물도 그릇에 차면 넘치고, 비타민도 과용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과유불급이다.

정부 정책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이다. 작은 일을 크게 불려 떠벌려 대응할 때가 드물지 않다. 사안과 비교해 대책이 지나친 경우가 흔하다. ‘바늘만 한 것을 몽둥이만 하다’고 부풀려 말하는 침소봉대가 잦다. 좋게 보면, 정부가 일을 잘해보려는 ‘적극 행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국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전시 행정’의 노림수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개발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벌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터졌다. 정부 대책 중의 하나가 공직자재산등록 개선이다. 현재 4급 이상 고위직에 한정된 대상이 전(全) 공직자로 확대된다. 집값 폭등에 LH 사태까지 겹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이해된다. 과도한 측면도 없지 않다. 9급 공무원까지 싸잡아 잠재적 투기자로 모는 것 같아 불길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까 염려된다.

공무원들의 속이 편할 리 없다.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불만이 상당할 것이다. 업무상 취득한 정보가 아니라 정상적 방법으로 집과 땅을 장만한 애먼 사람까지 투기꾼으로 엮일까 걱정할 수 있다. 공무원은 부동산을 취득하면 안 된다는 경고로도 들릴법하다. 공복(公僕)도 사람이고 국민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가난한 자는 없는 것도 창피하고 서러운데...절대적 빈곤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두 번 울어야

말 못 할 고민은 따로 있어 보인다. 사생활 침해다. 개인별 재산 상황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유쾌하지 못하다. 재산이 많아도 걱정이다. 공직자가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에 대한 의아스러운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시기와 질투, 비난거리가 될 수 있다. 재산이 없는 자의 고통은 이에 비할 바 아니다. 무능의 소산으로 비치는 게 창피스럽다. 가난한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데 절대적 빈곤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두 번 울어야 한다.

전(全) 공직자 재산등록이 간단치 않다. 업무량이 방대하고 절차가 복잡할 수 있다. 어쩌면 이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관을 세워야 할지 모른다. 상당수 인력과 막대한 비용 지출이 수반될 것이다. 등록대상을 늘린다고 투기가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고위공직자 대상의 현행 제도 또한 제구실을 못 해 왔다. 지난 10년간 재산등록 공직자 130만 명 중 재산형성과 관련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공직자 비위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투기 방지를 위한 과잉 대책은 이 말고도 또 있다.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다. 정부가 2020년 9월 부동산 시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불법행위 등을 포착·적발해 신속히 단속·처벌하는 상시 조직을 만든다고 밝혔다. 가칭 ‘부동산감독원’이다. 연이은 대책에도 부동산 시장 과열이 잡히지 않자 궁여지책으로 관리·감독기구 신설까지 구상했다. ‘감독원’이라는 명칭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추후 ‘거래분석원’으로 바꿨다.

지나친 시장 통제·감시와 개인정보·재산권에 대한 침해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자 논의가 수면 아래로 잠수했다. 불씨가 꺼진 건 아니다. 지난달 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LH 사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투기 의심 토지 담보대출은 신설 예정인 부동산거래분석원에 통보해 대출을 통한 무분별한 토지투기를 차단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정책 추진에서 적극성 발휘는 필수적...다만, 상황에 걸맞은 대안 추출의 진중함이 더 중요

대책이 큰 만큼 설명도 거칠다. 대검은 “업무상 비밀을 이용하거나 개발정보를 누설하는 등 공직자 지위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범행을 중대한 부패 범죄로 간주, 원칙적으로 전원 구속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범행은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고 적극적인 양형 부당 항소를 통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되도록 무관용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말이 설명이지 위협에 가깝다. 재수 없이 걸려들었다간 뼈도 못 추리게 생겼다.

과잉조치는 금융정책에서도 눈에 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설명의무’가 규정되었다. 금융 창구가 뜻밖의 혼란에 빠졌다. 금융회사들이 만일의 상황에 대비, 상품설명서를 모두 읽어준 뒤 소비자가 동의하는 내용을 녹취하고 나섰다. 은행원이 설명서를 줄줄 읽고 소비자는 건성으로 듣다 동의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의 상품 이해도를 높인다는 취지가 고객 불편만 키우고 있다.

정책 추진에 있어 적극성 발휘는 필수적이다. 다만,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자세로 위험 요소를 미리미리 파악해 상황에 맞은 최적의 대안을 추출하는 진중함이 더 중요하다. 작은 상처에는 작은 치료가 유효하다. 과잉진료는 회복을 더디게 하고 후유증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전문 의료인들의 이구동성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런 법문 한 소절이 나온다.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하여 팽팽하고 느슨함이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여기서 ‘공부’라는 단어를 ‘정책’으로 바꿔보면 의미가 새롭다. 대책이 크고 강하면 효과가 클 걸로 여기는 ‘오버스윙’의 정책 당국에 교훈으로 전한다면 너무 당돌한 훈수일까.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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