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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불과 광화문 촛불...선거패배 후에도 민심 못읽는 정권
그리스의 불과 광화문 촛불...선거패배 후에도 민심 못읽는 정권
  • 권의종
  • 승인 2021.05.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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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규제 완화한다고 상황 반전될까... 민심의 풍향 잘 가늠, 난국 타개의 세찬 불길 내뿜어야
발등의 부동산 비롯해 방역, 일자리, 조세, 교육, 저출산·고령화 등 새로운 비전과 전략 내놔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그리스의 불(Greek fire). 들어보셨나요. 천년 제국 동로마를 지켜낸 수호 병기를 말한다. 액체 화약 무기로 도자기에 액체 화학물을 담아 투석기로 쏘거나, 관을 통해 목표물에 발사해 적함을 불태웠다. 자세히 알려면 역사를 거슬러 살펴야 한다. 5세기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서쪽이 패권을 잃어 가도 동로마 황제는 서로마를 도울 수 없었다. 이민족들의 침입에 간신히 동방 지역에서 황제권을 수호할 뿐 서로마 탈환은 꿈도 꾸지 못했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야 옛 서로마 영토를 회복한다. 그러나 동로마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에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국력을 지나치게 소모한다. 페르시아 역시 로마와의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651년 이슬람 침입으로 멸망한다. 최강 경쟁자인 이슬람 세력의 확장에 동로마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이슬람이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대부분을 파죽지세로 정복하면서 동로마는 위기에 처한다.

674년 이슬람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한다. 이때 동로마를 지켜 낸 게 바로 그리스의 불이다. 그리스의 불을 장착한 동로마 함대는 해전에서 아랍 함대를 향해 무섭게 불을 토한다. 적 함대는 속수무책으로 불에 타 침몰한다. 이슬람교에 대한 신앙심과 약탈 의욕으로 뭉친 아랍 군대도 신무기를 당하지 못하고 679년 철수한다. 멸망 위기에 몰린 동로마는 그리스의 불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717년 이슬람은 콘스탄티노플을 또 침략한다. 이때도 그리스의 불은 위력을 발한다. 8만 군대와 1,800척 전함을 거느린 적을 잿더미로 만든다. 이슬람 세력은 다시 철수한다. 그 뒤 러시아 침략과 1108년 노르만 군대의 침략 때도 그리스의 불이 동원된다. 명실공히 제국 수호의 일등공신 역할을 해낸다. 14세기 화약이 실용화되기 전까지 이슬람 침략자에게는 공포의 무기로, 동로마군에게는 최강의 병기로 통한다.

광화문 촛불도 민심의 풍향 따라 움직여...현 정부 초기에는 순풍, 4·7재보궐선거에서는 역풍

그리스의 불도 약점이 있었다. 액체 분사 무기다 보니 바람의 방향에 영향을 받았다. 바람을 등지고 싸울 때는 화력이 세졌으나, 바람과 맞설 때는 되레 아군 쪽으로 불길이 역행했다. 그리스의 불을 결정적으로 무력화시킨 건 대포였다. 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대포가 발명되면서 근접전의 효용이 떨어졌다. 수명을 다한 그리스의 불은 동로마 멸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제조 방법조차 전해지지 못한 채.

대포 관련 일화가 흥미롭다.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찾아 대포 제작을 제의한다.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거절되자, 이번에는 오스만제국의 매흐메트 2세에 접근한다. 우르반 요구 금액의 4배가 지급되고 대포가 제작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동 대포는 콘스탄티노플이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3중 성벽을 뚫는다. 1453년 천년 역사의 동로마제국은 오스만제국에 패망하고, 세계 역사는 고대에서 중세로 접어든다.

그리스의 불은 광화문 촛불을 연상하게 한다.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청계천에서 열렸다. 수많은 인파가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하며 정권 퇴진을 외쳤다. 23차례의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부산, 울산, 전주, 제주 등 전국 대도시에서도 집회가 개최되었다.

집회-탄핵-선거로 이어지며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실현했다. 정치 변화를 시민이 주도했다. 깨어 있는 다수 시민이 폭력을 수반하지 않은 평화적 시위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부당한 권력을 심판하고 추방함으로써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정치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현실과 유리된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보고...경제와 민생 살리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 내놔야

불길은 바람에 좌우된다. 바람은 불규칙하게 부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지역 간 기압차에 의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한다. 광화문 촛불 역시 민심 풍향에 따라 움직인다. 현 정부가 출범하고 한동안은 순풍에 돛을 단 듯 했다. 대통령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각종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연전연승을 거뒀다. 민심의 바람은 한 방향으로만 불지 않았다. 4·7 재보궐 선거에서는 역풍으로 돌변, 여당에 참패를 안겼다. 성난 민심의 불길이 뜨거웠다.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선거 패배와 민심 이반의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문제가 꼽힌다. 실상이 그러하다. 국민 다수가 ‘부동산 우울증’에 걸려 있다. 집 있는 사람은 무거운 세금에, 집 없는 자는 급등한 전·월세금에 허리가 휜다. 평생 벌어도 집 한 칸 장만은 커녕 전·월세금 대기도 벅찬 현실이다. 탄식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희망의 사다리가 끊긴 젊은이들이 ‘영끌’ 부동산, ‘빚투’ 주식, 가상화폐 투자에 올인하며 몸부림치고 있다.

불안한 눈으로 봐서인지,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민심의 향방을 읽어내지 못하는 듯 하다. 내 집 마련이 꿈인 국민에다 대고 “월세도 살 만하다” “공공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동문서답을 이어간다. “기존의 부동산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며 마이웨이를 고수하려는 모양새다. 도대체 무슨 미련이 있어 개혁과 쇄신을 망설이며 엉거주춤하는지. 복장을 찧을 노릇이다.

일부 규제를 완화하는 미세 조정 정도로 달래질 민심이 아니다. 그리스의 불을 잠재웠던 ‘대포 급’ 조치가 나와도 시원찮을 판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책들을 서둘러 손봐야 한다. 부동산 만이 아니다. 방역, 일자리, 조세, 교육, 저출산·고령화 등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국민 앞에 내놔야 한다. 그리스의 불은 사라진 지 오래이나, 그마나 광화문 촛불은 아직 불씨가 살아있어 다행이다. 민심의 풍향을 잘 가늠, 난국 타개의 세찬 불길을 내뿜어야 할 때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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