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이성은 기자] 원금손실 가능성이 큰 고난도 금융상품 가입자에 적용되는 녹취·숙려 제도를 두고, 은행권이 준비 부족으로 90여 개의 펀드 판매를 중단했다.
이를 두고 은행권은 금융당국이 관련 가이드라인을 시행일이 임박해서 발표하면서, 이사회 의결과 상품설명서 개정 등에 필요한 준비기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은행은 94개(중복 포함)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판매 중단 상품은 대부분 상장지수펀드(ETF) 자산을 편입한 국내주식 파생형 증권투자신탁, 해외 채권 등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다. 해당 펀드들은 금융당국이 이날부터 녹취·숙려 제도를 적용하기로 한 고난도 금융상품에 해당한다.
숙려·청약철회 기간이 부여되면서 ELF 등 상품의 경우, 상품 상담 후 최종 설정까지 20일 정도가 소요되는 현상도 발생했다.
고난도 금융상품 녹취·숙려 제도에 따라 원금을 20% 넘게 까먹을 수 있는 복잡한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는 최소 2영업일 이상의 숙려 기간을 보장받는다.
투자자는 숙려 기간 이후 금융회사가 자체 설정한 마감 기한 내에 투자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 취소되고 투자금도 돌려받는다.
이때 고난도 상품으로 분류되면 집합투자규약·투자제안서·가입 설명서 등을 이에 맞게 구비해 금융당국에 정정신고를 해야 한다.
문제는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에 필요한 절차를 규정한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규정’이 제도 시행 1주일 전인 지난 3일에야 발표됐다는 점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시행일 이전에 신고할 수 있는 영업일은 5월 6~7일 이틀뿐이었다”면서 “이런 절차를 운용사가 완료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판매사인 은행이 이사회를 개최해서 판매 여부를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면서 불가피하게 중단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개정안에선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고난도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했다.
투자매매·중개업자들이 고난도 상품 판매 시 교부해야 할 설명서에 ‘손실 위험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 결과’와 ‘해당 상품의 목표 시장 내용 및 설정 근거’를 포함하도록 했다.
은행으로선 이미 판매하고 있던 펀드라도 고난도 금융상품에 해당한다면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상품설명서에도 일부 내용을 추가해야 판매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행정규칙이 1주일 전에 나오면서 이사회를 열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