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정치...우리시대의 신문고(申聞鼓)는 어디에 있나
분노와 정치...우리시대의 신문고(申聞鼓)는 어디에 있나
  • 장태평
  • 승인 2021.07.0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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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평 칼럼]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산업화에 일생을 바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민주화에 헌신하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얼마 전 정치 참여 일성으로 한 말이다. 공직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둘러보니 모든 사람이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는 분노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분노가 무엇인가. 화를 내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분노의 원인은 대개 억울함에서 온다. 억울함은 작거나 적절히 조절되면, 마음속에서 내부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정도가 넘치거나 내부 조절이 안 되면, 분노의 단계로 발전한다. 분노의 단계가 되면, 자신이 좌절하든지 혹은 상대방에 공격적인 상태가 되고, 때로는 사생결단하는 극단적 행동도 불사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역, 계층, 이념 등의 갈등 정도가 억울함의 수준에서 분노의 수준으로 악화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상대적으로 억울함이 많은 나라다. 억울함이 많았기에 ‘한’이라는 특별한 용어로 이를 표현하였고, ‘화병(火病)’이라는 특별한 한국식 병도 갖게 되었다. 이런 억울함의 성정은 정치적 배경과 사회적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첫째,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탈의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 1,000번에 가까운 외적의 침입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조상들은 생명과 재산을 강탈당하고, 가족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백성을 지켜야 할 권력자들은 자기들 살기에 바빴고, 백성을 외면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우리 조상들은 목불인견의 참상을 수시로 겪었고, 결국에는 나라를 잃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당한 고난과 애환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며, 그렇게 당한 억울함과 가슴에 맺힌 분노가 어찌 작다고 하겠는가.

둘째, 우리나라의 제도와 시스템에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장애인을 배려한다지만, 실제 장애인이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지만, 실제 사업을 하다 보면 대기업에 비해 크게 불리하다.

은행에서, 세무서에서, 경찰서에서 우리는 답답한 제도를 너무 많이 만난다. 억울함을 쉽게 풀기도 어렵다. 이런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주체는 바로 국가다. 국가는 사법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국민의 억울함을 적극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도 많다.

최근 군부대 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 여군들이 당국에 신고해도 사건화되지 않고, 오히려 2차 피해를 보게 된다. 근무시간에 냉대 받고, 따돌림 받고, 근무평정과 성과상여금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심지어 한직으로 인사 조치도 당한다.

당국은 은폐하기 일쑤다. 이리되면, 억울함이 아무리 절실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게 된다. 피해자들은 분노하게 되고,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발생한다. 일반 국민의 생활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다반사로 일어나선 안 된다.

옛날에도 신문고(申聞鼓) 제도가 있었고, 최근엔 청와대며 국회 등에 인터넷 청원제도를 두고 있다.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정치권도 인식하고 있다는 징표다.

어떤 정치인은 국가지도자의 3대 덕목으로 ‘억울함 해소’를 꼽은 적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사회 곳곳에 응어리진 억울함을 풀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제도와 정책을 챙기겠다고도 했다. 과거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억울함 해소 태스크포스’를 운영한 적도 있다.

요즈음 젊은 세대는 절망의 세대다. 일반 국민도 코로나 팬데믹과 산업구조의 급변으로 소득이 급감하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많다. 부동산 정책, 권력층의 부패 사건, 사정 당국의 파당성 등으로 우리나라는 분노의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공정, 정의, 공평 등의 단비가 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시대정신이라 하겠다.

여기에 조심해야 할 측면이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한민국을 불공정·불평등 사회로 규정하고 ‘억강부약(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다)’으로 “모두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흑수저임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며 강자를 억제해서 약자를 잘살게 하고, 약자의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강자를 끌어내리는 것은 하향평준화요 하향평등화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상대적 잣대는 더 많은 억울함과 분노를 조성할 뿐이다. 보통 약자는 조금 밑의 약자보다 강자이며, 강자는 그 위의 강자보다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어느 정도 이상은 모두가 강자가 되어 억제의 대상으로 전락함으로써 억울함을 당하고 분노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지는 길이다.

우리나라가 분노조절장애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국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번 대선 출마자들이 억울함과 분노 해결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풀 대상으로 강자를 세우는 것은 분노를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우리나라의 분노가 더 증가한다면, 곧바로 폭발 위험 수준까지 치달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 점을 분명히 깨닫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해 주기 바란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장태평 ( taepyong@gmail.com )

(재)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전) 한국마사회 회장
(전)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 기획재정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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