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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호 전 율산회장 '건재'...두차례 큰 위기에도 조 단위 주식부자
신선호 전 율산회장 '건재'...두차례 큰 위기에도 조 단위 주식부자
  • 이동준 기자
  • 승인 2021.08.0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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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두번째 자금위기로 센트럴시티 매각했는데도 아직도 신세계에 이어 2대 주주 위상 유지

30년 전인 19749월 율산실업이란 오퍼상으로 출발해 불과 47개월만에 14개 계열사에 8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던 '율산신화'794월 신선호 사장의 구속과 그룹 부도로 막을 내린다. 이에  대해선 여러 평가가 나온다. 박정희시대 말기 율산측 주장대로 억울(?)하게 도산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대재벌 반열에 들어섰을 수도 있다. 반면 처음부터 대우식의 무모한 기업확장이어서 도산은 필연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신선호 전 회장의 근황을 정리한다. <편집자주>

신선호 전 율산 회장

재계의 '풍운아' 신선호 전 율산그룹 회장은 현재 신세계센트럴시티의 경영고문으로 미등기임원...아들은 등기임원 부사장

[금융소비자뉴스 이동준 기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메리어트호텔, 호남선 고속버스터미널, 영화관, 대형 서점 등의 고품격 복합생활문화공간을 품고있는 신세계 센트럴시티의 최대주주는 신세계로, 지분율은 60.02%.

신세계 센트럴시티는 인근의 경부선, 영동선, 중앙선 고속버스의 기점 및 종점인 서울고속버스터미널까지 종속기업으로 거느리고 있어 이 일대는 신세계타운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신세계센트럴시티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의 2대주주는 신선호로 되어있다. 지분율은 38.14%. 신선호가 누구인가? 바로 1970년대말 율산신화로 유명했던 신선호 전 율산 회장이다. 과거 신선호의 율산(栗山)그룹은 부친 신형식(申衡植)의 호에서 연유했다. 1947년생이니 올해 벌써 74세다. 신 전 회장은 현재 신세계센트럴시티의 경영고문으로 미등기임원이다.

부인 부정애씨(74)도 같이 경영고문이다. 부씨는 조선일보 주필과 사상계 편집장으로 유명했던 부완혁씨의 딸이다. 신선호 부부의 아들 신진수씨(45)는 이 회사의 등기임원으로, 기획담당 부사장이다. 신진수 부사장과 부정애 고문은 소량이지만 각각 1,378주 및 7,303주의 센트럴시티 주식도 보유하고 있다. 신 전 회장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1.56%도 갖고 있다.

신선호 전 회장은 2013년 센트럴시티 이사회의장을 그만 두었고, 아들 신진수 부사장은 아버지 대신 이 회사 등기임원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때는 오랫동안 센트럴시티를 어렵게 키워온 신선호에 대한 신세계의 배려로 여겨졌으나, 아들까지 그후 8년동안 등기임원 부사장으로 중용해온 것을 보면 신선호 부자의 존재를 신세계도 쉽게 무시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 전 회장은 지난 42대 주주로서 196,800만원의 작년 연말배당도 챙겼다. 2019년과 2018년 연말배당은 각각 51억원 및 56억원이었다. 2대주주 치고는 적지않은 배당금이다.

2014년 재벌닷컴은 신선호 전 회장의 재산을 7,720억원, 한국 부자순위 46위로 평가했다. 대부분 이 센트럴시티 주식의 평가액일 것이다. 7년전 평가가 이랬으니 지금은 재산평가액이 그보다 훨씬 더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 전 회장이 보유한 주식수는 22,884,620. 비상장주식이어서 액면가 5천원으로 계산해도 1,144억원에 이른다. 신세계센트럴시티가 꾸준히 흑자를 내고, 보유자산, 특히 엄청난 금싸라기 땅 보유기업이란 점 등을 감안하면 장외주가도 액면가대비 10배는 훨씬 넘길 것으로 보인다. 10배라고 해도 주식평가액은 1조원이 훨씬 넘는다. 현재 스코어 조 단위의 주식부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세계센트럴시티의 경영지표 (작년말 또는 작년 연결기준 억원)

자산

이익잉여금

자본총계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36,154

15,687

22,048

2,287

406

151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신선호 회장 지분율 38%. 시가로 평가하면 1조원 훨씬 넘을 듯...2014년 재벌닷컴 평가선 7,720억원으로 부자 순위 46위


신세계센트럴시티는 서울의 금싸라기 땅인 반포동 일대 대지면적 약 17,900여평, 건물 연면적 약 87,000평의 대단위 사업부지에 세워진 복합생활공간이다. 지하철 3,7,9호선이 복합환승되고, 전국 지방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버스가 운행되는 국내최고의 교통의 중심지다. 복합건물은 크게 백화점(35,000), 터미널(14,000) 및 호텔(17,100), 주차장(20,830)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속기업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2,500여개의 상가와 경기,충청,강원,경상권 45개 노선에 일 1,300여회의 고속버스가 운행하는 전국 최대의 고속버스터미널이다. 대지면적 26,351, 건물 연면적 33,487평에 달한다.

신세계센트럴시티의 작년 연결기준 매출은 2,287억원, 영업이익은 406억원, 당기순이익은 151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년말 현재 이 회사의 연결기준 자산은 36,154억원에 달한다. 이것도 자산재평가를 거의 하지않은 장부가액이다. 서울 최고 금싸라기땅의 자산재평가를 제대로 한다면 자산가액은 엄청 치솟을 것이다.

교통난 등으로 서울시가 고속터미널의 교외이전이라도 결정한다면 이 땅의 땅값은 더욱 치솟을 것이다. 재벌닷컴도 이런 미래 부동산가치를 감안해 현재 비상장사인 신세계센트럴시티의 주식가치를 평가했을 것이다.

과거 율산그룹 전경

1979년 율산 부도 당시 신 전 회장은 전 재산을 은행들에 빼앗기고 호남고속터미널 부지 18,781평과 부속건물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후 이 돈 저 돈 어렵게 끌어모아 2000년쯤 센트럴시티를 완성시켰으나 자금부담에 못이겨 지분을 대부분 팔고 2대 주주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2대 주주 자리도 이 만큼의 많은 재산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신 전 회장은 28세이던 1975년 율산실업을 창업했다. 4년 만에 계열사 14개를 거느린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지만 1979년 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센트럴시티가 들어선 서울종합터미널 부지는 매각되지 않아 재기의 발판이 됐다.

신동아 등의 보도에 따르면 율산이 서울시로부터 이 땅을 구입한 건 19774. 평당 7만원, 13억여 원을 지불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 터미널 부지로 묶여 있어 용도조차 제한됐던 이 곳을 신회장은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1977년 율산이 이 땅을 매입할 당시에는 서울시의 환지 확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율산측으로 소유권이 넘어가지 못했다. 8210월 환지확정이 됐음에도 서울시는 여전히 소유권을 넘기지 않았다. 애초 서울시가 율산에 터미널 부지를 매각할 때, 용도를 터미널로 못박고 계약서에 일정 기간 내 터미널을 건축하지 않을 경우에는 계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아놓은 때문이다. 고속버스터미널을 완공해야만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채권단으로서는 멀쩡한 땅을 두고도 팔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서울시가 붙여놓은 복잡한 조건이, 결과적으로 신선호 재기(再起)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두번의 큰 위기 겪었어도 신선호 전 회장은 현재 1조원에 육박하는 대재산가...언론과의 모든 인터뷰 사양 등 '은둔의 기업인'

부지 매각이 여의치 않자 채권은행단은 복합건물을 신축해 그 수익금으로 부채를 갚겠다는 율산측의 제의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채권단 설득과 정부 허가 절차를 거쳤지만 건물 신축에 돈을 댈 전주(錢主)를 찾는 일도 큰 난관이었다.

은행돈을 빌리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막대한 채무에 시달리는 부실기업의 손을 선뜻 잡아줄 은행은 어디에도 없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뜻밖의 곳에서 찾아졌다. 롯데백화점에 업계 선두 자리를 빼앗기고 절치부심 중이던 신세계백화점이 강남 요지의 터미널 부지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이 임대보증금 쪼로 미리 준 선납금 560억 원과 지하철 보상금 300억 원을 밑천으로 이러저리 돈을 꾸러다녀야 했다. 다행히 IMF 구제금융사태가 역설적이게도 신회장과 센트럴시티를 도와주었다. 인력 부족과 자금 부족이란 두 가지 난제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 호남 출신인 신 전 회장은 마침 정권을 차지한 DJ정부로부터도 직간접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 짓는 데 든 비용은 모두 4,500억원. 이 중 대부분이 빚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호텔 백화점 상가 등을 완성해 영업에 들어갔다. 많은 언론도 이때 신선호의 화려한 부활이라고 축하해줬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기대만큼 영업이 잘되지 않았다. 이곳저곳서 빌린 돈의 원리금 상환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못가 또 1차 부도가 나고말았다.

자기 돈 거의 없이 대규모 복합단지를 지으려다 보니 생긴 무리수였다. 방법은 센트럴시티의 보유지분 다수를 파는길 밖에 없었다. 이후 센트럴시티는 애경그룹을 거쳐 통일교로 넘어가는데, 2012년 문선명 교주가 죽고 통일교가 어수선할 때 신세계그룹이 센트럴시티 지분 60%를 통일교에서 사들였다. 신세계는 이듬해 서울고속터미널까지 사들여 이 일대를 신세계타운으로 만들었다.

신선호에 대해선 여러 평가가 있을수 있다. 박정희시대 말기 율산측 주장대로 억울(?)하게 도산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대재벌 반열에 들어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우식의 무모한 기업확장이어서 도산은 필연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아무튼 2번의 큰 위기를 겪었음에도 신선호 전 회장은 현재 1조원에 육박하는 재산가로 살아남았다. 당초의 욕심에 차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실패라고 보기는 어렵다.재기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무엇보다도 하늘이 도와줘 채권단이 고속터미널 부지를 처분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는 신 전회장이 출옥후 10년 이상 낭인생활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텐데도 이 땅을 처분하지 않고 독자회사 설립으로 끝까지 버텼다는 점이다. 셋째는 단지 완공후에도 자금난으로 보유 지분을 대거 팔아야 했지만 38% 정도의 지분은 팔지않고 끝까지 버틴 것이 오늘날을 만들어 주었다고 볼수 있다.

그는 27세였던 75년 율산실업을 창업해 불과 4년만에 14개 계열사를 보유한 재벌로 성장시켜 한때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통했으나 70년대 말 거액의 부도를 내고 좌절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의 삶은 드라마화돼 한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수십억대 배당을 받으면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끈 신 회장은 '은둔의 경영인'으로 불린다.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라고 한다. 그는 지난 2011년 5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나에 대한 얘기에 관심 없고 할 말도 없다. 죽은 사람으로 해달라"며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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