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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후진적 관치금융의 망령...멀고 먼 경제선진국의 길
아직도 후진적 관치금융의 망령...멀고 먼 경제선진국의 길
  • 권의종
  • 승인 2021.08.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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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란 속이라도 정책은 취지와 목적이 좋고 효과가 높아야...추진 과정에서의 정당성 확보 또한 중요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에 정부 간섭이 잦다. 대한민국 금융사는 관치의 역사다. “관(官)은 치(治)하라고 있다”며 건방을 떨었다던 관료는 물러난 지 오래이나, 관치금융의 관행은 아직 건재를 과시한다. 관치금융이란 정부가 금융을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날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정부가 금융기관을 손안에 잡아 쥐었다.

1961년. 군사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하고 ‘한국은행법’, ‘은행법’을 개정했다. 금융을 행정부에 예속시킴으로써 금리 결정, 대출 배분, 예산과 인사 등에 일일이 간여했다. 1980년대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폐지되고 시중은행의 민영화가 이뤄졌으나, 감독권 등을 통해 여전히 정부가 금융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관치금융에 본격적 비판이 제기된 것은 IMF 사태 이후다. 외환위기로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는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정경유착에 의한 자의적인 금융정책과 간섭이 경제 회생의 걸림돌로 지적되면서 전면적 금융개혁이 요구되었다. 정부는 은행의 인사와 대출에 관련된 사항을 자율화하는 등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금융정책으로 관치금융의 폐해를 없애기로 했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정부가 금융기관에 사사건건 시시콜콜 간섭을 다반사로 해대고 있다. 그런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금융위원장이 금융 관련 기관장들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출금을 갚지 못한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 사면’을 논의했다. 말이 좋아 논의이지 지시임이 분명했다. 대통령이 “빚 상환 도중 연체가 생긴 개인을 위한 신용회복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대응의 성격이 짙었다.

정부가 금융을 장악하는 ‘관치금융’...금리 결정, 대출 배분, 예산과 인사 등에 일일이 간여

앞으로는 코로나19 기간 중 발생한 개인이나 개인사업자의 소액 연체가 전액 상환되었으면 해당 연체 이력을 공유하지 않기로 했다. 신용평가(CB)사가 신용점수를 활용할 때 연체 이력을 활용하는 것도 막기로 했다. 관치의 효험은 빠르기도 하다. 미리 짜고 준비라도 했던 듯 간담회가 열린 바로 다음 날 구체적 실행 방안이 나왔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등 전 금융권 협회와 신용정보원, 신용정보회사 등 총 20개 사가 모여 ‘코로나19 관련 신용회복 지원협약’을 체결하고 나섰다. 코로나 팬데믹 발생 기간인 작년 1월부터 이달 말까지 연체가 된 2,000만 원 이하 대출금을 올해 말까지 다 갚으면 연체기록을 남기지 않겠다는 세부 방안이 전광석화처럼 발표되었다.

지금까지는 연체 이력이 있으면 신용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대출이 거절되거나 금융거래 조건이 나빠질 수 있었다. 개인 채무자가 1개월 이상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금융사는 금융협회, 신용정보원을 통해 다른 금융사들에 이런 사실이 공유되었다. ‘다중채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였다. 개인이 대출을 갚아도 수 개월간 연체 이력이 유지되어 각 금융사의 신용평가에 활용되고, 상당 기간 이자율과 대출 한도 등에서 손해를 보았다.

사면에 일리가 있다. 취지에 공감이 간다.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의 외부적 요인으로 대출을 연체했으나 다 갚은 채무자는 구제할 필요가 충분하다. 이들이 성실하게 돈을 갚도록 유도하고 재기의 기반을 다지게 하는 것은 금융정책 본연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것도 무조건적 면책이 아니라 전액 상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점에서 지원의 타당성이 한층 더 인정된다.

우려의 시각도 있다. 금융기관 신용평가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점이다. 대출금 연체가 발생해도 나중에 전액 상환만 하면 연체로 보지 않음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예상된다. 금융기관끼리 연체 정보를 공유하지 않음에 따라 다중채무자가 많아질 소지가 없지 않다. 차주의 연체 이력을 보지 못하면 실제 존재하는 리스크를 금융사가 고스란히 떠안는 문제도 생긴다.

‘코로나19 신용회복 협약’...신용평가체계 무너뜨리고, 금융지율성 훼손하는 등 역작용 초래

수익을 좇고 위험을 피하는 게 돈 본래의 속성이다. 신용도에 따라 대출 규모와 금리가 달라지는 것은 금융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이런 원리와 구조가 제대로 작동되고 유지될 때 돈의 흐름이 원활해지고 효율도 높아진다. 정부가 관치금융을 작동시켜 이런 물꼬가 막게 되면 한계기업을 존속시키고, 정상기업에 들어갈 자금을 줄이는 역작용을 부른다.

접근에도 지켜야 할 방식이 있다. ‘있는 연체를 없는 것으로 보라’는 거야말로 언어도단이다. 검은색을 흰색으로 보라는 것과 같다. 심하게 말하면 거짓말을 사주하는 격이다. 기왕 하려면 방식을 달리했어야 했다. 연체 사실이 있거나 다중채무자로 규제되어도 코로나에 기인한 경우에 한해서는 금융지원을 멈추지 말도록 금융기관에 권고하는 형식이 돼야 했었다.

그랬으면 신용평가체제가 흔들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채무자들 간 차별성과 형평성도 유지될 수 있었다. 연체 없이 대출을 성실하게 갚아온 채무자는 이번 조치에 억울해 한다. 신용평가에서 연체자보다 유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나 상환 기록이 관리되지 않다 그런 기회를 잃게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연체를 한 사람이나 하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되고 말았다.

모르면 몰라도 이번 조치를 금융기관이나 신용정보회사들이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내심 불만이 컸으나 정부의 강압에 못 이겨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따랐을 공산이 크다. 그랬다면 금융기관들 스스로가 자율성을 무너뜨린 책임이 작지 않다. 정책은 취지와 목적이 좋고 효과가 높아야 하나, 추진 과정에서의 정당성 확보 또한 중요하다. 후진적 관치금융의 오점이 경제선진국의 명성을 얼룩지게 하는 건 아닌지. 주제넘은 걱정이 앞선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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