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의 부활...그들은 어떻게 정권말 금감원장을 탈환했을까
모피아의 부활...그들은 어떻게 정권말 금감원장을 탈환했을까
  • 정종석
  • 승인 2021.08.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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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감독의 자율성 확보 위해 금감원장은 최흥식, 김기식, 윤석헌 모두 민간 출신 임명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와 정은보 금감원장, 관치금융으로 내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 될 우려 나와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든 취지는 재정경제부(옛 재무부의 후신)에 집중된 금융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재경부가 상위목적(경제정책)을 위해 하위목적(금융 건전성)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위 사무국 대부분이 금융정책국을 중심으로 한 재경부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오히려 모피아(옛 재무부의 영문 이니셜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힘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많다.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가 과거 외환은행 헐값매각 과정에서 짝짜꿍해서 손발을 척척 맞출 수 있었던 것이 좋은 사례다.

모피아란 퇴임 후에 정계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하여 산하 단체들을 장악,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재무 행정 기관, 곧 기획재정부 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들을 통칭하며 범죄조직인 마피아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감원장은 모두 민간 출신이 임명됐다. 하나금융지주 사장 출신의 최흥식 전 원장부터 시민단체와 국회의원 출신 김기식 전 원장, 학자 출신 윤석헌 전 원장까지 출신이 맡아왔다.

설립 후 관료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금감원장 자리의 임명공식이 현 정부 들어 깨진 셈이다. 그런데 관료출신인 정은보 원장을 선임하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모피아 세력이 다시 금감원장 자리를 되찾아오게 됐다.

현 정부 출범 후 금융감독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금감원장에 민간 출신 인사를 임명해 왔다. 그러던 관행을 깨고 금감원장에 모피아 출신 관료를 임명한 것은 과연 어떤 배경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개혁 성향 학자 출신인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지난 3년동안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고 소비자보호를 등한시한 금융회사와 그 경영진을 강도 높게 제재하며 규율을 잡으려 했다.

시민단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모피아 출신 관료를 임명하는 것은 구태로 회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이러한 반발이 일어날 것을 알고도 임기 말에 돌연 모피아 출신 금감원장을 임명한 것일까.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김상조 정책실장 퇴임 후 적어도 금융부문에서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듯

결과적으로 청와대의 컨트롤타워가 김상조 정책실장 퇴임 이후 적어도 금융부문에서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5월 초 퇴임한 윤 전 원장의 후임 인선 과정에서 이미 조짐이 보였다.

최흥식·김기식 전 원장이 조기 낙마하는 상황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개혁 성향 민간인사를 금감원장에 앉혔던 청와대는 이번에도 민간인사를 물색했다.

그러나 최종 후보자들에 대해 각각 금융위와 금감원이 반대하면서 인선이 3개월이나 지연됐다. 청와대가 금융감독의 지향점과 조정 능력을 상실한 사이 그 빈틈을 결국 금융 기득권 세력인 모피아가 비집고 들어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모피아의 입장에서는 금감원장과 수석부원장은 당연히 관료 자리로 여겼으나 현 정부 들어 3명의 원장을 내리 민간에 빼앗겼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2017년 9월 물러난 진웅섭 전 원장(행시 28회) 이후 약 4년 만의 관료 출신 원장이다, 모피아로서는 자기 세력의 ‘금감원장 탈환’인 셈이다.

모피아는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기재부와 청와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나아가 산하 금융기관과 심지어 민간 금융회사의 상층부까지 점령해서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대 재생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1998년 금융감독기구 개편으로 출범한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우 역대 위원장 6명이 모두 옛 재무부나 재경부 출신이다. 3개 국책은행장,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상호저축은행연합회 등의 기관장도 모피아다. 과거 모피아의 대부분은 경기고-서울대 출신인데, 요즘은 외고 등 신흥 명문고-서울대 출신으로 바뀌었다.

이런 ‘비공식 관계’는 실제업무에도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몇년 전, 증권 관련 한 기관은 노조가 재경부 출신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막상 비재경부 출신이 온 뒤로 기관의 위상이 떨어지자 나중에는 힘있는 재경부 출신을 기관장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금융관료들이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원천은 금융당국이 틀어쥐고 있는 규제에 바탕한 ‘관치금융’이다. 최근 금감원의 말 한마디에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단번에 경색되고, 관치금융 논란이 제기된 것은 단적인 예다.

이번 정부서 일어난 각종 금융사고 어물쩍 넘어가고 관치금융식 감독관행으로 회귀하면 안될 일

더욱이 행정고시 28회 동기에 같은 경제관료 출신인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와 정은보 금감원장이 동시에 금융정책을 좌지우지할 경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시된다.

물론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두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낼 경우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 관계는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막강한 양두마차 체제로 금융당국을 이끌게 되면서 금융위와 금감원이 혹시라도 금융소비자를 무시한 채 관치금융으로 내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가 될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평시 같으면 이런 행보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2~3년 동안 금융시장은 파생결합펀드(DLF)와 사모펀드 사태라는 대형 금융스캔들을 겪었다. 규제의 빈틈을 노린 사기꾼들이 시장의 물을 흐리고 소비자들이 큰 피해를 당하자 금융감독기구는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동안 금융감독기구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 금융위원회와 견해 차이를 보이고, 사모펀드 사태의 처리 과정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엄정한 제재와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를 강조했던 윤석헌 전임 원장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것이 새 금융수장들의 정책목표라면 이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청와대는 정 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는지 제대로 검증하고 임명을 했는지 의문시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초기에도 개혁 성향의 학자들이 청와대 정책라인에 포진하면서 모피아의 위세는 잠시 주춤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집권 2년차부터 청와대 경제라인 역시 당시 재경부 인사들로 채워지고 말았다.

결국 개혁에 앞장선 노무현 대통령도 모피아의 힘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년에 정권이 바뀌어 정 원장이 3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바뀌더라도 한 번 되찾은 금감원장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피아 세력은 또 다시 도처에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파다하다.

모피아 출신 금감원장의 등장이 혹시라도 이번 정부에서 일어난 각종 금융사고를 어물쩍 넘어가고 그 피해의 상당 부분을 금융소비자에게 전가했던 관치금융식 과거의 금융감독 관행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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