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만능의 칼'?...대출 눌러 집값 잡는 부동산 오징어게임
금융은 '만능의 칼'?...대출 눌러 집값 잡는 부동산 오징어게임
  • 권의종
  • 승인 2021.11.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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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가려운 곳 긁을 줄 알아야 좋은 정부...부동산 정책도 수요자 니즈 파악해 초점 맞춰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은 만능 칼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요긴하게 쓰인다. 최근에는 집값 잡기의 방편으로 활용된다. 지난달 정부가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을 앞당겨 확대하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연 소득 5,000만 원인 직장인의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이 2억4,0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내년에는 규제가 더욱 강화된다. 1월부터 2억 원이 넘는 신규 대출을 받는 사람은 연 소득 대비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40%를 넘을 수 없다. 이어 7월부터는 1억 원을 초과하는 대출에까지 이 원칙이 확대 적용된다. 원래는 2022년 7월, 2023년 7월에 각각 도입될 예정이던 차주 단위의 DSR 2, 3단계가 앞당겨졌다. 지난 4월 정부가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며 애초 계획을 밝힌 지 불과 6개월 만이다. 

취지는 알만하나 후폭풍이 거세다. 고강도 대출 규제로 ‘금융 사다리’가 걷히면서 ‘주거 사다리’가 끊겼다. 은행으로부터 돈줄이 막히면서 내 집 마련의 길이 더 멀어졌다. 여기에 전세대출 한도마저 줄면서 월세로 나앉는 사람이 늘게 생겼다. 그나마 기댈 언덕이던 금융이 어려워지면서 무주택 서민의 한숨이 깊어진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실수요자 보호는 구호에 그치게 되었다. 

대출 시장은 벌써 혼란이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시장 메커니즘이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신용대출 금리보다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신용대출 금리보다 상·하단 모두 높아졌다. 통상 주담대는 담보가 있어 금리가 낮은데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웃돌게 된 것이다. 대출 총량을 줄여야 하는 은행들이 규모가 큰 주담대를 줄이려 이자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올린 결과다. 

대출 규제로 ‘금융 사다리’ 끊겨...‘주거 사다리’ 걷어차이며 내 집 마련의 길은 더 멀어져

또 고신용자 금리가 저신용자보다 높아졌다. 인위적인 대출 규제로 신용이 좋으면 낮은 금리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금융 상식이 무너졌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9월 5대 은행의 1~2등급 고객 신용대출 금리는 최근 한 달 새 평균 0.046%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3~4등급 고객의 금리는 반대로 0.066%포인트 내렸다. 은행들이 한도가 높은 고신용자 대출을 줄이기 위해 각종 우대 금리를 폐지하거나 가산 금리를 높이면서 고신용자 대출 금리가 올라간 것이다.

복지를 위해 금융이 희생되는 경우도 심심찮다.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할 영역을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무리수가 빈번하다. 생활·주거 안정, 청년·대학생 지원, 기초생활 보장, 자영업 지원 등 각종 명목의 금융 우대가 즐비하다. 금융은 금융, 복지는 복지다. 금융과 복지는 각자 영역에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소득 불평등 해소는 금융지원보다 재정 지원이 걸맞다. 

관료들은 대개 성질이 급하다. 김칫국부터 마신다.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될 걸로 믿는 성향이 없지 않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경제부총리가 반색했다. 부동산 안정의 중대한 기로를 맞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근 주택시장은 8월 말 이후 주택공급조치 가시화, 금리 인상, 가계대출 관리 강화 등 일련의 조치로 인한 영향이 이어지면서 그간 상승 추세가 주춤하고 시장심리 변화 조짐이 점차 뚜렷해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뒤질세라 국토교통부 장관도 거들고 나섰다. 최근 집값 상승 폭이 다소 둔화하는 현상을 두고 주택시장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최근 주택시장은 정부의 다각적 공급 확대와 강도 높은 가계부채 관리 등이 이어지면서 과열 국면에서 벗어나는 흐름이 강해지는 양상”이라 평가했다. 주무장관의 처지를 이해 못 할 바 아니나, 객관적 사실로보다 주관적 희망 사항으로 들린다. 

사안이 복잡할수록 기본에 충실해야...집값 문제의 해법은 수요 공급의 원리에서 찾아야

정부는 매사에 낙관적이다. 집값 전망도 그렇다. 올해도 아파트 공급이 충분할 걸로 내다봤다. 결과는 초라하다. 부동산 R114에 따르면 10월까지 서울에서 분양한 민간아파트는 5,437가구에 그쳤다. 11년 만에 최저치다. 연초 예상했던 4만4,722가구의 12% 남짓이다. 남은 두 달간 예정된 분양물량을 최대로 잡아도 1만5,410가구, 목표치의 34%에 불과하다. 이런 공급가뭄이 당분간 이어질 거라는 게 더 큰 고민이다. 

부동산 관련 혼란과 시행착오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 눈으로 봐서인지, 정부가 정답은 놔두고 되레 이를 피해 가는 인상을 준다. 사안이 복잡할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법. 집값 문제도 수요 공급의 원리에서 해법을 찾는 게 순서일 듯 싶다. 즉, 가격을 떨어뜨리려면 일단 공급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금융 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알다시피 서울지역은 집 지을만한 땅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 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활성화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용적률을 높이고 층높이를 올리는 게 그나마 대안일 수 있다. 정부는 아직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재건축과 재개발 추진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이미 진행 중인 단지의 분양이 줄줄이 연기되는 상황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좋은 정부는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을 줄 알아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수요자의 정확한 니즈를 파악해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하는 곳 근처에, 교육 여건 등 거주 환경이 좋은 곳에 내 집을 마련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지금도 인기가 없어 비어 있는 공공임대주택이나 권하는 것은 무주택자에게 도움이 안 될뿐더러 원하는 바도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대로,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는 식이 되면 안 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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