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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의 부적(符籍)
다산(茶山)의 부적(符籍)
  • 박종권
  • 승인 2021.11.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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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 고대 이집트에도 부적이 있었다. 태양을 상징하는 원을 다리로 받치고 있는 쇠똥구리 형상이다. 이른 아침, 쇠똥을 둥글게 뭉쳐 굴리고 가는 쇠똥구리를 보고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의 운반자로 여겼다. 이것이 황금 풍뎅이로도 불리는 ‘스카라베’이다.

동물의 배설물이 또 다른 동물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데 착안해 부활과 순환의 상징으로 삼았다. 왕의 묘에도 스카라베를 새겼으며, 일반인은 다산과 풍작을 기원하며 장신구로 지녔다. 영화 ‘알라딘’에서 요술램프가 숨겨진 지하유적 입구를 여는 열쇠로 이 쇠똥구리 모양의 펜던트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겠다.

갖가지 재앙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부적도 있다. 터키에는 ‘나자르 본주’라는 부적이 일상적이다. ‘질투의 유리’라고도 불리는데, 파란색 유리 가운데 검은 눈동자가 새겨진 모양이다. 악령이 푸른 눈을 한 사람에게는 접근하지 못한다는 미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고대 로마 ‘메두사의 눈’을 기원으로도 본다. 눈을 마주보면 돌로 변한다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중국에서는 자부선인이 황제 헌원에게 준 옥전결이 부적의 기원이라고 한다. 중국의 부적은 일반적으로 붉은 빛깔의 경면주사(鏡面朱沙)를 갈아 기름에 개어 쓴다. 종이는 괴황지(槐黃紙)가 원칙이지만, 누르스름한 창호지를 쓰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지켜준다는 뜻의 ‘오마모리’라는 액막이 부적을 신사나 절에서 판다. 이처럼 부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간에 널리 퍼져 있다. 원시신앙의 주술적 힘을 빌어서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려는 소망의 발로이겠다. 보통 글자나 상형으로 그리는데, 영어의 철자인 스펠(spell)에 주문, 주술, 마법이라는 뜻이 담긴 배경이겠다.

두 아들에 근(勤)과 검(儉)을 정신적 부적으로

우리나라 민중의 일상에도 부적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 종류도 많다. 호부(護符)는 신불(神佛)의 힘이 있어 재액을 면하게 하는 부적이다. 삼재(三災)와 액운(厄運)으로부터 몸과 집을 보호하는데, 문과 벽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닌다. 복식(服飾)연구에서는 원시신앙에서 기원한 ‘신체장식설’의 하나로도 본다.

음력 2월 초하룻날이면 기둥이나 서까래에 ‘향랑(香娘)각시 속거천리(速去千里)라는 글을 거꾸로 붙이는 부적도 있다. 향랑각시는 배각류(倍脚類)를 통틀어 이르는데,몸에서 지독한 노린내가 나 ‘노래기’로 불린다. 단오절에는 문에 액막이 단오부(端午符)를 붙이기도 한다.

실질을 숭상하는 다산 정약용도 부적의 힘을 믿었을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편역)’에 부적 이야기가 있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다”면서 대신 평생 잘 살고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말한다. 유산은 바로 ‘정신적 부적’인데, 근(勤)과 검(儉) 두 글자이다.

다산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면서 “근검 두 글자는 양전옥토(良田沃土)보다 나으니 일생동안 쓰더라도 닳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한다. 부지런함(勤)은 “집안의 상하 남녀 간에 단 한 명이라도 놀고먹는 사람이 없고, 잠깐이라도 한가롭게 보여서는 안 되는 생활태도”라고 정의한다.

검소함은 “의복은 몸을 가리기만 하면 충분하고, 음식은 목숨만 이어가면 족하다”는 마음가짐이다.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려 애쓰는 것은 결국 변소에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근검(勤儉)이야말로 실사구시 부적이 아닐 수 없다. .

천명(天命) 모르는 정치인 ‘호연지기’ 새겨야

최근 야당 대선 후보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썼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부적의 힘이라도 빌리려는 이가 정치인 뿐이겠나. 공학박사인 유명언론인도 지갑에 일본에서 구입한 부적을 넣고, 대형 로펌의 변호사도 골프모자에 홀인원 부적을 붙인다. 모두가 불안하거나 족함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섬김과 정성 대신 군림과 부적에 익숙한 몰염치 지도자들은 다산이 사대부의 기본자세로 강조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마음에 부적으로 새길 일이다. 민심은 천심이고 군주민수(君舟民水)인데, 한낱 사마귀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가로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천명(知天命)을 지나서도 천명(天命)을 모르는 정치인은 만추(晩秋)에 목민심서라도 펼칠 일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박 종 권
· 호서대학교 AI융합대학 교수
· 언론중재위원

· 저서
<청언백년>, 인문서원
<기자가 말하는 기자>, 부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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