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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 전도된 금융정책...전세대출 지금은 건드리지 말라
본말 전도된 금융정책...전세대출 지금은 건드리지 말라
  • 권의종
  • 승인 2021.11.1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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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뿌리, 가계부채는 잎사귀...국민 보듬고 도와주는 ‘덧셈 정책’ 긴요,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뺄셈 정책’ 불요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전세대출 시장이 혼돈이다. 금융위원회가 주축인 ‘가계부채 관리 태스크포스’가 내년 1월부터 전세대출 분할상환 관행을 유도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전세대출 분할상환 실적이 우수한 금융사에 정책 모기지 배정을 우대한다는 내용이다. 금융당국은 강제가 아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이라며 수위를 낮췄다. 말이 좋아 유도지 강요나 다름없다. 금융사 입장에선 정부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일부 대형은행은 분할상환 의무화를 이미 시행했다. 전세대출도 원금 중 최소 5% 이상은 갚아야 빌려줄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다른 은행들도 상황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정부 방침을 거역하기 힘들 것이다. 전세대출 분할상환 비율을 5~10%로 할지 등 금융위원회에서 세부 가이드 라인이 나오는 대로 줄줄이 따라 할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 시름이 깊어진다. 격한 반발이 예상된다. 생활비 대기도 빠듯한 마당에 매달 이자에다 원금까지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2년 만기인 전세대출은 다달이 이자만 내다가 만기 때 원금을 한꺼번에 갚으면 된다. 예를 들어, 연 3% 금리로 2억 원을 대출받으면 지금까지는 매달 50만 원의 이자만 내면 되었다. 원금의 5%인 1,000만 원을 분할상환할 때는 매월 약 42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강행할 태세다. 되레 한술 더 뜬다. 금융위원회가 금융사가 전세대출에 대해 분할상환 및 고정금리 방식으로 판매하는 비중을 높이면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출연요율을 낮추는 내용의 한국주택금융공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택 관련 대출을 취급하면 대출금의 일정 비율을 금융사가 출연해야 하는데, 분할상환 및 고정금리 비중이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이를 낮춰 준다는 것이다. 

대출 원금 분할상환의 유용성은 크나...전세대출처럼 상환금액이 고액일 때는 적용 힘들어

분할상환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장점도 적지 않다. 대출이 증가하는 속도를 늦추는 동시에 만기에 집중된 상환위험을 장기간에 걸쳐 분산시키는 순기능이 존재한다. 대출 원금이 빚으로 계속 쌓이는 것을 막아주는 이점도 있다. 나아가 국내 금융사의 가계대출 관행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금융소비자에게도 유리하다. 돈을 빌려 쓴 입장에서 대출금 분할상환이 당장은 부담이 되긴 한다. 그래도 매달 원리금을 상환하다 보면 만기 도래 시 대출금의 전부 또는 일부가 갚아진다. 빚이 줄어든다. 오늘날 가계부채가 1,800조 원을 상회하게 된 데는 만기일시 상환방식과도 무관치 않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대출을 받아도 이자만 내다보니 빚 무서운 줄 모르게 되었다. 부채가 누적되는 구조가 굳어져 왔다. 

금융사에도 나쁠 게 없다. 대출 상환능력 검토 시 위험 분산을 위해서는 분할상환이 유리하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이고 당장 일본만 하더라도 분할상환 관행이 정착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만 특이하다. 운전자금 대출의 거의 전부가 만기일시상환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지난 날 금융사가 장기자금 조달이 어렵고 우월한 위치에서 채무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던 시절에 생긴 불합리한 대출제도의 잔재라 할 수 있다.

분할상환이 늘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다. 매달 상환하는 금액이 채무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일 때나 효과를 보게 된다. 전세대출처럼 고액일 경우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오랫동안 만기일시상환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국내 여신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쉽지 않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액대출보다는 소액대출부터 분할상환을 단계적으로 유도해 나가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정책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국민을 위한 정책이 돼야지 정책을 위한 국민이 될 순 없어

제도 설계 시 고민의 흔적이 안 보인다. 지금처럼 시중 금리가 나날이 오르는 상황에서 전세대출 원리금 분할상환을 강제하면 어떻게 될 지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듯하다. 임대차 시장에서 반전세나 월세 비중이 빠르게 늘 게 분명하다. 수입 대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하면 ‘전세를 살면서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공식은 존립하기 어렵다. 주거 환경이 좋은 곳에서 서민은 전세살이마저 힘들어진다. 

정부가 전세대출 분할상환이 집값과 전셋값 안정에 도움이 될 걸로 여겼다면 실로 큰 오산이다. 정부가 30차례 가까운 부동산 대책을 내놨으나 번번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나. 집값을 잡겠다면서 주택 공급을 늘리지 않은 채, 세금 부담을 늘리고 대출만 틀어막다 보니 역효과만 나고 말았다. 시장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탁상행정이 의도한 대로 순순히 움직여줄 시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전세대출 분할상환의 의도가 못마땅하다. 밉살스럽다.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의 하나로 꺼내 든 것 자체가 무리수라 할 수 있다. 세입자 희생을 통해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를 축소하려는 시도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정책은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목표와 수단의 혼동만큼 위험한 게 없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 돼야지, 정책을 위한 국민이 될 수는 없다. 뿌리와 잎사귀가 뒤바뀐 본말전도는 으레 뒤탈이 난다. 

규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다. 결과가 어떨 것인가를 제대로 예측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의 중심에 늘 국민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보듬고 도와주는 ‘덧셈의 정책’이 긴요하다. 국민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뺄셈의 정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전 국민 공짜 재난지원금이나 주려 말고, 땀 흘려 번 돈으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전세대출일랑 지금은 건드리지 마시라. 그러잖아도 다락같이 오른 집값과 전셋값에 절망하는 그들이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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