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이동준 기자] 현대차그룹 오너인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 보유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에 최근 매각할 때 공정위의 오너지분율 규제기준선인 20%에 정확히 9주만 모자라게 매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말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일감몰아주기 또는 사익편취 규제대상 기업의 오너일가 지분율 기준은 상장기업의 경우 종전 30% 이상에서 21년말부터 20% 이상으로 강화됐다. 이 규제를 피하기위해 절묘하게 '20% - 9주', 즉 규제 커트라인에서 정확히 9주만 적게 지분매각량을 조절했다는 얘기다.
또 칼라일 그룹은 이번 매각 때 정의선 회장과의 주주간 계약을 통해 현대글로비스 이사 1인 지명권과 동반매각 청구권(Tag-along)도 확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는 6일 내놓은 ‘현대글로비스, 오너일가 지분 일부 매각공시’ 평가자료에서 이번 매매를 통해 오너일가 지분율은 종전 30%-9주에서 20%-9주로 감소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규제제도를 지난 2013년 처음 도입하면서 상장기업의 경우 오너지분율 30% 이상 기업을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기업으로 정하자 2015년 현대글로비스의 오너일가 지분율을 정확히 29.9999%로 떨어뜨려 조절한 바 있다. 이때의 오너일가 보유주식수도 '30% - 9주'였다는 설명인 것이다.
현대차 오너일가의 이런 규제회피 행위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제만 일단 피하고 보자는, 너무 노골적이고 절묘한 숫자놀음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재계 일각에서 나온다.
한편 한기평은 이번 지분매각이 현대글로비스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았다. 매각이후 지분구조 등을 감안할 때 실질적 지배구조상의 변동은 크지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매각에도 불구하고 최대주주 정의선 회장과 현대자동차, 현대차 정몽구재단 등 특수관계자 지분을 모두 합하면 29.34%의 지분을 보유, 최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매각된 지분은 정의선 보유지분 3.29%와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 전체 6.71%로, 합쳐서 10%다.
이 지분을 매입한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 리미티드(Project Guardian Holdings Limited)는 칼라일그룹 산하 펀드로 추정되며, 이번 매입으로 현대글로비스의 3대 주주로 올라섰다.
현대차·기아의 완성차 운송을 위해 설립된 현대글로비스는 대부분의 물류사업을 현대차그룹으로부터 수주하고 있다. 사익편취 규제대상이 되면 이러한 사업구조가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돼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정 회장 부자는 앞서 2015년에도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매각해 지분율을 43.39%에서 29.99%로 낮추며 사익편취 규제대상에서 벗어났었다.
또한 정 회장은 이번 지분매각을 통해 규제 위기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실탄'을 확보했다는 '일석이조' 의 묘수라는 시각도 있다.
현대차는 2018년 기아와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을 사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했지만, 사모펀드 엘리엇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올해 '대주주 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 구조로의 지배구조 단순화를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정 회장 부자는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취득해야 한다.
정 회장 부자는 이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대금과 함께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으로 4000억원가량을 확보하면, 총 1조원가량의 현금을 보유하게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이 1조원으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면서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부자는 현대모비스 지분매입에 활용할 현금확보를 위해 현대차그룹의 다른 계열사 지분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