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보다 인플레이션이 더 걱정...경중(輕重)도 못 가리는 물가대책
대선보다 인플레이션이 더 걱정...경중(輕重)도 못 가리는 물가대책
  • 권의종
  • 승인 2022.02.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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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뛰는 물가 잡는다면서 ‘외식가격 공표’가 고작...인플레이션 극복은 대증요법보다 원인요법이 중요
체계적 공급망 관리로 실질적 수급 안정 긴요...양양 하조대(河趙臺) 소나무의 기상으로 인플레 극복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강원도 양양. 유서 깊은 지명이다. 한자로 ‘오를 양(襄)’, ‘햇볕 양(陽)’, ‘일출의 해맞이 고장’의 뜻을 품고 있다. 동해안 해맞이 명소로는 하조대가 으뜸이다.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산3번지 일대를 말한다. 아름다운 해변에 거친 파도가 넘실대고 우뚝 솟아있는 기암절벽에 노송이 한데 어울어져 경승(景勝)을 이룬다.

해안가 앞쪽 암초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애국가 배경 영상의 일출 장면에 나와 애국송(松)이라 불리는 바로 그 나무다.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 크게 자라지 못했으나 수령 200년 넘는 고목(古木)이다. 빼어난 자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인이 들어 섭섭할지 모르나, 그들이 자랑하는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절벽의 250년 넘은 론 사이프러스(The Lone Cypress)도 견줄 바 못 된다.

절벽 위에는 하조대(河趙臺)라는 현판이 걸린 육각정이 세워져 있다. 현판 명칭의 유래는 여러 갈래다. 정자 옆 표지판에 따르면,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 두 사람이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청유(淸遊)했던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에 은둔하며 혁명을 도모해 태종 이방원을 왕위에 올려놓은 걸 기리기 위해 정자를 세웠고, 그 두 사람의 성을 따 이름을 붙였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그럴싸하다.

여기서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점. 두 사람의 성(性)에서 따왔다는 정자의 명칭이 왜 하필 하조대로 정해졌을까. 통상 사람들의 이름을 서양에서는 알파벳 순으로 나열하고, 동양 문화에서는 장유유서에 따라 연장자 순으로 표시하곤 한다. 그렇다면 1346년에 출생한 조준의 성을 그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하륜의 성보다 앞에 둬 조하대(趙河臺)라 칭하는 게 맞을 성싶다. 도로명 주소는 양양군 현북면 조준길 99로 돼 있다.

‘중요도 기준’...사람 이름을 나열할 때 뿐 아니라, 정책 우선순위 결정의 표준으로도 유용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하조대라는 명칭이 쓰이게 된 것은 인물의 중요도 면에서 하륜이 조준을 능가했다는 평가 때문일 것이다. 나이나 알파벳 순보다 우선시되는 ‘중요도 기준’. 이게 어디 인물들을 열거할 때만 쓰일 수 있겠는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표준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이게 그리 잘 지켜지지 않는다. 작금의 인플레이션 대책만 봐도 그렇다.

물가 움직임이 심상찮다. 에너지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 경제활동 재개 등으로 물가가 뜀박질한다. 국제에너지 가격은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증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능력 회복 지연에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산유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해지며 2014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반도체 생산 차질과 해상물류 지체 등에 따른 가격 오름세가 원자재에서 중간재와 내구재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까지 분출하며 물가 상승세가 한층 가팔라지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글로벌 물가 불안 요인이 고스란히 국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농수산물 할인 행사 등을 밝혔다. 이런 정책 수단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책의 경중(輕重)조차 못 가린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 현안으로 내세우는 정부가 대응하는 수준을 보면 초보적이다. ‘외식가격 공표제’ 시행이 단적인 예다. 생활물가를 잡는답시고 주요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의 대표메뉴 가격을 매주 공시토록 강제했다. 죽 김밥 치킨 햄버거 피자 떡볶이 커피 자장면 삼겹살 돼지갈비 갈비탕 설렁탕 등 12가지 음식이 그 대상이다. ‘공시’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감시’ 내지는 ‘통제’나 진배없다.

원자재 구입처 다변화로 공급망 차질 줄이고...IT 플랫폼 활용으로 물류 시스템 효율 높여야

외식물가가 조금 올랐다고 치킨 한 마리, 김밥 한 줄, 피자 한 판의 값까지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물가를 잡겠다는 발상이 어이없다. 더구나 기획재정부가 9개 대형 식품회사들을 불러 모아 ‘물가 안정 협조’를 당부하며, 이례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까지 배석시킨 건 너무한 일이다. 세계 10위권 경제국에서 민간기업을 이토록 대놓고 압박하는 게 낯부끄럽다.

물가 문제가 우리나라 만의 현상은 아니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과 전쟁 중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전망치를 2.0%에서 3.1%로 대폭 높였다. 3%대 전망치는 2012년 4월 이후 10년 만이다. 미국도 지난 1월의 물가(CPI)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통제를 위한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서로 얽혀 돌아가는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나라 밖 변수에 큰 원인이 있는 고물가를 개별국가 차원에서 제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워낙 거센 데다 미국의 긴축기조가 강화돼 환율이 오르게 되면 유류세 인하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된다. 옥수수와 대두가 남미의 가뭄으로, 알루미늄과 니켈의 경우 각각 중국의 탄소 배출량 감소와 미얀마의 생산 중단 여파로 가격이 뛰는 점도 정책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미국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게 되면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점프하는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 못한다. 조급한 대증요법보다 진득한 원인요법이 낫다. 이제라도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수급 안정을 위한 실질적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 원자재 구입처 다변화로 공급망 차질을 줄이고, 정보기술(IT)을 활용한 플랫폼 확대로 물류 시스템 효율을 높여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나 못 할 것도 없다. 장구한 세월 동안 절벽에서 모진 풍파를 견뎌온 하조대 소나무의 기상이면 인플레이션 극복 쯤은 너끈하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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