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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은 총재, 폴 볼커처럼 '권총' 차고 인플레이션과 싸워라
새 한은 총재, 폴 볼커처럼 '권총' 차고 인플레이션과 싸워라
  • 정종석
  • 승인 2022.03.2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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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볼커 전 연준 의장, 1980년대 美 인플레이션 잡으려 기준금리 21%까지 올려 "20세기 최고 중앙은행장"
‘그린스펀 효과’도 사람들에 회자...무려 18년 6개월 동안 1990년대 미국의 장기호황을 이끈 주역 평가 받아
한은이 경제부처와 다른 점은 옳은 일을 향해서 쓴소리를 하며 비판받는 것...이것이 중앙은행의 임무-숙명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봉투 세 개를 준비하시오."

국제​금융가에는 이런 유머가 있다. 영국의 재무상인 고든 브라운이 장관 전용 금고 속에서 전임 장관이 남긴 봉투 세 개를 발견했다. 봉투에는 번호와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경제가 어려운 고비에 처할 때마다 순서대로 하나씩 뜯어볼 것." 얼마 후 경기가 나빠졌고, 브라운이 첫 번째 봉투를 뜯었다. 거기에는 짤막하게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금리를 내리시오~."

그러나 금리를 내려도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고, 브라운은 두 번째 봉투를 뜯었다. "금리를 올리시오~." 시키는 대로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야당에서 재무상의 사임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장관직의 기로에 선 브라운은 결국 마지막 봉투를 뜯었다. 거기에 적힌 글귀는 이런 것이었다. "후임자를 위해 봉투 세 개를 준비하시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차기 한은 총재 후보로 지명된 그가 정식 임명되면 어떤 통화정책을 펼칠지 관심이 쏠린다. 그의 최근 발언만 놓고 보면 아직 매파(통화긴축 선호)인지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적어도 강경 매파는 아닌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후보자는 한은 총재 후보자 지명소감을 통해 "성장, 물가, 그리고 금융안정을 어떻게 균형있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한은의 목표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란 점에서 물가와 금융안정을 언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성장을 고려하겠다는 것도 현 시점에서는 차기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그를 두고 전형적 매파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자가 평소 부채 관리를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정식 임명되면 정책적 성향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글로벌 금융환경과 지금 한국경제의 위기를 돌파할 능력을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경제는 성장과 고용이 불안한 가운데 시장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강해지고 있다. 이창용 후보자가 앞으로 정식으로 임명되면 지난 2019년 12월 92세를 일기로 사망한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을 닮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폴 볼커 전 의장, '인플레이션 파이터' 별명...강력하고 일관된 금리정책 덕분에 미국 물가상승률은 1983년 3%대까지 떨어져

볼커 전 의장은 "20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독일 출신 경제학자 헨리 카우프만)으로 평가를 받는다.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미국 재무부, 체이스맨해튼 은행 등을 거쳐 뉴욕 연준 의장에 올랐고,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인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해 1987년까지 8년동안 재임했다.

당시 미국 경제는 매년 물가상승률이 10%를 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고물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1981년 기준금리를 21%까지 올렸다.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세력의 신변 위협 때문에 키가 2m가 넘는 그는 직접 권총을 차고 다니기까지 했다고 한다.

강력하고 일관된 금리 정책 덕분에 미국 물가상승률은 1983년 3%대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그에겐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부에서는 그가 고금리 정책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1980년대 미국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987년 볼커 전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이후 20년간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잘 통제했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볼커 전 의장의 충고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금융 관련 규제는 계속 축소됐고, 국가 부채는 커져만 갔다.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볼커 전 의장은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그는 2011년까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대형 은행 등이 자기자본으로 위험한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는 이른바 '볼커 룰' 도입에 앞장섰다.

2019년 7월 그는 다시 주목받았다.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 연준 의장 후임자들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기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제롬 파월 의장을 압박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취지였다.

이창용 후보자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인물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준 의장이다. 국제금융계에서는 그린스펀 효과(Greenspan Effect)라는 말이 회자된지 오래다.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까지도 움직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장 시절 그린스펀의 영향력을 지칭하는 용어다.

"성장을 못해도 국민이 용서를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못 잡는다면 국민이 용서를 못한다. 이런데 신경을 써야겠다."

그린스펀은 1987년 8월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18년 6개월 동안 1990년대 미국의 장기호황을 이끈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7년 11월 `블랙 먼데이`사태가 일어나 다우존스지수가 500포인트(22%) 급락하며 주식시장이 공황에 빠지자, 그린스펀은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 위기를 넘겼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는 세 차례 금리를 내려 세계 경제의 안정을 가져왔다. 그리고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2001년 9·11테러로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요동치자 6.5%에 달하던 금리를 1%까지 내려 위기를 진화시켰다. 그린스펀효과는 미국 경제의 고비 때마다 적절한 금리정책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그린스펀의 정확한 경기판단에 대한 높은 신뢰를 보여준다.

어떤 나라이든 중앙은행은 경제의 ‘워치독(watch dog)’ 역할을 한다. 중앙은행은 화폐가 무엇인지 타인들이 규정해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한은이 경제부처와 다른 점은 옳은 일을 향해서 쓴소리를 하며 비판받는 것이다. 이것이 중앙은행의 임무이자 숙명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6일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김형태 김앤장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워크숍에서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성장을 못해도 국민이 용서를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못 잡으면 국민이 용서를 못한다. 이런걸 신경써야겠다" 고 지적했다.

최근 급등한 물가와 임박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상반기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추가적인 금리인상이 가시화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우리 경제의 명운을 좌우하는 '시한폭탄'으로 등장한 셈이다.

지금 세계는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 열풍이 거세지는 가운데 대규모 추경 집행 등으로 오는 5월10일 윤석열 새 정부가 출범하면 통화정책, 금융안정도 큰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 한은 총재는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술을 치우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라고 한 윌리엄 마틴 미국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말을 한번 상기해봤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글로벌 경제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잘 돌려놓으면 전 세계는 준비된 성장을 거침없이 해나갈 것이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은 나름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위한 준비를 차근히 왔다고 할 수 있다. 새 한은 총재가 취임 후 인플레이션 대책을 비롯해서 좋은 결과물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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