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는 국민이 되자...선진사회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
계획하는 국민이 되자...선진사회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
  • 신부용
  • 승인 2022.04.0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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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용 칼럼] 우리 국민은 대체로 계획을 세우는 일에 소홀한 것 같다. 빨리빨리 끝낼 생각에 계획 따위에 시간을 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계획하지 않고 바로 작업에 착수하는 것은 마치 설계도 없이 집 짓는 것과 한가지다. 일이 오히려 더뎌지기 쉽고 조금만 잘못돼도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기 어려워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계획 없이 일하는 행태는 정부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정부조직법 26조에는 ‘대통령 통할 하에 다음의 행정 각부를 둔다’는 조항과 함께 총 18개 부처 이름이 나열돼 있다. 여기에 이름을 넣고 빼는 것으로 부처의 존폐가 결정된다. 정부 조직이 걸핏하면 바뀌는 것도 그래서다. 최근 논란의 대상인 여성가족부는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해 2005년 여성가족부로 바뀌고 3년 후엔 다시 여성부로, 그리고 2년 만에 또 현재의 이름으로 복귀했다.

정부조직법은 각 부처의 업무 영역도 정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41조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 정책의 기획ㆍ종합 (중략)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기술돼 있다. 이렇게 막연한 업무 범위 안에서 장관은 사업을 발굴하고 소요 예산을 따낸 뒤 시행에 들어간다. 그 범위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 누락되거나 부처들끼리 업무가 중복돼도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일단 사업이 정해지면 추진 계획을 잘 짜야 한다. 업무의 진행 과정을 지도처럼 그려 넣고 각 과정의 소요 예산과 시간 및 인원을 정해 놓으면 언제든지 진행 상황 점검과 대처가 가능하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부처마다 미국고등군사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기법을 썼지만 민주화 이후 율사나 운동권 출신들이 요직을 꿰차면서 옛일이 되고 말았다.

그 대신 등장한 게 ‘상부의 지시’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실국장들은 장관실에 모여 지시를 받는다. 이들은 과장들에게 장관의 지시를 하달하고, 과장들은 계장, 계장은 실무자들에게 전달한다.

정부 행정이 이처럼 그때그때 지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무자들은 계획을 짤 필요가 없고 경험이나 전문지식도 쓸모없다. 이러니 정부 내에 전문가가 생기지도 않고 생긴다 해도 대우는커녕 융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 분야에 갇히는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다. 전문 지식보다 순발력과 마당발로 지시 사항을 민활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최근에도 대통령이 말을 갑자기 바꾸자 소관 부처는 물론 여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떼처럼 일어났다. 상부 지시에 단련된 ‘인재들’이 순발력을 발휘하는 흔한 모습이다.

서양인들은 개인이나 정부나 일에 착수하기 전에 ‘goals and objectives’를 먼저 설정하고 이에 도달할 계획을 짠다. goal은 포괄적이고 최종적인 목표이고, objective는 이를 체계화한 항목별 또는 분야별 목표다. 계획에 등한해서인지 우리말에는 이를 번역할 마땅한 어휘조차 찾기 어렵다. goals and objectives는 모두가 동의하고 따라야 하므로 토론을 거치는 게 순리다. 이때 토론은 원리원칙(principle)을 기반으로 한다.

원리원칙은 유크리드 기하학의 개념으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그래서 설명이 불필요한 명명백백한 사실을 말한다. 예를 들면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선은 직선이라거나 평행선은 아무리 연장해도 만나지 않는다 등이다. 우리 사회에도 원리원칙이 있다. 나라 사랑과 법·인권 존중 등이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외면한 채 내 편은 다 옳고 네 편은 무조건 그르다는 파당적 사고가 판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연방법전(U.S.Code)은 좋은 사례를 보여 준다. 이 법은 모든 국정을 54개의 목표로 분류하고 세부 업무와 필요한 조직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49조는 ‘국가의 안위와 복지와 경제 발전을 위해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고 효율적인 교통 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달성할 정책과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교통부를 둔다’고 전제하고 필요한 실국과 그들의 목표, 업무, 조직을 규정해 놓았다.

심지어 말단 공무원의 업무 명세(job description)도 명문화된다. 각 부서장은 이에 따라 장단기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인재를 충원해 계획대로 수행해 나가면 된다. 우리처럼 매주 월요일회의를 안 해도 잘 돌아간다.

상부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체계를 바꿔 놓으면 우리가 걱정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법 체제를 당장 미국식으로 고치기는 어려우므로 이 또한 계획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콜럼비아대학 총장이던 1950년 국가 목표에 대한 국책 연구를 시작한 후 1953년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계속한 끝에 그 결과를 1960년 발표했다. 상기한 미국연방법전도 그 결과물이다.

우리도 이런 연구에 당장 착수해야 한다. 아울러 현 체제에서라도 각 부처가 선언적으로나마 업무 목표를 설정하고 상충점과 모순점에 대한 논쟁을 시작함으로써 연구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는 선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시작하면 끝이 오기 마련이다. 마침 국운이 열리는 좋은 징조들이 보인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신부용 ( shinbuyong@kaist.ac.kr )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운영이사

필자는 서울공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교통연구부를 창설하고 이를
교통개발연구원으로 발전시켜 부원장과 원장직을 역임하며 기틀을 잡았습니다.
퇴임후에는 (주)교통환경연구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KAIST에서 교통공학을 강의하는 한편
한글공학분야를 개척하여 IT 융합연구소 겸직교수로서 한글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저서로는 우리나라 교통정책, 지방자치단체의 교통정책, 도로위의 과학, 신도시 이렇게 만들자,
대안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중국인보다 빨리 배우는 신한위 학습법 등 여럿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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