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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인(仁)이란 무엇인가?
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인(仁)이란 무엇인가?
  • 송재소
  • 승인 2022.04.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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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소 칼럼] 최근 학계 일각에서 실학의 개념을 애써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더 나아가 실학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려는 시도도 있다. 심지어 실학을 집대성했다고 알려진 다산 정약용까지도 지극히 보수적인 학자로 규정하여 주자(朱子) 성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사상가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인(仁)을 주자와 다산이 각각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덕(四德)은 우주의 생성원리인 태극의 속성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이 개별 존재자의 성(性)에 부여된 것으로 선험적 리(理)라는 것이 성리학의 이론이다. 이 이론에 근거하여 주자는 인을 “사랑의 리요 마음의 덕(愛之理 心之德)”이라 해석하고, 궁극적으로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天地生物之心)”으로 정의했다.

이에 비하여 다산은 “인은 천리(天理)가 아니고 인덕(人德)이다” “심덕(心德)은 인이 아니다”라 말했다. 이 말은 인을 주자처럼 심덕으로 보지 않고 인덕으로 보는 것인데, 인을 심덕으로 보는 것과 인덕으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을 심덕으로 보면 “오직 말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정심(正心), 치심(治心)에만 힘쓰면 된다. 즉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켜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적 실천 보다는 개인의 내면적 수양을 더 중시하게 된다. 반면에 다산은 인을 인덕으로 봄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인간관계의 실천적 의미를 인에 부여하고 있다. 다산은 ‘仁’자를 파자(破字)해서 ‘人’과 ‘二’를 합한 것으로 해석했다. 즉 인이란 ‘두 사람’의 뜻이란 것이다. 다산의 말을 들어보자.

아버지와 아들은 두 사람이고 형과 아우는 두 사람이며, 임금과 신하는 두 사람이고 목민관과 백성은 두 사람이다. 무릇 두 사람 사이에서 그 본분을 다하는 것을 인이라 한다.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자식된 자가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나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한다”라고 말하거나, 신하된 자가 그 임금에게 충성하면서 “나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충성한다”라 말한다면 사체(事體)에 상당한 손상이 있을 것이다.(『중용강의보』 권1)

인이란 것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사람의 마음에 끼워 넣은 것 즉 선험적 리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실천적 윤리 규범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리(理)의 실재성 자체를 부정한 다산으로서는 추상적 무형물인 리(理)로써 인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산이 생각하는 인은 ‘사랑의 리’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다.

인이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다. 자식은 아비에게 향하고 아우는 형에게 향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향하고 목민관은 백성에게 향하여 무릇 사람과 사람이 서로 향해 부드럽게 사랑하는 것, 그것을 인이라 이른다.(『논어고금주』 권3)

부모를 사랑하고 임금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는 인이라는 명칭이 성립되지 않는다. 윤리적 실천을 하고 난 후에 비로소 인이란 개념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윤리적 실천을 하기 전에도 인이 선험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존재한다는 주자의 학설과는 다르다.

사랑하기 전에도 마음속에 인이 갖추어져 있다면 그 인을 잘 가꾸고 보호하기만 하면 되지 구태여 그것을 실천할 적극적인 이유가 없어진다. 다산은 이렇게 실천성이 거세된 인의 개념은 옛 성인들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자는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래서 다산도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를 비롯한 방대한 경전 주석서에서 대부분 주자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의 개념을 비롯해서 성리학의 몇 가지 중요한 명제(命題)에 대해서는 주자와 견해를 달리한다.

그리고 주자와 견해를 달리하는 이 부분이 다산 실학을 성립시킨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다산을 유학자라 부르는 것은 온당하지만 성리학자라 부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송 재 소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 퇴계학연구원 원장

· 저서
〈중국 인문 기행 2〉,〈중국 인문 기행 1〉창비, 2017/2015
〈시로 읽는 다산의 생애와 사상〉, 세창출판사, 2015.04
〈다산시 연구〉(개정 증보판), 창비, 2014
〈다산의 한 평생〉, 창비, 2014
〈역주 다산시선〉(개정 증보판), 창비, 2013
〈한국한시작가열전(송재소와 함께 읽는 우리 옛시)〉, 한길사, 2011
〈한국 한문학의 사상적 지평〉, 돌베개, 2005
〈한시 미학과 역사적 진실〉, 창작과비평사, 2001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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