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바주카포’ 신화의 붕괴...지금 일본경제는 한국경제의 거울
'구로다 바주카포’ 신화의 붕괴...지금 일본경제는 한국경제의 거울
  • 정종석
  • 승인 2022.04.2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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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각국에서 고물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더 커...구로다는 일본은행 역사상 유일하게 재임기간이 10년을 넘긴 총재...전례없는 현금 경기부양을 금융시장은 '구로다 바주카포'라고 환영했으나 엔화가치 속절없이 추락...비상경제시대에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일본은행 구로다 총재를 뛰어넘는 능력과 역량을 발휘해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는 최장수 일본은행(BOJ) 총재이다. 후쿠오카현 출신인 그는 도쿄대 법학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경제의 사령탑인 대장성(현 재무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도쿄대 재학 중 사법시험과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대장성 요직과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까지 거치며 카리스마도 갖췄다.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듬해인 2013년 3월 임기 5년인 일본은행 수장에 올랐다. 2018년 연임에 성공한 그는 지난 해 9월 이치하다 히사토 전 총재의 재임기록(3115일)을 넘어서 현재 BOJ 역사상 최장수 총재다.

31명의 일본은행 총재 가운데 5년 임기를 연임한 인물은 구로다가 세 번 째다. 2023년 4월까지인 임기를 모두 채우면 일본은행 역사상 유일하게 재임기간이 10년을 넘긴 총재가 된다.

구로다는 2012년 12월 재선출된 아베 신조 총리의 추천으로 일본은행 총재가 돼 '아베노믹스'를 실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금융 완화, 재정 완화, 구조 개혁이라는 아베가 쓴 '세 개의 화살' 중 가장 중요한 금융 완화 정책을 담당했다.

그는 당시 본원통화를 2년 동안 2배로 늘리는 대담한 통화 완화 정책을 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직접 국채는 물론, 회사채·기업어음까지 사들이며 통화량을 늘렸다. 2016년에는 마이너스 기준금리 정책까지 도입했다.

이처럼 전례없는 현금 경기부양을 금융시장은 '구로다 바주카포'라고 환영했다. 돈이 엄청나게 풀리면서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지난 2016년 1월에는 일본은행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미국 달러화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불려졌던 엔화의 가치가 맥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달 22일 120엔을 돌파한 엔/달러 환율은 지난 20일 엔·달러 환율은 20년 만의 최고치인 달러당 129엔대까지 급등했다. 최후의 저지선이라던 이른바 구로다 방어선(달러당 125엔)마저 무너졌다. 원·엔 환율도 오랜 기준인 1 대 10 비율이 깨져 100엔당 960원 선으로 내렸다.

엔화는 위기에 유독 강한 통화...전쟁-글로벌 경제위기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최근엔 정반대 흐름

전 세계 각국에서 고물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저상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엔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돈을 풀어 엔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기업이 성장하고, 근로자들의 임금도 함께 올릴 수 있다는 '좋은엔저'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엔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무역적자로 이어지는 등 '나쁜 엔저'로 작용해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급격한 엔화 약세는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 저하, 기업의 수익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 수입가격 상승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 실적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엔화는 위기에 유독 강한 통화였다. 일본의 넉넉한 외화 자산과 탄탄한 경제 기초체력을 배경으로 전쟁이나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정반대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원자재 가격 급등 사태가 이어지자 엔화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금리정책 때문이다. 미국 등 주요국이 정책금리를 올리며 긴축에 들어가는데 일본만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하면서 투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환율은 다른 통화와의 교환비율이다. 그래서 단순히 금리 차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상대국 경제력이 강하면 어쩔 수 없이 약세를 보인다. 최근의 달러 강세, 엔화 약세는 미국보다는 일본 경제의 내재적 요인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초고령화와 저성장, 코로나 위기 부실 대응, 세계 2위의 부채 비율, 17개월 째 이어지는 경상수지 적자,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부진이라는 악재들이 엔화 가치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엔저와 경상적자 우려가 일본 경제의 비관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처럼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에 의존한다. 유가가 오르고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에 지급해야 할 비용이 급증, 경상수지가 나빠질 수 밖에 없다.

한일 수출 제조업 중심의 '닮은 꼴'...한국, 원유 등 수입급증으로 무역수지 적자폭 심화로 일본과 똑같은 우려

우리나라도 이웃나라 일본의 추락이 남의 일이 아니다. 두 나라가 수출 제조업 중심의 닮은 꼴 산업구조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원유, 가스, 석유제품 수입 급증으로 이달 들어 지난 10일까지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도 35억달러에 이른다. 이런 추세라면 일본과 똑같은 우려를 낳고 있다.

내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새 정부에서 통화정책을 책임지게 될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4년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그 어느 때보다 풀기 힘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당장 10여 년 만에 4%대를 돌파한 물가를 잡아야 한다. 인플레이션 극복은 이 총재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다. 총 1862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찍은 가계부채 문제도 해소해야 한다. 올해 2%대 경제성장률이 우려되는 가운데 구조적 문제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취임사에서 이 총재는 한은이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환시대의 적극적인 역할 확대론인 셈이다. 역대 한은 총재들이 한은의 설립목적인 물가안정을 중심으로 포부를 밝혀왔던 것과는 다르다.

그는 지금 한국 경제가 뉴노멀의 전환에 성공해 도약할 수도, 장기 저성장의 나락으로 빠져들 수도 있는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고 진단했다. 그만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책임이 통화 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옳은 진단이다. 역대 어느 한은 총재도 고유업무인 통화신용정책을 넘어서 전체 거시경제에 관한 포부와 소신을 밝힌 사례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과거와 달리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 이제 통화정책 만으로는 거시경제의 안정을 이룰 수 없다. 재정과 구조개혁을 비롯한 여타 분야와의 공조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

그래서 한국 경제가 올바른 길로 갈 방법으로 민간 주도형으로 경제정책의 프레임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그는 제언했다. 지금과 같은 비상경제시대에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일본은행 구로다 총재를 뛰어넘는 능력과 역량을 발휘해 줄 것을 충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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