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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대횡령의 시대'...한탕주의와 쾌락병을 치유해야
불황 속 '대횡령의 시대'...한탕주의와 쾌락병을 치유해야
  • 정종석
  • 승인 2022.05.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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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관리하는 사람들, 부실한 내부 관리 시스템 악용해 자금 빼돌려...도박, 가상화폐, 주식 등 집착
횡령범들은 돈을 모두 가상화폐, 주식 등 투자에 활용...불황 우울증 속 포모(FOMO)증후군 만연해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영화는 때대로 상상 속의 현실을 말한다. 화투를 소재로 삼은 ‘타짜’ 1, 2편과 도심 전체를 불법 도박판으로 만든 ‘빅매치’, 카지노를 습격해 돈을 강탈하는 ‘오션스’ 시리즈는 한탕주의의 짜릿함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도박 영화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판’에 휘말린 인물을 영웅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타짜’ 1편의 조승우, ‘오션스 일레븐’의 조지 클루니는 관객의 기억에 또렷하게 남은 영화 속의 영웅이다. 사실은 엄연한 범죄자이지만 극적인 미화로 순진한 대중의 모방심리마저 자극한다.

우리나라에는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자고 일어나면 거액 횡령사건이 신문의 경제·사회면을 장식한다. 이른바 '대횡령의 시대'라고 해도 될 정도다.

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연이어 횡령 사건이 터졌다. 지난 1월 오스템임플란트 재무관리 직원은 회사 자금을 빼돌려 개인 주식 투자 등에 사용하다 꼬리가 잡혔다. 계양전기 재무팀 대리 또한 가상화폐거래소의 선물옵션 투자, 해외 도박사이트, 주식투자, 유흥비, 게임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부터 4개월여가 지났다. 이번엔 4대 시중은행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은행에서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내부 직원의 일탈이 문제였다. 차장급 직원인 A씨는 과거 대우일렉트로닉스 입찰 당시 보관하고 있던 계약금 일부를 빼돌렸다. 무려 10년간 600억원이 넘는 돈을 사유화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횡령범들은 돈을 모두 가상화폐, 주식 등 투자에 활용

규모는 적지만 신한은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부산의 한 영업점 직원이 시재금(고객 예금을 대출하고 금고 안에 남은 돈) 2억원 상당을 빼돌렸다. 은행들의 내부 통제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셈이다.

그리고 K뷰티의 상징인 아모레퍼시픽에서도 횡령 사실이 들려왔다. 일부 직원이 30억원 규모의 회삿돈을 횡령해 가상 자산 투자와 불법 도박 등에 쓴 것으로 확인됐다. 영업 담당 직원 3명이 거래처에 상품을 공급한 뒤 대금을 빼돌리거나 허위 견적서 또는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횡령했다. 상품권 현금화 등 편법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색조 화장품 기업으로 유명한 클리오에서도 직원 횡령 사건이 벌어졌다. 40대 과장급 직원인 B씨는 지난해 초부터 올해 초까지 홈쇼핑 화장품 판매업체로부터 받은 매출액 일부를 자신의 통장으로 빼돌려 18억9000만원가량을 개인적 용도로 썼다. 횡령한 돈은 이미 인터넷 도박 등에 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횡령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실한 내부 관리 시스템을 악용해 자금을 빼돌려 한탕주의와 쾌락에 빠졌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횡령범들은 횡령금 모두 가상화폐, 주식 등 투자에 활용했다. 이를 두고 코로나19로 인해 자산시장이 폭등하는 바람에 이 대열에 따라들어가기 위해 무리한 범죄까지 감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해 이른바 '슈퍼 개미'들이 속출하자 직장인 사이에서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증후군이 광범위하게 퍼지기도 했다.

우리말로 '소외불안증후군' 또는 '고립공포증'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옥스퍼드사전 온라인판은 '멋지고 흥미로운 일이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 주로 소셜미디어의 게시물에 의하여 유발됨'으로 설명한다. 자신만 뒤처지고, 놓치고, 제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을 가리킨다.

잇단 대규모 횡령사건으로 내부 감독 및 통제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

실제로 대다수 횡령범들은 올해 초 자산시장의 냉각 이후 자산을 탕진하자 횡령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한탕주의가 만연한 배경에는 불황 우울증이 자리한다는 생각이다. 다급한 마음에 조금만 돈이 생겨면 가상화폐·주식에 투자하며 '인생역전은 한 방'을 외치지만,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황 우울증은 물론 정식 질병 명칭은 아니다. 경제난으로 생기는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많은 영향을 주다보니, 불경기 경제난으로 생기는 우울증을 일부 의사들은 불황 우울증이라 고 부른다.

특히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 이들은 불법 도박이나 가상화폐, 주식, 로또 등에 집착하는 '한탕주의형'이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는 '의욕상실형'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잇달아 터진 대기업에서의 대규모 횡령사건으로 인해 내부 감독 및 통제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내부 감시 시스템 강화를 위한 당국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지배구조와 회계가 불투명한 회사가 어떻게 상장심사를 통과하고 시장감시를 피해 장기간 회계장부 조작이 가능했는지 금융당국은 철저히 파헤치고 따져야 한다.

횡령사건이 터지면 그때만 흥분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현재의 금융감독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회 또한 내부통제 기준을 위반한 임직원의 제재 및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 책임경영을 강화해야 한다. 또 관리 소홀로 인한 피해를 개인 투자자들에게 전가하는 일도 막아야 한다.

마침 지난 10일 윤석열 새 정부가 출범했다. 지금 물가상승 걱정으로 경제가 위기에 처한 국면이다. 기준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떨어지는 등 국제적으로도 경제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정부당국과 정책책임자들은 더 큰 사고, 더 큰 시스템 붕괴가 있기 전에 우리 경제의 밑바닥부터 점검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래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같은 '대횡령의 시대'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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