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다산의 서학관(西學觀)과 신유옥사의 비극
정조와 다산의 서학관(西學觀)과 신유옥사의 비극
  • 박석무
  • 승인 2022.06.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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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지나간 역사를 읽다보면 비분강개의 마음을 참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중종 시절, 기묘사화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조광조 같은 개혁적인 학자가 국정을 쇄신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워서 제대로 나라를 바로잡아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을텐데, 모략과 중상에 휘말려 38세로 사약을 받고 죽어가야 했던 일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해줍니다.

정조 시절, 다산 같은 개혁적인 대학자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조성되었다면, 나라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신유옥사 때문에 실학자요 경학자요 과학자였던 다산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그 역사의 비극,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둘째 형 정약전은 다산의 『주역사전』이라는 책의 서문을 썼는데, 귀양살이라는 고난의 세월과 궁한 때를 만났던 이유로 다산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이 탄생할 수 있었다면서, 권력욕의 마음에서 벗어나고 긴긴 겨를을 얻어 마음껏 연구하고 독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만한 대저를 남겼다고 귀양살이를 오히려 다행한 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연민의 마음은 묻어둘 수가 없습니다. 강재언(姜在彦) 교수의 오래 전의 논문 「丁茶山의 西學觀」이라는 글을 읽다보니, 서학(西學)과 천주교를 분리해서, 서양의 학문과 과학기술 등을 서학이라 정의하고, 이가환ㆍ정약용ㆍ정약전 등 서학에 밝은 학자들이 정조의 정치를 보좌하여 서양의 학문과 과학기술을 제대로 연구해서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만 있었다면 당시 나라가 어떻게 발전되었을 것인가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신유옥사’라는 비극 때문에 19세기 초에서 1880년대까지 80여년 동안 서양 학문이 조선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던 사실을 나라의 패망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노론 벽파와 공서파들이 공모 합동하여 서양의 과학사상에 밝은 학자들을 천주학쟁이라고 매도하여 파멸시켜 버림으로써 19세기의 조선은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노라고 개탄하는 내용을 강교수는 주장했습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조야말로 참으로 개명한 군주요 혁신을 주장하던 군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정조가 당시 최고로 서학에 밝던 이가환을 불러, 「수리역상지언(數理曆象之原)」을 밝히기 위한 편서(編書)를 위하여 북경에서 책을 사와야 하지 않느냐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이가환의 답변이 전해집니다. “시속의 무리들이 식견이 워낙 어두워 수리가 어떤 학문인지 교법(敎法 : 西敎)이 어떤 법술인지 알지 못하고 혼동하여 꾸짖고 호통치는데 이제 이 책을 편찬한다면 저에게 더욱 비방의 소리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장차 위로 임금님의 덕에도 누를 끼칠 것입니다 라고 말하여 중단되었지만 임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다산의 정헌 이가환 묘지명)라는 글에서 당시의 국가 형편이 제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이가환의 서학의 실력이 모아져 그런 책을 간행하여 서양의 수리학이나 역상학의 원리가 제대로 밝혀져 과학기술의 연구에 도움을 받았다면 나라의 발전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겠는가. 그래서 천주교의 탄압이 서양의 과학사상에까지 확대된 사실은 역사의 후퇴를 자초한 시대의 불운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유옥사의 비극이 없이 이가환이나 정약전ㆍ정약용 등의 과학 연구가 국가의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나라의 형편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오늘에도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논리는 온갖 세력들이 공모 합동하여 매도하는 일만 반복되고 있는데, 한 번 쯤 신유옥사의 비극을 다시 되생각해 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 석 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에게 배운다』, 창비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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