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인가 ‘헌 정리’인가...새출발기금, 벌써부터 '과속' 우려
‘새 출발’인가 ‘헌 정리’인가...새출발기금, 벌써부터 '과속' 우려
  • 권의종
  • 승인 2022.08.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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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채무자에게도 도움 줘야...그리고 그 부담은 일을 벌인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새출발기금’이 새 출발 한다. 3조6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3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배드뱅크다. 코로나19 피해 개인사업자와 법인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90일 이상 장기 연체 대출자에 대한 채무 조정 프로그램이다. 조정 한도는 담보 10억 원, 무담보 5억 원, 총 15억 원. 사업자·가계대출, 담보·보증·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을 망라한다.

10월부터 두 그룹으로 나눠 지원한다. 3개월 이상 대출금을 연체한 ‘부실차주’와 아직 3개월 이상 연체는 안 했으나 곧 장기 연체를 할 가능성이 큰 ‘부실우려차주’다. 부실차주에 대해서는 원금의 60~80%를 탕감해준다. 소득 대비 순부채 비중과 경제활동 가능 기간, 상환 기간 등을 고려해 원금 감면율이 정해진다. 재산이 빚보다 많으면 탕감을 못 받는다.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 만 70세 이상 저소득 고령자 등 취약계층은 최대 90%까지 원금을 깎아 준다. 원금 탕감을 하고 남은 대출에 대해서는 최장 1년 동안 상환을 유예해 준다. 대출은 10년(부동산 대출은 20년) 동안 분할상환이 가능하다. 이 기간 이자와 연체 이자는 감면된다.

부실우려차주에게는 원금 탕감이 없다. 대신 낮은 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준다. 연체 30일 미만의 대출자에는 대출 금리가 연 9%가 넘는 금액을 9%로 낮게 조정해준다. 연체가 30일이 넘어가 신용점수가 하락한 대출자는 상환 기간에 따라 금리를 연 3%대 후반 내지는 4%대 후반으로 낮춰준다.

3개월 이상 연체 부실차주에 원금 최대 90% 탕감...부실 우려 차주엔 고금리를 저금리로 전환

원금 감면 후 은닉재산이 발견되면 채무 조정이 무효 처리된다. 부실차주에게는 신용 페널티도 부과된다. 2년간 채무 조정 프로그램 이용정보가 등록돼 신규 대출이나 신용카드 이용이 제한된다. 부실우려차주에게는 별도의 페널티는 없으나 신용 상태에 따라 신규 금융거래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자영업 가구의 평균 부채가 1억2,000만 원인 점을 고려할 때 3~40만 명이 혜택을 볼 거라는 게 정부 측 추산이다.

반발이 극심하다. 코로나 피해 사업자에 대한 채무 조정의 취지와 당위성에 대체로 공감은 한다. 부작용과 후폭풍에 대한 걱정도 크다.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큰 우려 사항이다. 언론 보도마다 댓글이 순식간에 무수히 달렸다. 힘들어도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아온 차주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본들 되레 손해인 현실에 분노가 극도로 치솟는다. 지금부터라도 연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만 하다.

정부도 할 말은 있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신청 자격을 코로나 피해 차주로 한정하고 원금 조정을 90일 이상 연체한 장기 연체자에 국한해 적용하는 등 보완장치를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그밖에 나타날 수 있는 주요 도덕적 해이는 고의로 연체했거나 고액 자산가가 소규모 채무감면을 위해 조정을 신청하는 등 채무 조정을 거부할 수 있는 다양한 요건을 마련하는 방식을 통해 방지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도가 지나치다. 원금, 그것도 90%까지 감해주는 건 누가 봐도 무리수다. 상환 기간을 늘려주고, 고금리를 저금리로 바꿔주고, 이자를 일부 깎아 주는 정도에 그쳤어야 했다. 금융이 원가. 돈을 빌려주고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원금까지 탕감하는 건 금융의 범주를 벗어난다. 굳이 말하자면 무상복지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번 조치, 원금 탕감까지는 지나쳐...상환 기간 늘리고, 금리 낮추고, 이자 감면 등에 그쳤어야

용어 표현은 정직해야 한다. 말은 ‘새 출발’이나 실은 ‘헌 정리’에 불과하다. 부실채권전담은행을 배드뱅크(bad bank)로 명명한 미국의 예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용어로의 표현이 능사일 수 없다. 소비자에게 되레 혼란만 줄 뿐이다. 과대 포장된 금융용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에도 햇살론, 디딤돌대출, 안심전환대출, 재도전 성공패키지 등 가식적인 명칭들이 범람했다.

‘새 출발’이라는 수식어는 지원대상에 비춰봐도 가당찮다. 새 출발은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는 경우나 주체에 어울리는 용어다. 금융지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날 수 기업을 도와줄 때 사용해야 하는 단어다. 회생 여부를 불문하고 장기 연체를 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턱대고 빚 탕감을 하는 데는 알맞지 않다. 성실 채무자를 약 올리고 기를 꺾는 행위다.

사업성이 없는 기업은 원금을 깍아 줘도 채무 상환을 안 하려 할 수 있다. 예전처럼 고리 사채를 얻어서라도 은행 돈을 갚아가며 사업에 목숨거는 책임경영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정부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크다. 금융공기업은 대출이나 보증 지원 시 대표이사 연대 입보를 면제해왔다. 그러니 사업이 조금만 힘들어져도 하던 회사를 문 닫고 새로 법인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리 없다.

우수 채무자를 격려는 못 할 망정 소외까지 시켜선 안 된다. 그들에게도 어떤 형식으로든 어느 정도의 배려를 해야 마땅하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법. 금리 인하, 이자 감면, 상환 기간 연장 등의 금융 혜택도 공정성을 유지해야 뒤탈이 없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부담은 민간 금융회사가 아닌 재정에서 감당해야 맞다. 정부가 저지른 일은 정부가 해결하는 게 순리다. 결자해지가 정도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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