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간 경계 허무는 ‘빅블러(Big Blur)’ 시대의 한국 금융산업 활로
산업간 경계 허무는 ‘빅블러(Big Blur)’ 시대의 한국 금융산업 활로
  • 권의종
  • 승인 2022.09.1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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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 속 우리나라 금융이 발군의 기량 발휘할 호기...유대인 방식의 경쟁력과 '넘나듦’으로 새 돌파구 찾을 때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산업이 내우외환이다. 여러 걱정거리가 안팎에 널려있다. 은행 노조가 속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총파업을 벌였다. 은행원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사거리에 집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용산 삼각지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3고(高) 여파로 민생이 휘청이는 판에 평균 연봉 1억 원 넘는 은행원들이 파업에 나선 것이다. 

노조는 5.2% 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즉 4.5일제 근로제 1년 시범 실시, 점포 폐쇄 시 사전 영향평가제도 개선, 임금피크제 개선 등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금융 공공기관 혁신안 중단, 산업은행 부산 이전계획 철회 등 사용자 측 대표기구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따가운 사회적 시선과 부정적인 여론에도 파업은 강행됐다. 

외부 환경 또한 녹녹지 않다. 금융산업에 대한 제도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시장 자율성을 위협하는 금융법안 발의가 봇물 터지듯 한다. 경제위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긴급한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에 약관 변경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출 보유자가 일정 기간 이자만 내게 하는 상환유예 등의 보호 조치를 정부가 취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목표이익률 등 대출금리 산정근거를 주기적으로 공시케 하는 은행법 개정안도 나왔다. 지금도 은행이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가감조정금리를 공시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가산금리의 구성 요소인 리스크프리미엄과 신용프리미엄, 목표이익률 등의 세부 내역까지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법정 최고금리를 연 12%∼15%로 낮추라는 이자제한법 개정안도 제출됐다. 법정 최고금리를 넘는 대출 계약 자체를 무효화 하자는 대부업법 개정안까지 등장했다.

안에서는 금융노조 총파업...밖에서는 시장 자율성 위협하는 금융법안 발의 봇물

어디 이뿐이랴. 낮은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우대가맹점 범위를 넓히자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도 선보였다. 현재 연간 매출이 30억 원 미만인 영세 가맹점엔 1.5% 안팎의 우대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그런데 매출 계산 과정에서 기타 세금·부담금이 포함돼 순수익 규모에 비교해 매출이 과다 산정되는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백가쟁명이 따로 없다. 

금융회사야 당연히 반대다. 금융 자율성을 무너뜨리는 관치금융의 전형이라는 항변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만을 염두에 두고 금융회사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고려치 못한 편파적 법안이라는 볼멘소리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작금의 경제위기는 채무자뿐 아니라 은행에도 위기이며, 은행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연 12% 이상의 고금리 대출이 금지되면 저축은행 대출이나 카드론 시장이 무너져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린다”며, 1금융권에서 대출이 거절되는 중저신용자는 금리 수준보다 대출실행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도 불가 입장이다. 1.5% 수수료율은 카드사 ‘역마진’ 구간인 데다 전제 가맹점의 96%가 이미 우대 수수료율 혜택을 받고 있어 대상 범위를 더 늘리는 건 무리라고 주장한다.

난세에도 영웅은 있다. 이 어려운 와중에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수익을 내는 금융회사가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다. ‘금융 플랫폼’을 표방해온 인터넷금융사는 은행의 고유 기능을 뛰어넘는 과감한 행보를 서슴지 않는다. 자행 상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제휴사 상품 소개에 공을 들인다. 은행의 전통적 수익 기반인 이자수익뿐 아니라, 경쟁 금융사와의 제휴를 통한 플랫폼 수수료까지 노리는 것이다. 

은행의 전통적 수익 기반인 이자수익 외에...경쟁사 상품 소개로 플랫폼 수수료 노리는 인뱅

케이뱅크는 24시간 아무 때나 앱에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카카오뱅크는 더 열성적이다. 제휴 증권계좌 개설, 연계 대출, 제휴 신용카드 발급 등의 플랫폼 사업을 확대했다. 인터넷은행 최초로 내놓은 주식계좌 개설 서비스는 올 6월 말 기준 누적 계좌 수 600만 개를 돌파했다. 올해 상반기 플랫폼 수익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8% 증가한 469억 원을 거둬들였다. 

토스뱅크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역시 제휴사의 금융상품을 소개하는 서비스를 시장에 내놨다. 그 첫 작품으로 한국투자증권의 ‘퍼스트 발행 어음’을 선보였다. 만기 6개월 기준 연 4.3% 금리 조건으로 2000억 원을 4일 만에 완판했다. 카카오페이는 97곳 금융회사의 정기 예·적금 상품 600여 개 금리 정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상품 통합공시 포털 ‘금융상품 한눈에’ 정보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 

가입 기간, 우대금리 포함 여부, 금리 유형, 비대면 가입 여부 등의 조건을 사용자가 설정하고 검색할 수 있게 했다. 편의성과 가시성을 높였다. 시중에 출시된 가장 높은 금리의 상품을 기준으로 예상 이자 계산 내역과 전달 대비 금리 변동 폭을 알려준다. 상품 가입 계획이 있는 사용자가 좋은 금리의 상품을 선택하도록 ‘예금상품 알림 받기’ 서비스도 제공한다. 경쟁사 간 경계를 넘나들며 수익을 창출하는 신출귀몰의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 

‘넘나듦’의 경쟁력은 유대인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15∼16세기, 소수의 유대인이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황이 기독교도의 이슬람 접촉을 금지한 데 있었다. 십자군 전쟁 때도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양쪽을 드나들 수 있는 유대인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유대인이 하는 걸 우리라고 못 할까.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 한국 금융이 발군의 기량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다. 필히 해야 하고, 능히 할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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