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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과 강대국의 흥망 단상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과 강대국의 흥망 단상
  • 정종석
  • 승인 2022.09.3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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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과 의회 교회의 조화가 돋보였고, 이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국민을 연합하게 만든 힘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은 화려했던 대영제국의 마지막 회상 느낌...서서히 유럽의 작은 소국으로 남게 될 지도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영국은 근대 역사상 지구에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영국의 국명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줄여서 UK로 표기한다.

원래 브리튼(Britain)은 섬 이름이다. 브리튼 제도에서 가장 커서 ‘그레이트 브리튼’이라고도 한다. 이 섬엔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동부 ‘잉글랜드’와 서부 ‘웨일스’, 그리고 북부 ‘스코틀랜드’가 있다. 잉글랜드는 브리튼의 중원인 셈이다. 두 번째 큰 섬 아일랜드는 1922년 독립했지만 북부는 영국령이다.

영국인들이 처음 만나면 출신지를 묻고, 축구 리그를 따로 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가끔 독립을 거론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영국은 여러 민족들을 연합한 후 근대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장례식을 끝으로 영면했다. 70년 동안 쓰고 있던 왕관을 영영 내려놓은 여왕은 스스로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됐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영국 군주 중 가장 오랜 70년을 재위하는 동안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의 상징이자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한 여왕을 기리는 의미였다. 영국 국장은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서거 이후 57년 만이었다.

런던엔 100만 명이 운집했고, 장례식엔 약 2,000명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 나루히토 일왕 부부를 비롯해 각국 정상과 왕족 등 약 500명이 자리했다. '세기의 이벤트'였다.

여왕 서거 이후 런던은 거대한 추모의 도시였다. 하루 10만 명이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여왕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여왕의 하관식이 열렸던 런던에서 윈저성에 이르는 30km 연도에서 영국인들이 여왕의 마지막 길을 꽃으로, 박수로 송별했다. 영국의 언론들은 전 세계에서 여왕의 장례식을 시청한 사람을 40억 명으로 추산했다.

영국인들은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여왕의 죽음 앞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애도를 표시

필자는 여왕의 장례식날 밤 늦게까지 이를 유튜브로 지켜봤다. 여왕의 운구행렬이 영국 여러 곳을 지날 때 시민들은 박수로 여왕을 배웅했다. 우리네 같으면 조용히 손을 모으고 지켜보거나 슬픈 표정을 지었겠지만 영국시민들은 70년 동안 재임했던 여왕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듯 박수를 보내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세기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영국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영국에서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Kings reign but do not govern)’는 지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은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여왕의 죽음 앞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애도를 표시했다. 여왕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시민들의 차분하고 질서 있는 몸가짐은 자못 부러울 정도였다.

왕실과 의회 그리고 교회의 조화가 돋보였고, 이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국민을 연합하게 만든 힘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은 어쩌면 화려했던 대영제국의 마지막 회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에 해가 지지 않는 찬란한 영광을 누린 시기가 있었고 그러한 역사적 유산이 후대 국왕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70년을 재위했던 엘리자베스 2세 개인에 대한 영국 국민의 존경과 지지 역시 군주제가 유지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런데 여왕 사후 그의 아들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영국에서 더 이상 군주제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다시 들린다. 다이애나비와의 이혼과 커밀라 파커볼스와의 불륜으로 인기가 떨어진 찰스 3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그다지 크지 않다. 또한 즉위식에서 서명을 하며 탁자 앞에 놓인 펜 받침대를 치우라며 짜증을 내는 모습이 생중계되며 자질 논란까지 불거졌다.

오늘날의 영국을 보면서 인류역사상 강대국들의 흥망의 역사를 되새기게 된다. 19세기까지 영국이 세계를 제패했다고 하면 20세기 들어 미국이 언제나 세계사의 중심이었다. 

최소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미국은 아예 다른 나라의 추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믿게 됐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21세기 이후에도 상당 기간 영원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상대적 쇠락은 현실서 나타나...라이벌 중국과 비교하면 성장의 격차 더욱 커

그러나 그런 믿음들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1986년 역사가 폴 케네디 에일대 교수는 대작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을 통해 강대국들의 흥망성쇠는 그들 간의 성장이 불균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강대국들 간의 성장률 격차가 장기적으로 그들 간의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폴 케네디 교수는 15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강대국의 정치, 경제적 대두와 쇠락의 이유를 분석했다. 강대국의 국력은 오로지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정확하게 파악하는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책이 분석한 강대국은 합스부르크 제국, 대영 제국, 프랑스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제국, 그리고 미국이다.

각국의 재정 대비 군사비 지출을 비교, 왜 영국이 18세기말에 프랑스와의 패권경쟁에서 승리했는지 설명했다. 즉 영국 재정의 건전성이 프랑스에 비해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상대적 쇠락은 현실에서 나타난다. 비교적 성장을 멈춘 적이 없던 미국은 1950년대 이후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성장률이 둔화됐다. 상대적 쇠락에 접어든 것이다.

1960년에서 2020년 사이 미국의 실질 GDP는 5.5배 증가한 반면 세계의 다른 지역은 8.5배로 늘었다. 미국 경제가 절대적으로는 성장했으나 다른 경쟁 국가들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주요 라이벌 중국과 비교하면 성장의 격차는 더욱 크다. 미국 경제가 5.5배 성장하는 동안 중국은 무려 92배나 성장했다. 다시 말해 1960년 미국 경제가 중국의 22배였던 반면 2020년에는 겨우 1.3배 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 전체의 파이가 커진 반면 미국 몫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인간은 생로병사하고, 강대국의 세계도 영고성쇠(榮枯盛衰) 속에서 돌고 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어느 나라도 이 원리를 피하기 어렵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 대영제국은 과거의 영화를 잃고 서서히 유럽의 작은 소국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상념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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