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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금융이 바른 금융...신속한 지원이 고객 생명줄, 금융회사 경쟁력
빠른 금융이 바른 금융...신속한 지원이 고객 생명줄, 금융회사 경쟁력
  • 권의종
  • 승인 2022.10.0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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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시대 ‘현장 만능’에 갇힌 아날로그 금융...신속 지원 막는 현장방문 관행은 ‘전가보도(傳家寶刀)’ 아닌 ‘녹슨 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제2차 세계대전 때다.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 장교가 몰던 B-24 폭격기가 실종 아군을 수색하던 중 고장으로 태평양에 추락했다. 탑승자 11명 중 8명이 사망했다. 19세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육상선수 출신의 루이스 잠페리니와 그의 동료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 구명보트로 망망대해를 표류했다. 상어와 폭풍과 싸우며 적기로부터 날아드는 총탄에 몸을 맡겨야 했다.

날생선과 갈매기를 잡아먹으며 47일을 버티던 어느 날. 마셜 제도 부근에서 일본 해군에 발각됐다. 해군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오오모리 소재 육군 포로수용소로 압송됐다. 잔혹한 고문과 배고픔이 이어졌다. 일본군의 옥쇄정책으로 도쿄로 압송돼 종전 때까지 갇혀 지내야 했다. 기적 같은 이들의 여정은 ‘언브로큰(Unbroken)’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됐다.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을 맡아 세간의 주목을 더 받기도 했다. 

영화의 원작자인 로라 힐렌브랜드의 스토리 또한 한편의 감동 드라마다. 작품의 유명세와 달리 작가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 작가로 살았던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가 그런 그의 이야기를 북미권 영화 개봉에 즈음해 대중에게 알렸다. 작가를 오랜 기간 집안에 잡아둔 것은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지병이었다. 오하이오주 케니언대학 2학년 때 발병했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던 어머니 집에서 요양하며 지냈다. 

이때부터 지인과 연락이 끊기고 잠적이 시작된 셈이다. 지병과 싸우며 2권의 논픽션을 발표했다. 대박이었다. 단번에 미국 논픽션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2001년 출간된 첫 번째 책 ‘씨비스킷(Seabiscuit)’은 1930년대 미국 최고의 스포츠 영웅인 경주마 이야기였다.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성공을 거뒀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철 지난 믿음...금융산업도 현장조사를 ‘금과옥조’로 맹신

힐렌브랜드가 펴낸 두 번째 책이 바로 언브로큰이다. 꺾이지 않는 삶의 의지와 희망, 용기를 손에 잡힐 듯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또한 2014년에 영화로 제작됐고 북미 지역 개봉 후 아마존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영화는 이듬해 여러 나라에서 상영돼 성황을 이뤘다. 안타깝게도 주인공 루이스는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의 완성을 못 보고 9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파서 외출도 못 한 처지에 어떻게 논픽션을 쓸 수 있었을까. 실화 작가들은 집필 대상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이야기를 끌어내곤 한다. 힐렌브랜드는 그러지 않았다. 언브로큰을 쓰는 동안 작품 주인공을 단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었다. 전화 통화로 인터뷰를 대신했다. 그런 그는 전화 인터뷰의 장점을 되레 소상히 열거했다. 인터뷰를 위해 옷을 차려입지 않아도 되고, 질문지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상대에 들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비대면의 장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상태에서 어려운 질문을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주인공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겉모습을 모르기에 선입견 없이 상대를 상상할 수 있었다는 역설이 놀랍다. “잠페리니는 나에게 19세의 달리기 선수, 26세의 2차대전 폭격수였을 뿐, 80대 노인이 아니었다”는 술회가 그럴싸하다.

현장 만능주의에 대한 그릇된 믿음은 우리 사회의 도처에 산재한다. 금융산업도 예외일 리 없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우문현답’에 대한 믿음이 맹신에 가깝다. 금융회사들이 대출할 때 차주의 사업장은 반드시 나가봐야 하는 거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 그저 덮어놓고 현장방문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고객은 당장 돈이 급한 처지...현장조사로 지원 늦추는 건 후진 금융의 구태이자 공급자 횡포

현장방문이 주는 이점이 작지 않다. 탁상에선 알기 힘든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장 사람들과 만나 질문을 하고 의견을 들을 수 있다. 그래도 그게 선택 사항은 될지언정 필수 요건은 될 수 없다. 시대착오적이다. 현장에 가야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아날로그 시절은 벌써 지났다. 고객 동의만 얻으면 앉아서도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빅데이터 시대다.

금융거래에서 현장조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그 당위성과 실효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이다. 구태여 적지 않은 시간과 인력, 비용을 들여가며 현장에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면 된다. 현장조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정상 영업’ 여부도 현장에 나가 봐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매출이 정상적으로 발생하고, 대출금이 제날짜에 상환되며, 세금이 제대로 납부되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장 사람들과의 면담도 생각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대출을 신청한 고객의 처지에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나 제공하지 불리한 얘기를 꺼낼 리 만무한 때문이다. 정작 놓쳐서는 안 되는 현장조사의 중대 역기능은 따로 있다. 금융지원이 늦어지는 점이다. 금융소비자는 한시가 급한 사람들이다. 당장 자금이 필요한 입장이다. 

돈이 급한데 현장조사로 지원이 늦어지는 거야말로 후진 금융의 구태이자 명백한 공급자 횡포라 할 수 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국내외 상거래나 금융거래 시 아무리 큰 금액도 눈 깜짝할 새에 오가는 상황이다. 현장조사는 이제 ‘전가의 보도’가 아닌, 이미 ‘녹슨 칼’에 불과하다. 신속한 지원이 고객에는 생명줄, 금융회사에는 경쟁력이다. 빠른 금융이 바른 금융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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