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정책실패...양배추보다 빨리 시든 최단명 영국 총리
경제위기와 정책실패...양배추보다 빨리 시든 최단명 영국 총리
  • 정종석
  • 승인 2022.10.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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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을 촉발한 감세안의 파장은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등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를 흔들 정도로 거세...영국의 정책실패 사례를 거울 삼아서 한국도 이 시기에 과연 감세가 적절한 정책 선택이었는지 여부를 제대로 따져봐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데일리 스타가 리즈 트러스 총리와 양배추 가운데 누가 더 오래 갈 지 지켜보자는 조롱을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양배추가 트러스 총리를 이기고 말았다. ​

이는 영국 시사 주간신문인 '디 이코노미스트'에서 10월 초에 트러스 총리의 임기가 선반에 놓인 양배추보다 길지 않을 것이라는 논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세계 주요 언론도 양배추와 총리와의 대결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그는 문제가 된 감세안을 한 달여 만에 전격 철회, 재무장관을 경질하며 수습에 나섰으나 끝내 사임 압박을 버티지 못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 같은 ‘철의 여인’ 리더십을 표방했으나 초단기에 굴욕적으로 퇴장했다.

사임을 촉발한 감세안의 파장은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등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를 흔들 정도로 거셌다.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 영국발 금융위기설까지 불거졌다. 영국 중앙은행(BOE)이 하루 최대 100억 파운드가 넘는 규모의 긴급 국채 매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까지 문제 삼고 나선 엇박자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영국의 국가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트러스노믹스’로 불리는 감세안은 근래 영국 최악의 포퓰리즘 정책 실패로 기록될 전망이다. 트러스는 인플레이션 악화로 물가가 치솟는데도 납세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72조 원 규모의 감세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트러스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보는 시각과 처방이 다른 서방국가들과 너무도 달랐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 등 긴축을 실시하고 있는 마당에, 경기 부양책인 감세안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고물가 등 현재 겪고 있는 위기상황은 영국이나 다른 주요국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

트러스 전 총리가 제시한 해법은 대규모 감세와 탈규제라는 1980년대식 대처리즘

문제는 대규모 감세에 대응하는 '재정보전책'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러스의 감세안은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그는 ‘대처 따라 하기’에 급급했을 뿐 달라진 시장 상황과 타이밍 변수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감세로 줄어들 재원 마련책도 없었다.

영국은 의료, 복지 재정 확대 등으로 불어난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에 육박할 정도로 기본적인 경제체력이 형편이 없었다. ‘재정이 거덜 나는 게 아니냐’는 공포 속에 국민들의 엄청난 거부 반응이 나타난 것이 당연할 정도였다.

트러스가 제시한 해법은 대규모 감세와 탈규제라는 1980년대식 대처리즘이었다. 돈의 자유를 부르짖는 금융시장이 대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통념에 대항해 무기력한 경제를 살린다며 빠르고 급진적 경제행동을 촉발하는 것이 트러스의 해법이었다.

하지만 트러스는 국민적 소통에서도 실패했다. 먼저 정책을 발표하는 방식에서 독립예산책임국을 무시하는 등 처리가 미숙했다. 보통 국가 재정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예산성명은 제3의 독립기관의 의견도 함께 게재하지만 이러한 의견이 없이 '불통'으로 일관했다.

이번 영국 사태는 국내외 경제흐름과 충돌하는 정책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면 반드시 '역풍'을 맞게 된다는 것을 교훈처럼 확인해 준다. 재정 건전성 유지의 중요성 또한 위정자라면 반드시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식 논의하게 될 법인세율 인하 등 보수정권의 감세정책도 이 시기에 꼭 필요한 정책방향인지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적지 않다. 보통 중요한 조세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정치 현장은 매우 혼란하다. 출범 5개월여 밖에 안 된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여야가 극한적인 대립과 충돌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올 정기국회에서 감세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와 처리가 이뤄질지 매우 의심스럽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상기...국내 투자자금도 금융위기가 오면 언제든지 빠져나가

영국의 정책실패 사례를 거울 삼아서 한국도 이 시기에 과연 감세가 적절한 정책 선택이었는지 여부를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과 트러스 정부의 감세정책은 다르다. 내용도 달랐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대위기 상황을 촉발시키는 일도 없었다. 감세라는 기조 외에는 단순하게 비교할 명분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영국의 감세정책이 처참한 실패로 귀결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 원인을 떠나 시기적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 명확히 증명된 것을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처절한 실패로 정책을 추진했던 보수정권의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치적 위기를 그대로 떠안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난 2018년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생각난다. 영화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시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속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5년 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일각에선 "앞으로를 예언하는 영화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종 경제 지표가 처참하게 붕괴되고 있는 현 시점과 다를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수출부진 속에서 주가가 수직낙하하고 취업률·성장률·소득격차·부동산문제 그 어떤 문제도 잡지 못한 역대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들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정부도 영화에서나 현실이 똑같다. 머리를 맞대고 경제난을 타개해야 할 정부-여당과 거대 야당은 당면한 협치는 커녕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듯이 극한 대결로 날을 새고 있어서 국민들이 혀를 끌끌 차고 있다.

1997년에는 국가부도가 났다면, 지금은 엄청난 가계 빚을 떠안은 개인부도가 우려된다.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부채 총액은 1869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베짱이처럼 굴다가는 국내 투자자금도 금융위기가 오면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

이제라도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3고 현상’ 속에서 불경기가 장기화한 데다 향후 기업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혈세를 쏟아붓는다고 죽어가던 기업이 다시 되살아나는 시대는 끝났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대내외적 부작용 없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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