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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되지만 서로 보완하는 짝
분별되지만 서로 보완하는 짝
  • 김태희
  • 승인 2022.11.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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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칼럼] 유형원이 국가제도의 개혁방안인 <반계수록>의 저술 동기를 밝힌 글이 ‘서수록후(書隨錄後)’이다. 여기에는 두 용어의 대립이 여럿 열거되어 있다. 먼저 “초야의 선비들이 자기 수양에 뜻을 둘지라도 경세의 쓰임[用]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수기(修己)’와 ‘경세(經世)’가 대립되어 있다. ‘경세’는 ‘치인(治人)’이란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

“천지의 이치는 온갖 사물에 드러나니 사물이 아니면 이치가 드러날 바가 없다. 성인의 도는 온갖 일에 행해지니 일이 아니면 도가 행해질 바가 없다.” 이치를 논하고 도를 말하지만, 사물을 제대로 모르고 일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면 이치와 도란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뜻이겠다. ‘이(理)’ 또는 ‘도(道)’와 구체적 ‘사물[物]’ 또는 ‘일[事]’이 대립되어 있다.

“간혹 어떤 유자(儒者)가 대체(大體)를 알아서 세상에 행할 만하다면서 한번 해보고자 하는데, 막상 시행할 때에는 일에 빈틈이 많아 끝내 행할 수 없게 된다. 이는 한갓 대체만 믿고 조서(條緖)와 절목(節目)에는 그 마땅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대체’와 ‘절목’이 대립되어 있다.

“천하의 이치는 본(本)과 말(末), 대(大)와 소(小)가 처음부터 서로 떨어진 적이 없다. 치[寸]가 정확하지 않으면 자는 자 구실을 할 수 없고, 눈금이 정확하지 않으면 저울이 저울 구실을 할 수 없다.” ‘본’과 ‘말’, ‘대’와 ‘소’가 각각 대립되어 있다.

“한갓 법(法)만으로 스스로 행해지지 않고, 한갓 선(善)만으로 정치를 하기에 부족하다.”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맹자의 말(이루, 상)을 문장 순서만 바꾸어 인용한 것이다. ‘선의(善意)’와 ‘제도’가 대립되어 있다.

후대에 오광운은 도덕과 정치제도를 각각 ‘형이상’의 ‘도(道)’와 ‘형이하’의 ‘기(器)’로 연결시키면서, 유형원의 논리에서 ‘도기불상리(道器不相離)’를 확인했다. 유형원은 다른 글에서 ‘이(理)’와 ‘기(氣)’를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로, 혼연일체인 가운데 서로 뒤섞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표현으로, ‘서로 떨어질 수도 없고 서로 섞일 수도 없는 것(不相離 不相雜)’이라고도 하고, ‘본래 스스로 분별이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本自有分別而元不相離)’이라고도 했다. 유형원은 ‘이’와 ‘기’ 뿐만 아니라, 사물의 ‘체(體)’와 ‘용(用)’ 그리고 ‘도(道)’와 ‘기(器)’에도 공통의 논리를 구사했다.

그런데 ‘본말’, ‘대소’, ‘체용’, ‘도기’ 등은 ‘이항대립’의 구조를 띤 용어이다. 개념적으로 일체의 양면을 말한 것이기에 당초 상호배타적ㆍ택일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다. 분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기서 ‘동도서기(東道西器)’나 ‘중체서용(中體西用)’이란 개념의 불완전성을 짐작할 수 있다.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상호보완 내지 결합을 요구하는 짝들을 더 열거할 수 있다. ‘수기치인론’과 관련해 “수기를 통해서 치인이 완성되고, 치인을 통해서 수기가 완성된다”는 명제가 그렇다. 법의 제정과 적용에서 법의 일반원칙성이 관철되면서도 구체적 타당성을 기해야 하는 것이 그렇다. 경제의 운용에서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이 대립하여 충돌하지만, 한쪽에 치우치면 시장의 실패 또는 정부의 실패를 낳는다. 양자의 조합을 적절히 꾀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러 이항대립의 단어에 관한 일의적인 논의는 접어 둔다. 다만 이분법의 함정을 한 가지 경계하고 싶다. ‘음양(陰陽)’이란 단어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거나 기술을 적용하는 데에 많은 유용성과 인사이트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둘로만 나누는 단순화에는 허점이 있다. 생물계의 성(性)이란 것이 가변적인 경우도 있고, 수컷과 암컷의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경우에도 모호한 영역이 있다. 예외적인 듯한 현상이 실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진화론적 전략인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자연계 생명의 오묘한 현상을 함부로 ‘비정상’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유형원은 수기-경세, 대체-절목, 본-말, 대-소, 선의-제도 등 두 단어를 대립시켜, 전자에만 뜻을 두고 후자에 소홀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양자를 모두 갖추어야 서로 온전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후자를 보완하려고 노력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실학의 징표이다. 분별에 따라 각각에 맞게 충실하면서도 둘의 조화와 균형을 도모하는 것은 비단 그 시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김 태 희/ 역사연구자

· 전 다산연구소 소장, 전 실학박물관 관장

· 저서

실학의 숲에서 역사를 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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