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이동준 기자] 삼성생명이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최악의 경기 상황을 가정해 3조6천억원 규모의 단기 자금 차입 한도를 확보했다.
향후 불투명한 경제 상황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마련한 셈이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전일 이사회를 열고 3조6천억 원 규모의 단기자금 차입 한도를 확보하는 안을 의결했다.
차입 한도는 기존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잔액 2천억 원을 포함한 총 3조6천억 원이다. 실행기간은 내년 말까지다. 이번 조치는 유사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유동성 차원의 신속한 대응을 위한 일종의 '컨틴전시 플랜'으로 풀이된다
삼성생명은 앞으로 시장 상황을 고려해 3조6천억 원 한도 내에서 당좌차월 또는 RP 매도를 통해 차입을 실행할 예정이다.
RP 매도 잔액을 제외한 3조4천억 원 규모의 차입금 한도는 삼성생명 자기자본의 8.48%에 해당하는 규모다. RP까지 포함하면 자기자본의 10%에 육박하는 자본 버퍼를 마련한 셈이다.
이를 위해 삼성생명은 최근 주요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5천억 원 안팎의 신규 일반 당좌대출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차입 한도는 국제금융시장 혼란이 가중됐던 1997년 IMF 위기 상황을 가정한 수치다.
삼성생명은 향후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금융위기가 한 달여 간 지속된다는 가정 아래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단기에 필요한 유동성이 3조6천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판단했다.
삼성생명은 국내 보험사 중 가장 큰 유동성을 확보한 곳이다. 올해 3분기 기준 지급여력비율은 236%다. 석 달 새 13%포인트(P) 하락했는데도 업계 최상위다.
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LAT) 제도상 잉여액은 47조6천억 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29조 원 가까이 늘었다. 200bp 가까이 급등한 금리 상승효과에 신계약 가치가 늘어서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선제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다른 보험사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게 됐다.
실제로 최근 주요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들 일중 당좌대출을 활용해온 관례 대신 일반 당좌대출로 갈아타기 위해 시중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 보험사 임원은 "은행들도 한도가 제한돼있어 대출이 쉽지 않다"며 "그런데도 지금은 무조건 확보할 수 있는 유동성의 최대치를 끌어와야 하는 시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