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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잃은 노인정책...일하면 연금 깎고 나이들면 실업급여 안준다니
방향 잃은 노인정책...일하면 연금 깎고 나이들면 실업급여 안준다니
  • 권의종
  • 승인 2023.02.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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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빈곤 해소는 국가적 책무... '노년무전(老年無錢)'을 개인 탓으로만 돌린다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노인들이 뿔났다. 시니어 단체 12곳이 뭉쳤다. 고용보험법 개정을 촉구하는 연대회의를 결성했다. 65세 이후 신규 취업자를 실업급여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고용보험법 제10조 2항 삭제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근자에 와서 국민연금 개혁과 고령자 계속 고용,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가운데 나온 움직임이라 더 귀추가 주목된다. 

언뜻 봐도 기이하기는 하다. 65세 이전에 취업해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65세 이후 실직을 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65세 이후 새로 취업한 사람은 실업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실업급여 연령 기준을 연금이나 다른 복지제도 적용 연령을 고려한 법 취지는 일리가 있다. 65세 이상은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다른 사회보장제도로 보호받을 수 있어 중복 수급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비현실적 발상이다. 사회안전망이 탄탄할 때나 통할 수 있는 논리다. 우리나라와 같이 고령층의 상당수가 연금만으로는 노후를 보내기 빠듯해,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당찮다.

오히려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실업급여 확대가 긴요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라. 지난해 55∼79세 인구 1,509만8,000명 중 연금을 받는 비율은 49.4%, 절반에도 못 미친다. 월평균 수령액도 69만 원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빈곤전망 모형 연구' 보고서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2020년 기준 38.9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노인 10명 중 4명은 중위소득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 보고서는 노인빈곤율이 이처럼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소득 구성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점을 꼽는다. 한국은 이 수치가 2020년 25.51%로 일본이나 호주의 60%대에 크게 못 미친다. 

노인빈곤율 OECD 최고 상황에서 65세 이상 취업자 노령연금 삭감...“가당찮은 발상”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도 공적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실업급여 적용 연령 상한에 맞춰 중복 수급을 제한한다. 고령화 진도가 우리보다 빠른 일본은 65세 이상 취업자에게 일시금 형태로 고령자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우리와 사정이 판이하다. 우리나라보다 노인빈곤율이 낮고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높다. 

국민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은 42.5%다. 기금 고갈을 늦추느라 이를 매년 낮춰 왔고 2028년까지 40%로 낮아지는 구조다. 수치에 함정이 있다. 가령 생애 평균 소득이 400만 원이라 해서 국민연금을 160만 원 받는 게 아니다. 명목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평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8.7년인 점을 고려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22%로 낮아진다. 

65세로 실업급여 연령을 제한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고령 근로자에게 실업급여를 확대할 경우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또한 어이앖는 탁상행정의 소산이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에 대한 규제는 노령층보다 청년층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는 게 일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취업과 실업을 상습적으로 되풀이하는 젊은 층이 적지 않다. 

고령자 노동에 대한 인식과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고령자를 고용하는 곳이 많지 않을뿐더러 노인들이 일자리를 골라 다닐 형편이 못 된다. 설사 그럴 수 있다 한들 65세 넘어 일터를 옮기면 몇 번이나 옮기겠는가. 또 그래서 실업급여를 받으면 얼마나 더 받겠는가. OECD는 한국의 실업급여제도가 근로 의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함을 그간 누누이 지적해 왔다. 

지금이 개혁의 적기...정년 연장, 노인 일자리 확대, 복지 시스템 조정 등 논의 서둘러야

노년층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정책은 이 말고도 더 있다. 재직자 노령연금 삭감제도도 그중 하나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연금 수령자의 월 소득이 일정액을 넘으면 연금을 삭감하게 돼 있다. 최저 5%, 최고 50%를 최대 5년간 깎는다. 일을 안 하면 연금을 100% 다 주고, 일해 근로소득이 있으면 덜 준다. 

소득이 부족해 국민연금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쓰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에 그 알량한 노령연금까지 깎다니.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심하게 표현하면, 그저 가만히 있다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명분은 커녕 실익이 전무하고 일할 맛만 떨어뜨리는 재직자 연금 삭감제도. 폐지해야 마땅하다. 전문가와 언론 등이 그동안 폐지를 줄기차게 건의해 왔건만. 정부는 ‘쇠귀에 경 읽기’, ‘말귀에 동쪽 바람’ 쯤으로 무시하고 흘렸다. 

솔직히 말해 일하고 싶은 사람은 세상천지에 없다. 편히 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을 꿈꾸는 청년층 뿐 아니라, 고령층도 편히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5천 달러, 국내총생산 세계 10위 국가에 살면서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 해 노구(老軀)를 이끌고 노동현장을 맴돌아야 하는 처지가 참으로 처량하고 한스러울 뿐이다. 

만시지탄이나 어찌 보면 지금이 개혁의 적기일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과 고령자 계속 고용을 추진하는 현시점이 정년 연장, 노인 일자리 확대, 복지 시스템 조정 등을 논의할 더 없는 호기라 할 수 있다.

노인 빈곤 해소는 국가적 책무다. 노년무전(老年無錢)을 개인 탓으로만 돌린다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국정이 운영돼야 맞다. 종(鐘)은 국민을 위해 울려야 한다. 그것도 우렁차게.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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