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박도윤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이 독과점 환경 속에 약탈적 영업을 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10조원 규모 지원책도 본질에서 벗어났다며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주문했다.
이 원장은 17일 은행권의 영업 방식에 대해 "약탈적"이라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과점 체제 개선 및 경쟁 촉진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자 진입 등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 진단 및 향후 과제' 세미나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은행들이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문제를 삼았다.
그는 "은행의 구조조정 모습을 보면 금융 취약층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지점 수를 줄인다든가 고용 창출 이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권이 금리 상승기를 이용해 수조원의 수익을 벌어들인 뒤 성과급이나 퇴직금 등에 상당 부분을 사용하는 것에도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 원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금융 상품들이 계속 대동소이하다"며 "그런 가운데 금리 상승으로 부담이 커졌는데도 은행들은 수십조 이익을 벌고 있고 그 이익의 사용 방식과 관련해서도 여러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탈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비용 절감과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들이 있었고 그게 지금 정점에 와 있는 것"이라며 "유일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그 주된 배경엔 독과점적 시장 환경이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돈 잔치' 논란이 불거진 뒤 은행권이 3년간 10조원 규모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를 내놓자 "3년 후 금 송아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손에 물 한 모금을 달라는 니즈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행권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과 어긋나 있다는 측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보다 실효성 있는 사회 공헌이나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요구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 원장은 은행권 과점 체제 개선 방향과 관련해 "실효적 경쟁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자는 게 기본적인 스탠스"라며 "새로운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필요하다면 그것까지 다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은행 인가를 용도나 목적에 따라 세분화해 소상공인 전문은행이나 중소기업 전문은행 등을 배출하는 방안, 기존 케이뱅크나 카카오뱅크[323410] 외 인터넷 전문은행을 추가로 허용하는 방안, 핀테크 업체의 금융업 진출 확대 방안 등이 거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이 원장은 17일 이날 세미나 축사에서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새로운 금융 리스크 발생 위험이 있다며 규제체계 마련 필요성을 밝혔다.
이 원장은 정보기술(IT) 혁신기술에 기반한 빅테크가 금융업 진출을 확대하면서 금융서비스 편의성이 증대되고 서민·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빅테크의 특성으로 인한 새로운 리스크 발생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빅테크에 대한 기관중심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와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향후 빅테크의 잠재 리스크 요인을 점검하고, 감독제도 개선방안을 지속해서 모색할 방침이다.
이 원장은 빅테크와 관련된 리스크와 관련해 비대면 예금 쏠림 사례와 같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할 경우 금융사의 건전성과 유동성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를 언급하면서 "빅테크의 운영 리스크가 금융회사로 전이될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금융상품 추천 시 플랫폼 사업자의 이해관계에 유리하도록 알고리즘을 변경하는 등 불건전 영업행위로 인해 금융소비자의 효익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 원장은 "빅테크가 위험관리·내부통제 역량을 높여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해야 금융산업 혁신이 촉진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의 관심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