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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공공재” 발언... 신(新)관치 서막인가, 돈 잔치 폐막인가
“은행은 공공재” 발언... 신(新)관치 서막인가, 돈 잔치 폐막인가
  • 권의종
  • 승인 2023.03.0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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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원리에 순응하며 국민과 경제에 이바지하는 ‘공존공영’... 한국금융의 궁극적 지향점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미안한 얘기지만, 눈치로는 대한민국 관료를 따를 자 없다. 누가 대통령중심제 아니랄까 봐 대통령의 지시가 있거나 불호령이 떨어져야 움직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히 나섰다가 눈치 없다 소리나 듣고, 일이 잘못되면 징계까지 당하기에 십상이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다. 

최근 일만 해도 그렇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대통령 발언이 있자 정부가 비상이 걸렸다.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을 피운다. 금융감독원장은 현장방문에 나섰다. 은행을 방문,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표, 금융 및 소비자 전문가와 만나 고금리로 인한 금융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상생 금융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요 6개 은행에 대한 직권조사에 돌입했다. 대출 금리와 고객 수수료 담합 여부에 대한 점검을 개시했다. 

금융위원회도 움직임이 부산하다. 금융지주 등 ‘주인 없는 회사’의 지배구조 선진화 필요성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에 화답,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손보려 한다. 1·4분기 이내에 업계 의견수렴과 조문 작업을 거쳐 개정안을 마련,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경영에 대한 임원 책임을 명확히 하는 등 내부통제를 개선하고 임원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는다. 

정치권은 ‘은행 옥죄기’에 한술 더 뜬다. 여당은 대통령의 발언에 힘을 실을 법안 마련에 분주하다. ‘은행의 공공성’을 은행법의 목적 조항에 명시하는 ‘은행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제1조에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게 골자다.

대통령의 지시나 불호령 떨어져야 움직이는 정부...정치권은 ‘은행 옥죄기’에 한술 더 떠

야당은 ‘은행판 횡재세법’을 구상한다. 은행의 초과 이익에 별도로 초과이득세를 걷는 은행법 개정을 추진한다. 횡재세(Windfall Profit Tax)는 말 그대로 ‘바람에 떨어진 과일’처럼 기대치 않은 행운으로 번 돈에 대한 과세다. 급격한 환경 변화로 큰 혜택을 본 기업에 매기는 추가적인 세금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요인으로 석유·석탄·가스·정유 등 에너지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보자 유럽 주요국에서 횡재세를 부과하는 사례를 벤치마킹할 태세다. 

겁먹은 금융권은 금리 인하와 직원 채용 확대를 밝혔다. 불어난 이자 이익으로 상여·퇴직금 잔치를 벌인다는 비난을 공익활동 강화로 대응하는 차원으로 이해된다. 전국은행연합회가 ‘국내은행 2023년 상반기 채용계획’을 밝혔다. 20개 은행에서 작년 상반기보다 742명이 많은 2,288명을 신규 채용한다. 저축은행업계는 올 상반기 중 151명의 정규직 신입직원을 채용한다. 여신금융업계도 같은 기간 1,232명을 새로 뽑는다. 

비난 또한 크다. 대통령이 말 한마디 했다고 금융기관 때리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세태를 꾸짖는다.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경제부총리가 나서 임금 인상 자제를 당부하는 판에 은행에 금리 인하를 강요하는 건 자가당착임을 나무란다. ‘돈 잔치’ 운운하며 금융회사를 다그치고 악마화하는 행태야말로 신(新)관치의 시작이라 꼬집는다. 

‘공공성’과 ‘공공재’의 혼용도 들춘다. 공공재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개인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뜻한다. 국방・경찰・소방・공원・도로 등과 같이 정부에 의해서만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정부에 의해 공급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그런데 금융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은 영리추구 사기업이나 공공성을 발휘, 상생 도모해야...“함께 가야 멀리 간다”

또 공공재 특성으로는 ‘어떤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편익을 받을 수 있는 비경쟁성·비선택성,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특정 개인을 소비에서 제외하지 않는 비배제성’이 정의된다. 그런 점에서 민간기업이자 주식회사인 은행의 서비스는 공공재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공공성이 있다고 공공재라 말하는 건 이론적 개념에 어긋날뿐더러,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은행을 공공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론에도 나름의 일리는 있다. 그래도 그런 얘기는 잠시 거론하는 수준에 그쳐야지 논쟁으로 비화하는 건 득은커녕 실이 크다. 발언의 내용은 문리해석을 넘어 논리해석, 목적론적 해석 등으로 행간의 의미를 살펴야 한다. 교과서적 개념과 범주의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 단어 하나로 말꼬리를 잡을 게 아니라 화자의 본뜻을 알아차려야 한다. 대통령 발언을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려는 충정으로 너그러이 이해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도 금융의 공적 기능을 강조했지 은행을 공공재로 단정 짓지 않았다.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에서는 “금융·통신은 민간 부문에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지만,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며 “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업계도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금융의 공공재 논란은 대통령의 발언이 축약되어 전달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라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이 나아갈 바는 오히려 분명해졌다. 은행이 영리추구의 사기업이긴 하나 공공성을 발휘,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부동의 명제다. 국민 없는 금융이 존립할 수 없고 금융 없는 경제가 성립할 수 없다. 경제 여건과 시장 원리에 순응하며 국민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공존공영. 한국금융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함께 가야 멀리 간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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