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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身土不二) 경제학'...이제 한국적인 금리정책 나와야
'신토불이(身土不二) 경제학'...이제 한국적인 금리정책 나와야
  • 권의종
  • 승인 2023.04.0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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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인상 놓고 미 연준 ‘딜레마’, 한은 ‘고심’...이론과 직관에 기대는 ‘탁상정책’보다 실용과 논리에 기초한 ‘현장정책’이 유용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갑자기 의기소침해졌다. 그동안 인플레이션 억제에 올인해 왔으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금융 불안 해소라는 숙제까지 떠안았다. 3월 베이비스텝 기준금리로 절충점을 찾으려 했으나, 은행권 위기는 수그러들 기미가 안 보인다. 시그니쳐은행 폐쇄에 이어,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 독일 도이체방크까지 부도 위험이 퍼졌다. 

사태가 이쯤 되면 뒷말은 당연. 그간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금융 불안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가 억제가 우선이라며 계속 금리를 올릴 때부터 알아봤다며 비아냥댄다. 실제로 3월 초까지만 해도 연준은 통화 긴축에 매파적 기조였다.

제롬 파월 의장이 미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최근의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더 강세를 보인다”며 “경제지표가 더 빠른 긴축을 정당화하면 금리 인상 폭을 높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상황이 돌변한 지금, 연준의 ‘책임론’이 고개를 든다. 실리콘밸리은행 붕괴가 은행권 위기로 번지는 걸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무겁다는 지적이다. 딜레마에 빠진 연준의 향후 금리 행보에 관심이 더욱 증폭되는 이유다. 앞으로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금리를 올릴 것인지. 아니면 금융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금리를 동결하거나 내릴 것인지에 세계적 이목이 쏠린다. 

언론도 걱정하는 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과 은행권 위기 사이에서 연준이 얼마나 오래 줄타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그러면서 "고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동시에 금융기관의 대출 비용을 높여 대출이 감소하게 된다"며 은행권 위기와 물가 문제를 동시에 잡기는 매우 까다로운 난제라는 우려를 표했다. 

미국발 금융 불안, 미 통화정책 벤치마킹해온 한국에도 불똥 튈 수 있어

해법 찾기보다 더한 악재는 연준에 대한 불신이다. 시장에서 연준의 영(令)이 서지 않고 말발이 안 먹힌다. 파월 의장이 연내 금리 인하는 없다고 못 박았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인하할 확률을 70% 이상으로 내다봤다. 

연준이 물가도, 금융기관 건전성도 잡지 못할 거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금융 불안이 은행 신용을 위축시키고 경제 둔화를 유발하는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하락)을 축적, 경기 침체를 앞당길 수 있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인지 연준도 올해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0.4%로 직전보다 0.1%포인트 낮춰 잡았다.

남 얘기나 할 때가 아니다. 미국발 금융 불안이 언제든 우리나라에도 불똥이 튈 수 있음을 염려해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늘 참고하고 벤치마킹해 온 터. 파월 의장의 입만 쳐다보며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금리를 따라 올려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가 억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파월 의장의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 인용해온 정부 당국과 한국은행 아니었나.

당시로선 불가역적이었을 수 있다. 간과한 점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정책은 경중완급(輕重緩急)이나 우선순위가 있을 수 없다. 가령 물가가 우선이고 성장은 나중이라는 식의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경제 현상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상충하는 개념은 합리적 수준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하며, 이 또한 정책이 감당할 역할이다. 한 가지 지표에 매달리다 보면 다른 지표들은 나빠질 수 있다.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답은 가까이’...외국 아닌 자국, 그들 아닌 우리, 책상 아닌 현장에 숨어 있어

정책은 타깃을 잘 정해야 한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어야 한다. 긴축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도 그렇다. 물가 억제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소비 부진이나 금융비용 가중에 따른 경기 침체와 성장 저하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속적인 긴축은 제조업 경기를 필요 이상으로 위축시키고 공급능력의 회복에 부정적으로 작용, 새로운 인플레이션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정부도 만능은 아니다. 정책의 기반이 되는 경제의 이론과 원리도 그리 믿을 바 못 된다. 자연법칙처럼 보편적일 수 없다. 경제학이 무엇인가. 다양한 모형들을 만들어 현실을 설명하고 이런 모형들이 합쳐져 하나의 개념을 형성한 이론에 불과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모형을 사용할 때 다른 여타의 조건들은 일정하다는 가정을 토대로 하는 점이다. 

즉, 한 가지 요인이 변할 때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는 동안에 다른 원인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한다. 학자들은 이를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라는 라틴어로 유식하게 표현한다. 정책이 어느 때는 맞고 어느 때는 맞지 않는 이유다. 그래도 경제학이 정책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그나마 그만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통제 가능 수단이 없음을 한탄만 할 순 없다. 그럴수록 정부가 현장을 잘 살피고 그때그때 그에 맞은 정책을 유연하게 펼쳐나가야 한다. 이론과 직관에 기대는 탁상정책은 쓸모가 없다. 실용과 논리에 기초한 현장정책이 힘을 발한다. 선진국의 정책은 타산지석으로 삼을지언정 금과옥조로 떠받들면 안 된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답은 대개 가까이 있다. 외국이 아닌 자국에, 그들이 아닌 우리에, 책상이 아닌 현장에 숨어 있다. 그것도 들키지 않게 꼭꼭.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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