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들 “사유재산 침해하는 정부 탁상공론”…전문가 “월세의 가속화, 월세 비용 상승 등 예상”
[금융소비자뉴스 이성은 기자] 전세 시장에서 보증금을 임대인이 아닌 금융기관에 위탁하는 에스크로 제도 도입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임대인들 사이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온 전세제도가 세입자에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다시 주택에 투자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피해가 커지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6일 전세 제도 개편 방안 중 하나로 전세 보증금 에스크로 계좌 도입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
원 장관은 “수명을 다한 전세 제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보증금 에스크로 예치 도입, 임대차 3법 등 전반적인 제도 개편을 예고했다.
구체적으로 보증금 에스크로 예치 도입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계약갱신청구권·임대료 5%룰·임대차신고제' 개편이다.
에스크로 계좌는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부동산 거래가 이뤄지면 이와 관련이 없는 제3의 금융회사 등이 보증금을 맡아 안전 결제를 보장하는 제도다. 신탁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전세계약 만료 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일부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보험 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에스크로 도입과 관련해 임대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사인 간의 계약에 국가가 직접 개입한다는 이유에서다.
집주인들이 월세가 아닌 전세를 내놓는 이유도 결국 목돈을 마련해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에스크로 제도가 도입되면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월세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도권에서 전세를 놓고 있는 임대인 A씨는 “전세는 월세를 받는 대신 보증금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건데 에스크로 제도로 묶어 두면 어떤 집주인이 전세를 내놓겠나”라며 “정부가 전세제도를 없애려는 것 같다. 결국 전세를 막으면 월세 가격이 올라 임차인들의 주거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임대인 B씨도 “에스크로 제도는 정부의 탁상공론이다.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과연 이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나”라며 “어떤 집 주인이 보증금을 예치하고 맡겨두겠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미국 등에서 월세 보증금을 에스크로 계좌에 맡기도록 법으로 강제하는데 이는 보증금 규모가 작아서 임대인에게 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스크로 계좌가 갭투자(전세금과 매매가 차액만 내고 집을 매수)를 줄일 수 있지만 월세의 가속화, 월세 비용 상승 등이 예상돼 월세 세액공제 확대와 공공임대 확대 대책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