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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老)은사님들의 인생 고언...체지덕(體智德)과 포식촉명(飽食促命)
노(老)은사님들의 인생 고언...체지덕(體智德)과 포식촉명(飽食促命)
  • 정종석
  • 승인 2023.05.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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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고 졸업 50주년 기념행사 후기...‘백투더퓨터’ 50년 전으로 ‘타임머신’ 타고 되돌아간 듯

학창시절은 모든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까까머리 중,고교 시절로 회귀한 ‘반백년 시간여행’

망백(望百) 노은사님들의 식지 않은 제자사랑, 자신의 건강보다 70살 제자들의 건강을 당부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멀리 끝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 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훗날에 훗날에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서 읽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명시가 머리 속에서 떠오른다.

이 시를 요약한다면 단풍이 든 숲을 걷다가 두 갈래 길을 맞닥뜨렸을 때, 시인은 인적이 드문, 풀이 무성하여 더 걸어야만 할 것 같은 길을 선택한다. 가지 않은 나머지 한쪽 길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 먼 훗날 이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노라 회상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들 되살아나

꿈 많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벌써 50년이 지났다. 나는 5월 19~20일 1박2일 일정으로 모교 남성고가 있는 전라북도 익산에 내려가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마디로 감개가 무량하다. 우리의 남성23회 졸업 50주년 행사에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한편의 '동화 속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과거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마티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를 여행했던 것처럼 소시적 동창생들과 어울려 타임머신을 타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50여년 전 학창시절로 흘러갔다가 되돌아온 느낌이다.

이번 행사는 모두 끝났지만 지금도 감동을 식히지 못하고 그 여운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대부분 70살 고희(古稀)를 막 넘어섰거나 넘어서는 많은 나이지만 친구들은 저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열심히 지내온 세월이 빛나는 훈장처럼 얼굴에서 보였다.

우리는 졸업 50주년 기념행사 첫날인 19일 전북 부안군 변산모항의 호텔에서 전야제를 가졌다. 고교졸업 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친구도 여럿 있었다. 같은 반이었으면서도 내가 전혀 몰라본 친구도 있었다. 세월이 야속했다.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던 벗님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가 얼싸안고 악수를 하며 여흥을 즐기고, 밤이 늦도록 검푸른 해변을 바라보며 50성상(星霜)의 밀린 얘기를 나눴다.

서너시간 동안 진행된 전야제의 축하연주에서는 김기룡, 권동식 친구의 맛깔나는 사회로 동창생들의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기자랑’이 있었다. 유영호, 강진석, 나영일, 최병욱, 정창원 친구 등이 참여한 히말라야시다 중창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바리톤 박정근 친구의 가곡 ‘명태’, 문재우 친구의 ‘아름다운 것들’ 하모니카 연주가 이어졌다.

남성고 졸업 50주년을 맞아 모교를 방문한 졸업생들이 은사님들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친교 시간에 마지막으로 가왕 조용필의 ‘친구’를 합창

일종의 그룹사운드인 ‘쇼커스 영’(1971년 고2 때 조직)이 기타와 드럼을 치며 프라우드 메리와 카튼필드 같은 왕년의 명곡들을 연주했다. 이내황, 김세웅, 조두연, 송영한 친구의 녹슬지 않은 연주와 노래실력이 돋보였다. 저절로 50여년 전 팝송이 크게 유행하던 옛날로 돌아갔다.

특이한 것은 친구들(조한경 ,이용환,정진태)의 색소폰 연주가 줄을 이었다는 점이다. 감미로운 선율의 색소폰이 언젠가부터 중장년층 사이에서 유행을 했었지만 이제 우리 동창생들 사이에서도 주류를 이루는 것을 보니 '섹소폰 대세'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노래방 공연 차례에서 프로급인 권동식, 장만수 친구가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팝송과 포크송을 들으며 과거 명동의 윤형주, 송창식,조영남이 멤버였던 ‘세시봉’을 우리 고교졸업 50년 모임에 친구들이 재현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개별 노래자랑에서는 나도 나가서 홍민 가수의 오래된 명곡 ‘석별’을 불렀다. 오늘의 만남과 석별이 마지막이 아니고, 오늘 50주년 행사를 하지만 모두들 건강해서 60주년에서도 다시 만나자는 의미를 담아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친교시간에 마지막으로 가왕 조용필의 ‘친구’를 합창했다. 참석자 100여명 친구들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행사장내를 돌며 피날레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고 장관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어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눈가에 잠시 이슬이 맺힌 듯한 모습도 보였다.

우리가 고교를 졸업한 지 벌써 50년, 친구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온 듯 했다. 얼굴의 주름살이 늘어나며 어깨가 구부정한 친구들이 많았고, 이제 할아버지의 어정쩡한 걸음걸이를 닮아가는 벗들도 적지 않은 듯 했다.

또 고교시절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별로 의미가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는데 모두가 공감을 표시했다. 우리들은 소주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지난 인생을 회고하며 흉금없는 대화를 나눴다.

어떤 친구는 고교시절 공부한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읊으며 지나간 50년을 회상했다.

국화 옆에서/미당 서정주 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모교 은사님들. 오른쪽부터 박주해, 정봉화, 오석고, 양태후, 김용헌, 김문현, 이정효, 신영무 은사님.

고교 동기졸업생 500여명 가운데 이미 42명이 유명 달리해

그래 우리 모두 다 같이 건배~~~!

나도 1973년 서울에 올라와 50년을 줄곧 살았으니 10대 후반까지 산 고향보다는 세배 가량 오래 산 셈이지만 아직도 서울은 풍광과 인심이 낯설다. 그러다가 열차를 타고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 벌판에 들어서면 뭔가 마음이 푸근해지고 평화로운 기운을 받는다.

고교 졸업 50주년을 맞아 친구들 몇몇은 이미 칠순을 넘겼고, 일찍 취학한 친구들도 내년에는 대부분 칠순을 맞는다. 올해 ‘고교 졸업 50주년, 칠순기념행사’라는 제목의 동창생들 기념문집이 나온 걸 보면 이제 칠순은 우리들에게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졸업 50주년 이튿 날인 20일 부안을 떠나서 모교가 있는 익산시로 향했다. 고교졸업 50주년 기념식에는 졸업생 671명(중학교, 고교 모두 포함)가운데 100여명이 참석했다. 동기생 가운데 이미 42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미 연락과 소식이 끊긴 친구들도 251명이니 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도 먼저 간 친구들이 또 있을 지 모른다.

남은 친구들은 378명이다. 거동이 불편해질 나이들이다. 그러니 건강하자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최근에 먼저 가버린 동창생 소식과 함께 살아 있을 때에 자주 얼굴 좀 보자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얼굴 보고, 밥 먹고, 삼겹살 구워서 소주 한 잔 하고...이제 칠순 나이의 동창생 모임에 뭔 특별한 주제나 목적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내 주변엔 그저 어릴 적 국민학교 때부터 동네에서 딱지를 치고 팽이놀이를 하다가 중,고교까지 12년 동안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많다. 그런 죽마고우 친구들 얼굴을 보며 옛날 얘기를 하며 껄껄대는 재미가 있을 뿐이다.

우리 동창생들은 50주년 행사를 마치면서 앞으로 '남은 30년'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과거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초장수 시대를 맞아서 그동안 다진 우정을 바탕으로 남은 30년, 그러니까 모두들 100살까지 잘 지내자고 약속하고 모교 교문을 나섰다.

50주년 행사를 마치면서 앞으로 '남은 30년' 약속하며 헤어져

놀라운 것은 고교 재학시절 모두 8개 반을 맡았던 담임선생님 가운데 일곱 분이 별세하시고 한 분 만이 생존해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분이 바로 올해 95살이 되신 우리 3학년 1반 담임이셨던 박주해 은사님이다.

지난 2016년 가을 서울에서 열린 반창회에서 얼굴을 뵌 뒤 7년 만에 상면한 은사님은 이제 노쇠한 기색이 역력했다. 귀에 보청기를 끼시고도 말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아들과도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신다고 했다.

국사를 가르치셨던 은사님의 목소리는 아직 카랑카랑했다. 졸업 50주년 행사 이튿 날 모교를 방문해 가진 공식 기념식에서 은사님께서는 국사,역사 교사 출신답게 특유의 한문과 고사성어를 섞어쓰며 교단에 나가서 우리들을 상대로 일장훈시를 했다. 마친 고3 때 학과수업이 끝난 뒤 종례시간을 다시 보는 듯 했다.

기념식 후 모교 주최 오찬에서 나는 은사님 바로 옆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은사님은 몇가지 반찬과 생선찌개 만을 간단히 드시고 밥그릇에는 수저도 대지 않으셨다.

왜 진지를 드시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은사님은 큰 소리로 "포식촉명(飽食促命)"이라고 짧은 답변을 했다. '많이 먹으면 목숨을 단축한다'는 뜻이다. 은사님은 아울러 명쾌하게 "건강비결이 소식(小食)"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학창시절에 지리를 가르치신 정봉화 은사님(87)은 우리들에게 '지덕체(智德體)'가 아니라 '체지덕(體智德)'의 생활을 하라고 조언을 했다. 지덕체는 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을 일컫는 말이다. 전인 교육은 지덕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도 과거에는 지덕체를 많이 강조했다. 하지만 은사님은 지금 우리 나이에는 이를 체지덕으로 순서를 바꿔서 몸(體)을 앞세운 체육(體育)을 통해서 건강생활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19일 부안에서 열린 전야제에서 축하공연을 하는 '쇼커스영' 친구들. 왼쪽부터 이내황, 김세웅, 송영한, 조두연 친구

 ‘90살 은사가 70살 제자를 걱정하시는구나’ 하는 생각 들어

구순을 넘으셨거나 구순을 앞둔 두 노령의 은사님들께서 당신들의 건강을 챙기기도 바쁠 텐데 고교졸업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칠순의 제자들 많이 걱정한다는 걸 알고 내심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80살 노인이 60살 아들을 걱정한다’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듣고 살았다. 이제 초장수시대를 맞아 ‘90살 은사가 70살 제자를 걱정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문시간에 ‘군사부(君師父) 일체’라는 말을 수 없이 배웠다. (지금은 임금이 없는 시절이니까) 스승과 아버지는 시대가 바뀌어도 동격으로서, 은사님들이 우리 제자들을 한없이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가슴이 뭉클했다.

대망의 졸업 50주년 행사가 끝났다. 인명재천( 人命在天)이라고 했다. 누구나 사람의 앞일은 모른다.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고 가재 잡고 흥겹게 놀던 다정한 친구들을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른다.

앞에서 언급한 '가지 않은 길'의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행복해져라, 행복, 행복 / 그리고 현재의 즐거움을 잡아라”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경구 가운데 으뜸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오늘을 붙잡아라’ 또는 ‘현재를 즐겨라’ 등의 뜻으로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어 왔다. 

고교 졸업 50주년을 넘긴 우리는 이제 과거에 못한 것, 즉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을 후회하기보다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현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화살이 도망치듯 사라지는 무정한 세월 속에서 '카르페 디엠'이 더욱 빛나는 이유이다.

우리의 고교졸업 50주년 기념행사가 성공적으로 잘 끝난 것은 집행부가 훌륭한 덕택이다. 황달연, 곽지원 공동위원장과 강조석 사무총장, 그리고 다른 임원진 친구들의 열성과 공이 컸다. 기념문집 출판 책임을 맡은 박정근, 강진석 친구의 헌신과 고광준 친구의 교열봉사도 돋보였다. 현역 국회의원(국민의힘)인 정운천 친구도 바쁜 일정 속에서 물심양면의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자, 이제 우리 모두가 '꿈길'을 한번 걸어보자.

꿈길에서 (Beautiful Dreamer)/스티븐 포스터 작곡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라

한갖 헛되이 해는 지나

이 맘에 남모를 허공있네

꿈길에 잠긴 귀여운 벗

들어주게 나의 고운 노래

부질없었던 근심 걱정

그대의 얼굴에 미소 띠면

벗이여 꿈 깨어 내게 오라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naver.com)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대표이사(언론학박사)

(사)서울이코노미포럼 이사장

전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광고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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