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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市場) 이기는 정부 없다...한전사태, 대학등록금 어찌할 것인가
시장(市場) 이기는 정부 없다...한전사태, 대학등록금 어찌할 것인가
  • 권의종
  • 승인 2023.06.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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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억제하면 ‘나비효과’, 시장 무시하면 ‘부메랑’..정책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믿는 정부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치고는 너무도 가혹하고 치명적...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는 풀고 가격은 현실화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한국전력공사가 휘청댄다. 전대미문의 경영위기다. 오랫동안 밑지고 팔다 보니 적자 폭이 커졌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유연탄 등 연료비·전력 구매비가 늘었으나 전력 판매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정부가 물가상승을 우려해 전기요금 인상을 막아 온 때문이다. 

그 결과 한전은 올해 1분기 21조5,940억 원 매출에 6조1,776억 원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 2분기 7,529억 원 적자 이후 8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 이어졌다. 2021년 5조8,000억 원, 2022년 32조6,000억 원 적자가 났다. 올해 1분기까지 누적 적자가 연결 기준으로 44조6,000억 원에 달했다. 

한전은 부족한 운영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채 발행으로 버티고 있다. 올해 발행된 한전채는 25조 원, 채권 발행액이 77조 원에 이른다. 올해 1분기 이자 비용만도 6,411억 원. 1일 평균 71억 원이 이자로 나간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 규모다. 자회사들이 내는 이자 비용까지 합치면 1조480억 원. 1일 평균 이자 비용이 116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부채는 192조8,000억 원, 부채비율은 460%까지 높아졌다. 

보다 못한 정부가 뒤늦게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해 4·7·10월 세 차례에 걸쳐 kWh(킬로와트시)당 19.3원 올렸다. 올해 들어서도 kWh당 1월 13.1원, 5월 8원 인상했다.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 매각 등 25조7,000억 원의 고강도 자구책도 내놨다. 그래도 한전의 재정 건전성 회복에는 역부족. 전기요금 추가 인상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전기요금 규제로 한전을 위기로 내몬 산업자원부

전기요금 억제는 한전 부실로 그치지 않는다. 주주 피해로 이어진다. 한전 지분 33%를 가진 한국산업은행에 불똥이 튀었다. 한전의 적자는 지분법 평가에 따라 지분율만큼 산은 손실로 전가되는 구조다. 한전 손실로 산은은 지난해 8조 원가량 적자를 봐야 했다. 2022년 산은의 당기순이익은 개별 기준으로 4,649억 원이었으나, 연결 기준으로는 7조 원 적자였다. 이는 또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저하로 이어져 작년 말 13.40%에서 올 3월 말 13.08%로 급락했다. 

어이없는 낭패는 해외 발(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철강업계에 사실상 보조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현대제철이 수출하는 후판에 1.1%의 상계관세를 물려야 한다는 내용의 예비판정 결과를 발표했다. 상계관세란 수출국이 직·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수출된 품목이 수입국 산업에 피해를 초래할 경우 수입 당국이 해당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다. 

한전보다 사정이 더 딱한 곳이 있다. 다름 아닌 대학이다. 정부의 가격 통제로 2009년 이후 1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등록금을 올리지 못했다. 소비자물가지수가 2009년 83.9에서 2022년 107.7로 오른 점을 고려하면 이 기간 등록금이 28.4% 깎인 셈이다. 그러고도 여태까지 대학이 망하지 않고 있는 게 신통하다. 

고등교육법 제11조는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한 내용이다. 오히려 교육부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통해 사실상 강제적으로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막아 왔다. 국가장학금 Ⅱ유형의 지원대상 학교를 등록금 인하·동결 대학으로 한정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는 대학으로서는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정부 재정지원이 대학의 주된 수입원이 된 지 오래다. 나랏돈으로 연명하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올해도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로 확충된 재원을 바탕으로 일반재정지원을 지난해보다 1.4배 늘렸다. 학생 교육과 학문 연구에 진력해야 할 교수들이 허구한 날 대학 평가나 재정지원 신청 자료나 만들고 있다. 

등록금 인상 억제로 대학 생존을 위협해 온 교육부

교육부가 재정지원 사업을 볼모로 대학의 손발을 묶어 놓다 보니 대학에는 자율성이란 없다. 헌법 제31조 4항은 ‘대학의 자율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또한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 현실은 딴판이다. 교육부가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며 대학의 자율성을 짓누르고 있다. 입학정원, 학생 선발 방식, 온라인 강의 비중 등 교육부 규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금융 관치는 저리 가라다. 

일부 대학은 정부의 페널티를 무릅쓰고 등록금 인상을 단행했다. 4년제 대학 193곳 중 17곳이 올해 등록금을 올렸다. 그중 12곳이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지방대다. 대학 총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내용도 예사롭지 않다. 49.1%가 올해나 내년 중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 사이 대학의 경쟁력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202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대학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46위로 처져있다.

이 모든 게 ‘시장 무시’의 당연한 귀결이다. 가격 억제에 따른 ‘나비효과’, 시장 경시(輕視)로 인한 ‘부메랑’이다. 정책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믿는 정부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치고는 너무도 가혹하고 치명적이다. 정책 전환이 급선무다.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규제는 풀고 가격은 현실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장(市場)을 이기는 정부는 없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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