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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질문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질문들
  • 허영섭
  • 승인 2014.08.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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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 칼럼>프란치스코 교황이 어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집전을 마지막으로 방한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했습니다. 광화문에서 열린 순교자 124위 시복식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해미읍성의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포함하여 지난 4박5일 동안의 행사가 모두 벅찬 감격의 연속이었습니다. 행사장마다 울려퍼지던 ‘비바 파파(viva papa)’의 함성이 아직도 귓전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교황은 이번 방문기간 중 세월호 참사와 병영 가혹행위, 빈부격차 등으로 찌들리고 지친 우리 사회를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로 한껏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손을 붙잡고는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으며, 새터민과 외국인 이주노동자, 장애인들과도 스스럼없이 만났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특히 이번 방한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의 즉위 이후 첫 번째 이뤄진 아시아 방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지난해 3월 교황으로 취임한 이래 브라질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뿐입니다. 역대 교황의 방한으로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지난 1984년과 1989년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었으니까요. 그때 요한 바오로 2세가 비행기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한국 땅에 입맞춤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감격에 젖어 있었으면서도 단순히 겉으로만 들뜨고 만족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교황을 가까이서 대면했다는 자체로 기뻐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떠나가면서 오히려 정신적인 공백상태가 초래될까 은근히 걱정된다는 얘깁니다. 위로의 부피가 컸던 만큼 자칫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검소하고 소탈한 그의 생활태도에 찬사를 늘어놓는 우리 스스로 그런 면모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말입니다. 모든 것을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가치 위주로 평가하기 쉬운 우리들에게 내면의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이 없다면 지난 며칠 동안의 교황 방문은 일과성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를 교황이 직접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제점들을 환기시키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 자연환경의 파괴 등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한 원만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 또한 우리들에게 맡겨진 과제입니다. 교황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고 해서 그들의 뿌리깊은 분쟁이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에 이르러 양측의 갈등과 반목이 더욱 위기상태로 치닫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지 그 해결책으로 소통이라는 과제를 던져 주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며 이해와 설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도 설파했습니다.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움으로써 타협과 절충이 가로막힌 우리 사회에 절실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가장 유감스러웠던 것은 고해성사의 움직임이 거의 엿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요즘처럼 활기를 잃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일수록 책임을 느끼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사회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움직임은 있었으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교황이 로마 가톨릭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최고 사제장’이면서도 평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고백하는 참회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잔치는 끝나고 다시 우리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장 부딪쳐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슬픔과 분노, 반목과 질시에 처한 우리의 현주소를 새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교황이 지난 며칠 동안 몸소 보여준 행동과 교훈들을 떠올리며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더없는 소득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제 서울을 떠나가면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불우한 이웃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거듭 촉구한 것입니다. 꼭 종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부터 이런 교훈들이 차근차근 실천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밝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세상만사'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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