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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파동과 '평균의 함정'
연말정산 파동과 '평균의 함정'
  • 안규식 상임위원
  • 승인 2015.01.2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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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라는 도그마..또 다른 ‘함정’ 기다릴 수도

 
최근 연말정산 파동의 여진이 심각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연말정산은 악연이 길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첫해인 20138월 세법개정안이 공개됐다. 소득세를 먼저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이 골자였다. 소득공제를 건드린 것은 세율을 올리지는 않으면서도 증세효과를 낼 수 있는 묘수인 까닭이다. 정부는 "연봉 3450만원부터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450만원을 '소득상위 30%'로 표현한 것이 월급쟁이들의 화를 돋웠다. 여론이 들끓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재부에 재검토를 명령했다.

현행 제도는 그렇게 확정됐다. 당시 기재부는 연봉 5500만원 이상부터 세금이 오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1152014년 소득분에 대한 연말정산이 시작됐다. 하지만 여론이 다시 악화됐다. 정부 주장과 달리 연봉 5500만원 이하 소득자 중에서 세금을 많이 토해내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번에는 여당이 펄쩍 뛰었다. 이에 정부는 이미 통과된 개정안을 또 손대기로 했다. 정부-여당이 서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연말정산 파동으로 내상이 심하다.
 
세금이 대폭 늘 것으로 추정되는 1인공제자의 경우 연봉 6600만원 이하자만 100만명이 넘는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정부는 과연 개인별 편차가 심하다는 것을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자체를 잘못했든지, 아니면 알고도 의도적으로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시뮬레이션을 잘못했다면 "연말정산 개편으로 8600억원의 세수가 늘 것"이라고 밝힌 것도 믿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1조원이 넘을 수 있다. 이미 정부는 "확대되는 세수는 9300억원"이라며 700억원을 높인 상태다.
 
기재부 일각에서는 억울해한다고 한다. 언론이 과도하게 부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재부가 '공제 변경의 부작용'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많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 역진성 해소는 크지 않고, 개인별 편차만 커진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소득세란 개인의 소득에서 필요경비를 뺀 남는 부분(과표)에 세율을 매겨 과세하는 제도다. 개인이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교육비·의료비 등은 필요경비로 보고 소득공제를 시켜줘야 한다. 반면 월세처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비용은 세액공제가 맞다는 것이다. 만약 교육비·의료비 등을 세액공제로 바꾸면 개인마다 편차가 커 역진성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되레 같은 소득 내 공제 차이만 커질 수 있다.

통계학에 평균의 함정이란 게 있다. 어떤 상황을 단순명쾌하게 이해하고 싶을 때 평균을 이용하면서 생기는 오류다. 이를테면 A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평균 키가 175라고 치자. 평균치를 비교하면 다른 학교에 비해 얼마나 큰 지, 매년 고3 남학생 평균 키가 얼마나 컸는 지를 쉽게 알 수는 있다. 하지만 평균 키가 175라고 대부분 키가 175라고 볼 수 있을까. 180이상 큰 학생이 절반 이상이고 170이하 학생이 절반 정도면 얼추 평균치가 175가 나온다. 하지만 이 평균은 A고등학교 3학년의 보편적 키 상태를 나타내지는 못한다. 통계상으로는 맞지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이 거세진 것도 이런 평균의 함정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에 따라 연봉이 5500만원을 넘는 납세자가 세부담이 늘어난다고 했다. 연봉 5500만원 초과7000만원은 평균 23만원, 7000만원 초과는 평균 134만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그러나 개별적 사례를 뜯어보니 특별공제 혜택 적용 차이 등으로 연봉 5500만원 이하 구간의 급여생활자 중에서도 세금이 늘어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다 보니 다자녀가구와 1인 가구 등의 현실을 대변하지 못한 셈이다.
 
외국에서는 통계치를 내놓을 때 이런 평균의 함정을 피하려고 중간값등을 많이 활용한다. 평균값이 실제 보편적 상태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값 등 다른 대표치를 활용해 현실에 가장 다가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쉽게 평균값을 말하면서 불편한 진실들은 가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라는 도그마에 갇혔기 때문이다하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을 시민단체나 언론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당정회의로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낸 보완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든지 또 다른 함정이 기다릴 수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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