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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갑질’ 보여준 김영란법
‘국회의 갑질’ 보여준 김영란법
  • 허영섭
  • 승인 2015.03.1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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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칼럼>요즘 며칠 사이 가장 귀가 가려운 사람이 아마 김영란 전 대법관일 겁니다. 이른바 ‘김영란법’이 사흘 전 국회를 통과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여성 최초로 대법관을 지내고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그가 발의했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안’이 바로 이 법의 모체입니다. 발의되고 2년 7개월 동안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던 이상으로 다시 다른 차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법률의 이름에서 보여주듯이 부정의 소지를 없애 우리 사회를 맑고 바르게 만든다는 취지야 나무랄 데 없지만 입법 과정에서 내용이 상당히 틀어진 게 문제입니다. 아니, 문제가 될 것을 뻔히 알고서도 법안을 통과시킨 게 잘못이겠지요. 청렴을 지향한다며 어느 것은 집어넣고, 또 어느 것은 빼는 바람에 ‘청렴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회의 졸속 작품입니다.

법안의 통과를 알리는 의사봉 소리와 함께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초유의 사태가 그런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당이나 야당이 똑같이 문제점을 깨닫고 있으며, 앞으로 시행되기까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 안에 제대로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한변협도 이른 시일 안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벼르는 중입니다. 헌법소원의 효력 여부를 떠나 법률이 지닌 문제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래 공직 분야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마련된 법안이면서도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등 민간 영역까지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물론 교단이나 기자들의 취재현장도 부정청탁 소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인들을 이 법에 따라 일률적으로 규제할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고 수사 당국에 의해 ‘언론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과잉 입법입니다.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공직 분야입니다. 각종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돈 봉투가 오가기 쉽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통해 확인된 우리의 현실입니다. 관련 공직자들이 모두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유혹에 빠져들 소지는 충분합니다. 중요 범죄의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도 마찬가지입니다. ‘벤츠 검사’니, ‘스폰서 검사’니 하는 그동안의 사례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국회의원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승용차에서 돈다발 쇼핑백이 발견되어도, 은행 대여금고에 뭉텅이 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도 웬만하면 ‘정치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빠져나가려 드는 것이 국회의원들입니다. 입법 청탁을 받으면서 수천만 원씩 받은 사례도 확인되었습니다. 수시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한몫 톡톡히 챙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법안에 대해 내년 9월까지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현행 의원들의 임기 동안은 일단 단속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시 대상을 민간 분야로 확대해 언론인들까지 포함시킨 것이니 ‘물타기 작전’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변호사나 의사, 금융기관 및 대기업 간부 등과의 형평성이 맞지 않습니다. 더욱이 최근 일부 시민단체 인사들이 뒷주머니를 챙기다 적발됐듯이 기왕에 민간 분야까지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려 했다면 그들도 포함시키는 것이 올바른 처사입니다.

이밖에도 문제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신고하도록 한 규정이 형법상 범인은닉죄 배제 조항과 어긋나는 데다 형법과 김영란법에 의한 ‘이중처벌’ 문제도 시정돼야 할 것입니다. ‘부정청탁’에 대한 개념이 모호함으로써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하는 경우 ‘검찰 공화국’이 될 소지도 다분합니다.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들이 원칙도 없이 자의적으로 법을 만들었기에 제기되는 논란입니다.

법안이 마련되고도 그동안 원론적인 수준에서 논의가 오가다가 허겁지겁 조문을 꿰어맞추다 보니 생겨난 결과입니다. 이미 연초에도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조정하고 해결하기보다는 도리어 골칫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또한 국회의원들입니다. 세월호 사태에 있어서도 당리당략을 앞세워 우리 사회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민생법안 처리도 말로만 앞세워지고 있습니다.

이번의 김영란법은 입법권을 내세운 국회의 ‘갑질’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처럼 무책임한 국회를 언제까지 두고봐야 하는지 속이 터질 뿐입니다. 법안을 발의한 당사자인 김영란 전 대법관의 심정이 어떨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귓구멍이 가려운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엊그제 출장을 이유로 해외로 출국하면서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던 것도 그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세상만사'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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