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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먼 고량주와 마오타이
진먼 고량주와 마오타이
  • 허영섭
  • 승인 2015.11.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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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칼럼>중국의 마오타이(茅台)와 대만의 진먼(金門) 고량주가 같은 식탁에서 어우러졌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지우(馬英九) 대만 총통이 지난 주말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회동을 가지면서 서로 만찬 테이블에 내놓은 술입니다. 만찬이 끝나고 마 총통이 귀국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 두 사람 모두 술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지만 양안의 두 정상이 분단 66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 화해의 술잔을 나눴다는 자체가 상징적입니다.

마오타이가 중국에서 외국 정상에게 대접하는 국빈주(國賓酒)로 유명하듯이 진먼 고량주도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술입니다. 술 자체의 풍미가 높기도 하지만 술이 생산되는 진먼다오(金門島)가 양안 분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도 더욱 관심을 끌게 됩니다. 대륙에서 불과 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부터가 그렇습니다. 웬만한 실력이라면 헤엄을 쳐서라도 충분히 건너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반면 대만에서의 거리는 190km나 됩니다.

양안 분단 이후 진먼다오가 인민해방군의 집중 포격을 받은 것이 이러한 지리적 여건 때문입니다. 특히 1958년 8월에 이르러 포격이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무려 40일 동안에 걸쳐 47만 발의 포탄이 비 오듯이 쏟아짐으로써 섬 일대가 거의 초토화된 것이 그 결과입니다. 대만으로서는 최대의 위기였지만 끝내 무사히 넘겨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 총통이 본토의 최고 지도자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이 술을 권했다는 것이 단순히 애주가적인 차원을 넘어선다는 뜻이지요.

진먼다오와 함께 대만의 최전방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섬이 마쭈다오(馬祖島)입니다. 진먼다오가 대만해협의 남쪽에 위치한다면 마쭈다오는 북쪽에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 두 섬이 대만의 관할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끕니다.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국민당 정부가 국공전쟁에서 마오쩌둥(毛澤東)에게 패배해 대만으로 밀려난 1949년 이래 위기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대만 본섬에서는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됐으나 이 두 섬에서는 1992년까지 계엄령이 지속됐다는 사실도 지역적인 특수성을 말해줍니다.

영화제 중에서 중국어권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만의 금마장(金馬奬, Golden Horse Awards) 영화제가 이 두 섬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은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화제가 처음 시작된 1962년 당시 영토 수호에 대한 대만 사회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진먼다오와 마쭈다오가 엄연히 자신의 관할이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하려는 뜻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쭈다오에도 나름대로 유명한 고량주가 생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88갱도(坑道)’가 바로 그것입니다. 영어로는 ‘터널(Tunnel)’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중국군의 포격에 대비해 뚫어놓은 지하 통로를 상표에 응용한 것이지요. 지하 통로에 있어서는 앞서의 진먼다오가 훨씬 더 조밀하게 뚫어 놓았습니다만 마쭈다오가 상표를 선점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이 방공호 용도로 만들었던 바로 그 화강암 동굴에 술을 저장하면서 숙성시키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마쭈다오에는 ‘라오주(老酒)’라는 특산품 술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날 시 주석과 마 총통의 회동에도 소품으로 등장한 술입니다. 마 총통 자신이 평소 즐겨 마시는 술이라고도 하지요. 집무실에서 외부 손님을 접대할 때도 이 술을 꺼낸다고 합니다. ‘마쭈(馬祖)’라는 이름에 ‘마씨 조상’이란 뜻이 포함돼 있으므로 그가 개인적으로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술은 만찬 자리에 올려지지는 않았으나 시 주석에게 귀국 선물로 전달됐다고 합니다.

아마 마잉지우 총통으로서는 양안 분단의 표시로 ‘88갱도’를 더 내놓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직설적인 화법을 피하고 라오주로 간접화법을 택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진먼 고량주나 ‘88갱도’가 수수로 만드는 증류주로서 58도의 알콜 함량을 자랑하는 데 비해 찹쌀을 발효시켜 짙은 갈색을 내는 라오주는 30도 정도입니다. 시 주석이 개인적으로 황주(黃酒)를 선호한다는 점도 감안한 선택이었겠지요. 앞으로도 두루두루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가자는 취지라고 여겨집니다.

요즘은 양안 사이의 경제교류 확대에 따른 화해·협력 분위기에 힘입어 진먼다오나 마쭈다오의 특산품 술의 인기도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이 풀어지면서 과거 접경지역이던 이들 섬이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결과입니다. 실제로 술에 대한 품평에서도 대륙에서 생산되는 마오타이나 우량예(五糧液), 수이징팡(水井坊), 샤오싱주(紹興酒) 등에 못지않다는 게 애주가들의 평가입니다.

이번 두 정상의 만남은 양안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물론, 내년 1월로 다가온 대만의 차기 총통선거에서 앞서가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선거 판세를 뒤집으려는 술책‘이라며 이번 회동에 대해 극구 경계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회동을 전례 삼아 앞으로 야당이 집권하는 경우에도 양안 정상회담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양안 관계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얘기지요.

이러한 양안 정치관계의 진전을 바라보며 우리의 현실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다음은 기약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식사 자리에 올릴 술이 마땅치 않아서일까요. 그러나 우리에게도 자랑할 만한 민속주가 적지 않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돋는 소곡주 두견주 청명주 삼해주 백일주 안동소주 이화주 사철주 이강고 등등이 그렇습니다. 술 걱정은 말고 서로의 신뢰 관계를 조속히 회복하면 좋겠습니다. 진먼 고량주와 마오타이가 같은 식탁에 어우러진 장면이 부럽기만 합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동서남북'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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