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저격수'와 '청문회 초짜'의 만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삼성 저격수’ 로 불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만남이다. 이들은 처음 면대면으로 만났다. 박 의원은 일방적으로 이 부회장을 몰아부쳤고, 이 부회장은 몸을 한껏 낮췄다. 이 부회장의 답변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박 의원이 끊거나 다음 질문을 꺼내 충분한 답변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7분동안 질의시간 중 박 의원의 첫 질문은 “아버님인 이건희 회장 건강상태는 어떠시냐”였다. 이 부회장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빠른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박 의원은 곧바로 공세에 들어간다. “1995년에 아버님으로부터 60억원을 받으셨죠?”라며 상속 과정의 문제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지금 재산이 얼마냐” “증여세와 상속세는 얼마를 냈냐”고 물었지만 이 부회장은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다”고 머뭇거렸다. 이 부회장이 “아… 저…”라고 말이 막히자 박 의원은 “묻는 말에 답변하라”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박 의원은 “8조 재산을 일궜는데 굉장히 성공하셨죠?”라는 가시 돋힌 질문에 이 부회장이 “좋은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에둘러 답하자 “동문서답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박 의원은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에게서 “삼성에서 압력 전화를 받았다”는 답을 받아낸 뒤 이 부회장에게 “왜 협박했느냐”고 추궁했다. 이 부회장은 “송구스럽지만 양사 합병이 제 승계나 이런 쪽과는 관계가 없다”며 “제가 모자라다면 꾸짖어주시고, 채찍질을 받아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동문서답'식으로 공세를 피해갔다.
박 의원은 2007년 대선 때 ‘저격수’ 자질을 내비쳤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각종 인사청문회와 굵직한 정책 현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경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벌 개혁에 힘쓰며 ‘삼성 킬러’라는 새 별명도 얻었다. 재벌개혁과 삼성 지배구조 개선에 앞장섰던 박 의원은 최순실 씨 일가와 삼성 간의 관계 등 '정경유착'을 노련하게 추궁, “역시 박영선”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반면 이 부회장은 청문회를 마치며 "구태를 다 버리고 정경유착이 있었으면 다 끊겠다"고 말했다. 그는 밤늦게 청문회가 끝날 무렵 소회를 묻는 질문에 대해 "여러 의원님들의 좋은 의견을 많이 들었고 돌아가서 곰곰이 다시 한 번 새겨 변화가 있도록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책임이고, 저희가 신뢰를 잃은 거 같다"며 "뭘 말씀드려도 제가 잘못한게 많아서 앞으로 신뢰받을 기업으로 (되도록 노력하고), 저 자신도 신뢰받을 기업인이 되도록 정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지난 2001년에 개봉했던 영화 ‘친구’의 명대사이다. 이 대사는 수없이 많은 패러디와 성대모사 등을 양산하며 현재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과 대사를 알고 있다. 선생님이 학생의 귀를 잡아당기며 외치는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이 사투리가 마냥 웃겼던 기억이다. 이 '아부지(아버지)'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서 이 부회장을 공격한 박 의원의 재치가 놀랍기도 하지만 국회청문회라는 공개무대를 빌어 사실상 ‘매스컴 데뷔전’을 한 이 부회장이 삼성후계자로서 ‘껍질’을 벗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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