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노변정담'과 최저임금제 현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변정담'과 최저임금제 현실
  • 정종석
  • 승인 2018.07.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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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파티로 환심 사려는 것은 곤란...진정으로 국민과 소통-대화하려는 의지가 중요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서울 광화문 인근 호프집을 방문해 시민들과 대화하며 맥주를 마셨다.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미복(微服)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무엇을 몰래 살피러 다닐 때에 남의 눈을 피하려고 입는 남루한 옷차림이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미복잠행(微服潛行)’이라는 것이 있었다. 임금이 민생을 살피기 위해 일부러 서민의 복장을 하고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던 일을 일컫는다.

옛 기록에는 이 미복잠행에 얽힌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한 이야기. 성종 임금이 어느 날 이 미복잠행에 나섰다. 물론 백성들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했던 까닭이다. 발길이 청계천 광교에 이르러 다리 밑에 커다란 보퉁이 하나를 곁에 두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백성을 만났다.

임금이 물었다. “어디 사는 뉘시길래 거기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게요?” 백성의 대답은 이랬다. “아주 어질고 착한 임금님을 만난 덕분에 백성들 살아가기가 여간 편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임금님께 드리려고 해삼과 전복을 좀 가지고 올라왔는데 어디 뵐 수가 있어야지요. 임금님 사시는 데 좀 가르쳐 주세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들의 살아가는 형편을 직접 살피고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어보고 싶어 한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다르지 않다. '노변정담(爐邊情談)/fireside chat)'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부터 토론형식의 라디오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피력, 국민의 인기를 모았던 것을 말한다.

도시자영업자들, “최저임금과 대통령께 불만이 있다” "마음고생이 심하다” 애환 토로

루스벨트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정책을 국민에게 약속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취임한 1933년 처음으로 당시에 이미 널리 보급된 라디오를 통하여 국민에게 소신을 피력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졌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의 다정한 음성과 힘찬 어조는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고, 많은 여론을 환기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한 호프집에서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30여 명의 간담회 참석자들은 애초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를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사실을 행사 직전에 알고 환호했다.

참석자는 청년 구직자, 경력단절 여성 구직자, 아파트 경비원, 중소기업 대표, 편의점 점주, 요식업체 운영자, 서점 주인 등 최저임금과 일자리 관련 고민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었다. 여기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참석했다. 요즘 경제사회적으로 초미의 현안인 최저임금·노동시간·자영업·고용 등에 관해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이 가운데 유독 관심을 끄는 것은 도시자영업자들의 발언이다. 도시락업체 대표인 변양희씨는 “최저임금과 대통령께 불만이 있다”며 웃었다. 문 대통령은 그러자 “업체가 직장인이나 회사가 많은 곳에 있는가” “주인이 몸으로 때워도 남은 것이 없는가” 물었다. 변씨는 이에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답했다.

23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종환씨는 "최저임금 같은 경우는 좀 성장해서 주면 되는데, 지금 경제가 침체되고 저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만도 못한 실적이어서 (가능하면) 종업원을 안 쓰고 가족끼리 일하려고 한다"며 "정부가 정책을 세울 때 생업과 사업을 좀 구분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태희씨는 "4대 보험을 처음부터 가입해 매달 100만 원씩 넣고 있는데, 편의점주 대부분은 그 비용이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시행 놓고 자영업자들 애환과 불만..."장사와 사업 구별해서 경제정책 펴달라"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최저임금 시행에 관한 자영업자들의 애환과 불만이다. 지금 내수경제의 '바로미터'인 외식산업 경기지표는 모든 부분에서 '악화일로'다.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에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외식 자영업자들은 '폐업'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이에 자영업자들의 요구사항은 정부가 장사와 사업을 좀 구별해서 경제정책을 펴달라는 얘기로 들린다.

장사와 사업을 면밀하게 보면 물건을 파는 판매대상이 불특정 다수인가 아니면 특정한 소수인가로 구분할 수 있다. 장사를 대표하는 가게, 사업을 대표하는 기업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가게에서는 판매대상이 불특정 다수인 반면 기업에서는 총판, 그밑에 대리점을 두고 거래를 한다. 즉, 총판과 대리점이라는 특정 소수를 대상으로 판매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장님의 출근여부를 놓고 장사와 사업을 구별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사장이 매일매일 출근해서 감독을 해야만 운영되는 것이 장사라면 사장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가면 그것은 사업이라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호소는 사업에 적용해야 할 최저임금제를 무턱대고 장사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현실적으로 엇박자와 부작용이 난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한 나라의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 앞에서 자영업자들이 터놓고 애로사항과 불만사항을 하소연했다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행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펴더라도 현실을 모른다면 이는 사상누각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저임금제와 같이 현실적으로 절박하고 민감한 문제의 운용실상을 대통령이 현장에서 듣고 제대로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잘 다니는 회사 계속 다녔어야 했는데... 왜 장사를 시작했나 모르겠습니다. 치킨집 하면 못 벌어도 500만원은 번다고 들었는데 저는 하루종일 닭을 튀겨도 300만원 벌기가 힘드네요. 월급쟁이가 가장 편하다는 것을 빚이 생기니 깨닫게 되네요. 가장으로서 부끄럽고 자괴감만 듭니다. 폐업하고 작은 기업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장사를 하면 5년 내 망하는 이상한 나라에요..."

'쇼통'이라도 시민대화 나선 건 좋은 일...먼 길 온 국민이 선물하고픈 대통령 만나고파

서울 중구의 한 치킨전문점 사장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자괴감이 든다고 말을 할 때 울먹이기까지 한 그의 모습이 개인 자영업자들의 현 주소다. 지금 우리나라는 개인사업자 폐업률 80% 시대이다. 10개의 가게가 문을 열었을 때 5년 안에 8곳이 폐업한다는 말이다.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소비위축과 임대료와 최저임금 등에 따른 각종 비용 부담,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워라밸 문화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이 맞물리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내년 최저임금 10.9% 인상은 사실상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과거 노변정담 시간은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루스벨트는 미디어를 유리하게 이용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이 광화문 맥주대화처럼 와이셔츠 차림으로 홀연히 시민과의 대화에 나선 것은 보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야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소통이 아니라 ‘쇼통’이라도 말이다.

'노변정담'은 이 담화가 공식적이고 딱딱한 형식이 아니라 난롯가에서 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는 듯한 친밀감을 국민들에게 불러 일으킨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미복잠행'을 통해서라도 국민들과 소통하고 대화를 하려고 하는 대통령의 의지다. 미디어를 이용해서 일시적인 인기를 유지하거나 잠시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라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어렵다.

지금은 뇌물혐의로 구속 중인 이명박 대통령도 2008년 10월13일 KBS1 라디오를 통해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취임 후 첫 '노변환담' 형태의 라디오 연설을 했다. 그러나 지금 누가 10년 전 그의 노변정담을 기억하고 감명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정치지도자가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귀담아 듣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조선시대처럼 천리 먼 길에서 자연산 해삼과 전복을 지고 올라와 선물하고 싶은 대통령을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대표기자/발행인

한국언론학회 회원(언론학박사)

(전)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광고마케팅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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