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이드라인도 강제성 없어 시스템 방치" 핀테크 비대면 금융 사기 속출
[금융소비자뉴스 정윤승 기자] #지난해 8월 자녀의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을 돌려받기 위해 통신사 대리점을 찾았던 A씨는 졸지에 1억5000만원의 빚을 지게됐다. 대리점 직원이 A씨 신분증을 몰래 복사하고 대포폰을 개통해 4개 금융회사로부터 1억5000만원을 대출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금융회사에 자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이자도 부담하게 됐다.
#B씨 또한 5920만원의 대출사기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는 B씨의 휴대폰을 절취한 후 휴대폰에 저장된 B씨의 운전면허증 사진을 이용해 대출을 받았다. 문제는 가해자가 B씨의 직장 정보와 집 주소를 사실과 달리 기재하고 분실 신고된 B씨의 신분증을 사용했는데도 대출이 승인됐다는 것이다.
이들 사례처럼 신분증 사본으로도 비대면 실명확인이 가능한 허점을 악용한 대출사기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금융사 엉터리 핀테크 비대면 실명확인 금융사고 피해자 고발대회’를 열고 신분증 사본으로 제3자에 의한 대출 사기를 당한 사례를 공개했다.
경실련은 이날 스미싱, 피싱 등으로 유출된 신분증 사본이 ‘비대면 대포폰 개통→대포통장 개설→비대면 대출사기·무단 인출’로 악용되고 있지만 금융사들의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실련은 “국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중 신분증 원본대조가 가능한 진위 확인 시스템을 갖춘 모바일뱅킹은 현재 단 한 곳도 없다”면서 “핀테크 시장에는 인증 기술이 있지만 시중은행 등은 네트워크 설비투자 비용, 지점운영비, 인건비 등을 이유로 고의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아도 강제성이 없어 엉터리 비대면 실명확인 시스템이 방치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예금자보호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사고 비용을 보전할 법과 제도가 있지만 금융회사와 금융 당국 등은 피해자의 중과실 책임만 따지고 엉터리 접근 매체를 활용한 시스템 하자와 불법행위, 사고 책임 등에 대해서는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김호윤 경실련 금융개혁위원(변호사)는 “신분증 사본 확인은 명백한 금융실명법 위반임에도 금융회사들은 적반하장격으로 피해자를 소송으로 내몰고 피해구제는 지연되고 있다”면서 “원스톱 금융소비자 피해구제를 통해 민·형사 사건 대응이 이뤄지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피해자들이 소송으로 더 이상 몰리지 않도록 금융회사에 입증책임을 묻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경찰 신고가 접수되면 대출사기 피해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권리 행사를 정지시켜야 한다”면서 “채무면책을 지원하는 금융감독기구와 경찰, 한국소비자원 등이 참여하는 금융기관 조정기구를 설치해 피해자들이 일일이 채무부존재 확인과 소송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실련은 △대출사기 피해사례 접수시 금융회사 권리행사 중지 △경찰·금감원·금융회사 등이 참여하는 금융기관조정기구 설치 △피해자 채무면책 지원 기구 설치 등 대출사기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