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시대와 ‘채권시장 대학살’...파월-그린스펀의 금리 게임
고환율 시대와 ‘채권시장 대학살’...파월-그린스펀의 금리 게임
  • 정종석
  • 승인 2022.08.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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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잭슨홀 연설서 큰 폭의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언급...코로나19로 급팽창했던 유동성 파티는 이미 끝났다고 봐야할 듯...위기를 구경만 하다가는 과거처럼 또 다시 '채권 대학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깨달아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시장경제의 원리상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찍어내면 가치가 하락한다. 그러나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한 미국은 강 달러로 재정 및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해도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이 가능하다. 미국이 끊임없이 돈을 찍어내 소비해도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환류’하는 역학구조 때문이다.

미국은 시장에 달러를 추가 공급하든(양적완화), 금리를 인상해 시장에 풀린 달러를 회수하든(긴축) 국내 경제 차원을 넘어선 문제에서 자유로운 나라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넘어서 고환율 시대가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은 이제 ‘강(强) 달러’를 넘어 ‘슈퍼달러’ 시대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6일(현지시간) 전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잭슨홀 연설에서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이어간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고통이 수반되지만 당분간 공격적 금리인상을 지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어 "물가 안정을 되찾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며, 우리가 가진 수단을 강력하게(forcefully) 써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파월의 이같은 발언은 물가를 잡으려면 고금리, 경기 둔화 등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혹여나 물가를 잡지 못하면 더욱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초강경 발언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미국이 금리를 또 올리면 당장 다음 달 말부터 한·미 정책 금리는 역전이 불가피해진다. 이달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오른 달러·원 환율이 추가 변동을 겪을지 여부도 주목된다.

여기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앨런 그린스펀이다. 그는 1987년부터 2006년까지 20년간 연준 의장을 4연임한 전설의 연준 의장이다. 세계 경제 대통령, 세계 경제의 조타수 등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현재도 생존해 있어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미국은 기축통화국...‘달러 패권’ 시대에 환율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미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 

앨런 그린스펀은 연준 의장 재직 때인 1994년 2월부터 1년 동안 기준금리를 무려 3%포인트나 올렸다. 1980년대 말 미국 부동산 가격의 급락으로 파산했던 저축대부조합 사태가 금융정책 완화로 진정된 뒤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당시 3%이던 기준금리는 0.5%포인트씩 세 번, 0.75%포인트 한 번을 포함해 일곱 차례 기습 인상돼 6%가 됐다.

자연스럽게 시장에는 메가톤급 충격이 나타났다. 채권가격 폭락으로 세계 최상급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큰 손실을 입고 자본금 확충을 위해 외부에 손을 벌렸다.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는 파산했다. 이 충격은 당시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기사로 다루면서 ‘채권시장 대학살(Bond Market Bloodbath)’로 불리게 됐다.

당시 더 큰 문제는 신흥국가에서 터져나왔다. 지속된 유동성을 등에 업고 파티를 즐기던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증시가 연준의 출구 전략 1년 만에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했다. 신흥국에 투자됐던 글로벌 달러 자금이 높은 금리를 찾아 미국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멕시코는 1994년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2년 뒤인 1996~1997년에는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한국 등 아시아로 확산됐고, 1998년엔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이어졌다. 멕시코 금융위기가 남미·아시아 등 다른 나라로 확산된 것과 관련해 멕시코의 전통 술에 비유한 ‘데킬라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겪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달러 패권’ 시대에 환율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미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이다. 전 세계가 제롬 파월 의장의 입을 주목했던 것도 이 연유이다. 사실상 각국 통화정책은 미국의 정책 방향이 결정되면 이에 반응하는 종속변수에 불과한 현실이다.

달리 말해서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활용해 국제질서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외환보유고를 쌓아나가는 국가들은 환율 변동에 생존과 사활문제가 좌우된다. 미국과 더불어 G2 강대국으로 떠올랐다고 하지만 중국 역시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난했던 1960년대의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사람들은 서독에 광부로, 간호사로, 그리고 뜨거운 중동의 사막으로 몰려갔다. 그때 정부는 그들에게 ‘달러, 달러, 달러를 벌어오라’고 외쳤다. 달러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의 위세는 몇 차례 부침은 있었지만 여전히 ‘슈퍼 파워’이다.

활황 뒤에는 침체가 있고 침체가 지나면 활황이 와...침체와 활황 주기의 반복은 피할 수 없어

파월 의장의 예고대로 금리 인상이 기존 추세대로 진행된다면 현재 2.25~2.50%인 미 기준금리는 오는 9월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0%포인트(p) 또는 0.75%p 오를 수 있다. 연준은 앞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두 차례 연속으로 단행한 상태다.

이 경우 한미 금리는 다시 역전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2.25%에서 2.50%로 0.25%p 높였다. 이로써 한미 금리는 동일 선상에 놓였다.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한다는 가정 아래 나타나는 금리차도 상당 폭 벌어질 전망이다. 9월 말 기준 한국 2.50%, 미국 3.00~3.25%로 격차가 0.75%p에 이르게 된다.

다음 달에는 한은이 금리 결정 회의를 열지 않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는 이 같은 금리 격차를 오는 10월·11월에 좁힐 수 있다. 하지만 연준이 9월 자이언트 또는 빅 스텝을 단행한 뒤 11·12월 FOMC에도 각각 0.25%p씩 금리를 높인다면 한은의 추격에도 연말 금리차는 다시 0.75%p로 크게 벌어지게 된다.

인플레이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연준이 조기 긴축에 나설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세계 증시가 조만간 열릴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만 쳐다보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전망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연 3회에 무게가 실렸지만 이제는 최소 4회, 최대 7회로 늘어났다.

연 7회 인상은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 때와 동일한 횟수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이를 우려해 신중한 금융정책을 당부했다고 한다.

활황 뒤에는 침체가 있고 침체가 지나면 활황이 온다. 침체와 활황 주기의 반복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이 경기의 사이클이다. 현대 경제에서 침체를 피할 방법은 없다. 경기를 진작하기 위한 신용 남발은 과잉 수요와 생산을 낳는다. 한바탕의 멋진 파티를 마다할 사람은 없지만 그 끝을 대비해야 한다.

물가는 오르고 신용팽창은 극에 이른다. 중앙은행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긴축을 시작한다. 수요를 서서히 줄여 연착륙을 꿈꾼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에 비춰보면 연착륙은 없다. 침체는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급팽창했던 유동성 파티는 이미 끝났다고 봐야할 것 같다. 위기를 구경만 하다가는 우리는 과거처럼 또 다시 '채권시장 대학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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