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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CEO가 뭐길래...조선시대 붕당(朋黨)보다 더한 ‘자리싸움’
KT CEO가 뭐길래...조선시대 붕당(朋黨)보다 더한 ‘자리싸움’
  • 권의종
  • 승인 2023.03.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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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주인 없는 소유분산 민영기업의 자리까지 탐 내면 안 돼... ‘나의 사람’ 보다 ‘나은 사람’이 뽑혀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감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정치사는 반목과 대립, 그리고 분열의 역사다. 현대 정당의 뿌리를 구태여 찾는다면 조선 중기 붕당(朋黨)에까지 소급한다. 붕당은 학맥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된 집단을 일컬었다. 지방에서 성장한 사림파(士林派)는 15세기 말 이후 중앙에 진출했다. 훈구파(勳舊派)로부터 모진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조선 14대 임금 선조 즉위 뒤 중앙 정계를 장악했다.

학문적 견해 차이에서 출발한 붕당은 당리당략에 얽매여 운영됐다. 비판과 견제, 여론 수렴을 통해 나라를 위한 정책을 만들려는 ‘착한 동기’는 애초부터 보이지 않았다. 되레 분파의 역사가 시작됐다. 발단은 사소했다. 이조전랑(吏曹銓郎)이라는 벼슬자리였다. 전랑은 조선 시대 6조 중 하나인 이조의 관직 이름으로 정5품 정랑과 정6품 좌랑을 합쳐 부른 말이었다.

품계는 낮았으나 권한은 막강했다. 인사권을 쥐고 있어 요직 중에 최고의 요직으로 통했다. 각 부서 당하관의 천거, 언론 기관인 삼사의 관리 임명, 재야인사의 추천, 후임 전랑의 지명권을 갖고 있었다. 중죄가 아니면 탄핵을 받지 않았고 승진도 보장됐다. 인사권과 언론권이 집중된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향배가 결정됐다.

1572년 이조전랑에 김효원이 추천됐다. 명종 비인 인순왕후의 동생 심의겸은 김효원이 한때 훈구파였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래도 임명됐다. 1575년 심의겸의 동생 신충겸이 이조전랑에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반대했다. 전랑의 관직은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며 대신 이발을 추천했다. 이로써 사림파는 분열됐다. 당시 김효원의 집은 한양의 동쪽, 심의겸의 집은 서쪽에 있어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각각 동인과 서인이라 부르게 됐다.

‘임자 없는’ 민간기업, 역대 정권의 ‘먹잇감’...KT 최고경영자 선출 3개월째 오리무중

치졸한 자리싸움은 어쩌면 지금이 조선 시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공기업은 물론 금융지주, 포스코 등 이른바 ‘주인 없는’ 민영기업의 수장 자리는 역대 정권마다 탐내는 먹잇감이 돼왔다. KT 최고경영자(CEO) 자리도 그중 하나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KT 수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살벌하다. 선출이 3개월째 오리무중이다. 방향과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KT 이사회는 정관에 없는 연임 우선 심사제도를 통해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결정했다. 비자금 조성과 ‘쪼개기 후원’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75억 원의 과징금을 받으며 CEO 리스크가 불거진 구 대표의 연임이 결정되자 여론의 비판이 거셌다. 압박을 느낀 이사회는 대표 선임 절차를 공개경쟁 방식으로 재추진하기로 했다.

다시 진행된 대표이사 공모에서 구 대표는 지원을 철회했다. 2월 이사회가 추린 최종 후보자는 윤경림 KT 그룹 부문장을 포함해 도합 4명. 모두 KT의 전·현직 임원이었다. 공교롭게도 대선 캠프 출신자 등 여권이 민 것으로 알려진 정·관계 출신 인사들은 모두 탈락했다. 3월 3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윤 후보의 선임 안건이 의결될 예정이다.

윤 후보 선임에 여당과 대통령실이 반기를 들었다. 여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포문을 열었다. “구 대표가 자신의 ‘아바타’인 윤 후보를 세웠다”며 “이는 내부 특정인들이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전형적 수법”이라 비판했다. 대통령실도 가세했다. “공정·투명한 거버넌스가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며 거들었다. 국민연금도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의중을 시사했다.

빌미는 KT가 제공했으나...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를 동원하는 정부·여당 개입은 ‘부적절’

빌미는 KT가 제공했다.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구 대표가 연임에 나서며 권력이 개입할 여지를 줬다. 그는 KT가 2014년 5월에서 2017년 10월까지 회삿돈으로 상품권을 매입한 뒤 이를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으로 11억5,000만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중 4억3,790만 원을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한 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그렇다 해도 정부 지분이 0%인 민간기업의 CEO 선정에 정부·여당이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동원하려는 시도가 사실이라면 이 또한 부적절한 처사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의 투명 경영을 유도하는 자율지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오히려 국민연금이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연금은 자신의 지배구조부터 돌아봐야 한다. 지배구조 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 저하를 우려케 하는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상근전문위원에 비전문가인 검찰 출신이 선임됐다. 전문상근위원은 전문성과 독립성, 대표성 면에서 유자격자여야 한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의 투자기업 주주권을 자문하는 기구로서 그간에도 금융 회계 전문가가 주로 맡아왔다.

연 매출 25조 원, 재계 서열 12위의 거대 기업 KT를 이끌 CEO는 경영 능력이 출중해야 한다. 조직의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전략과 전술을 실행하며 구성원을 이끌 발군의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정권에 잘 따를 자보다 고객편익과 주주가치를 높일 인물이 적임자다. 정권이 주인 없는 소유분산 민영기업의 자리까지 탐을 내면 안 된다. ‘나의 사람’을 꽂으려 할 게 아니라 ‘나은 사람’이 뽑히게 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리, 인사가 만사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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