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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자질과 역사의식
리더의 자질과 역사의식
  • 김태희
  • 승인 2023.04.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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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칼럼] 나라 안팎으로 어지럽다. 이런 혼란을 극복할 리더십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정작 문제의 원인은 리더십의 빈곤이 아닐까.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무엇일까. 시험 삼아 요즘 주목받는 챗지피티에게 이리저리 물어보았다. 상황과 역할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전제를 붙이면서, 대략 비전, 정직성, 전략적 사고, 소통 능력, 감성 지능 등을 열거했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자질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족도 달았다. 그럴듯한 답변이었다. 필자가 한번은 챗지피티에게 전통시대의 어떤 개념을 물었더니 횡설수설해놓고도 뭔가 대답한 것처럼 뻔뻔하게(?) 군 적이 있었다.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막스 베버가 정치가에게 중요한 자질로 든 세 가지가 떠오른다. “[대의에 대한 헌신을 뜻하는] 열정, 선의를 내세워 변명하지 않고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의] 책임감, 그리고 [사태를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균형적 현실 감각이 그것이다.”(막스 베버 저자(글) · 박상훈 번역, <소명으로서의 정치>, 후마니타스 , 2021, 92쪽 참조)

정치 지도자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릇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건만, 권한만 누리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이 횡행하고 있다. 균형감각 또한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다. 정치적 문제들은 통상 딜레마적 상황일 경우가 많다. 충돌하는 여러 가치와 이해관계 사이에서, 혹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할 줄 아는 균형감각이 절실하다. 이러한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은 역사의식과 결부되어야 한다. 리더의 덕목으로 역사의식을 추가한 것은 요즘 상황 탓일 게다.

개인, 국가공동체, 인류는 각각 나름의 시간을 전제로 하는 역사적 존재이다. 정치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안고 있는 여러 문제는 과거의 내력을 갖고 있다. 또한 과거에서 연유한 여러 맥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내력과 맥락을 잘 알고 이해해야,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고 바람직한 미래를 향한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이번에 정부가 선제적 양보를 통해 한일관계의 과거를 털고 미래로 가야한다고 강조하지만, 이것은 일방적 희망에 불과한 것 같다. 일본 정부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바로 독도가 그 척도이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1905년 2월에 시마네현(島根縣) 고시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여 오키도사(隱岐島司) 관할의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던 일이 있다. 이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영국의 지지를 확보한 가운데 이뤄진 조선 병탄의 신호탄이었다. 일본은 다시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장차 분쟁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이런 한-일 관계의 난맥상은 사실 미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대립할수록 일본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은 잃을 게 생긴다. 패전국 일본의 지위를 정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에서부터 그랬다. 종전(1945) 후 미-소 사이가 냉전 대립관계로 바뀌고,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 맺어진 조약에서 일본은 전범국이 아닌 파트너로 변신했다. 조약 준비 초기에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명시되었는데 최종 조약에서는 사라졌다고 한다. 불씨를 남겨둔 것이다.

위안부, 강제징용에 대한 최근 우리 정부의 대응의 배후에도 미국이 있다. 그 뒤에는 또한 일본의 각별한 외교적 활동이 있었을 터이다. 각국 정부는 정부가 관여하기에 껄끄러운 사안에 관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행정부가 시민사회의 노력과 사법부의 고민까지 어깃장을 놓으면서 상황을 더욱 궁색하게 하고 있다. 역사의식의 빈곤과 전략적 사고의 부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서 나름 이득을 얻고 있다. 과거 조선도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나름 이득을 취해왔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사대가 이념화되면서 경직되어 세계질서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변화와 추세를 읽고 적절히 예비하고 대응해야 한다. 더욱이 요즘 미국의 처지가 어려워지면서 여러모로 각박해지고 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묻지마 식으로 한미일 동맹만 외치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태도다.

리더십이 아쉬운 때다. 국가적 정치 리더십은 단순히 한 정치 리더의 원맨쇼일 수 없다. 집단적 리더십 과정의 산물이다. 건강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책임의식이 충만하고 균형감각이 잘 발휘된 리더십을 보고 싶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김 태 희(역사연구자)

- 전 다산연구소장, 전 실학박물관장

- 저서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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