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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가 웬 말인가, 정신 나간 LH
‘순살 아파트’가 웬 말인가, 정신 나간 LH
  • 나병문
  • 승인 2023.08.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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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문 칼럼]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의 원인은 철근 누락이다. 한데 이런 사례가 하나둘이 아닌 모양이다. 점검 결과,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원인으로 꼽히는 무량판 구조로 시공한 아파트 가운데 무려 15개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 기둥에서 보강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국의 공공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그와 같은 사례가 속속 밝혀지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허술한 공사 관리·책임 문제가 새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철근 누락 아파트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민간 발주 아파트 100여 곳에 대해서 추가로 안전 점검을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당황한 LH도 부랴부랴 대책을 발표했다. 이미 입주를 마친 5개 단지 중 1개 단지는 보완 공사 진행 중이고, 4개 단지는 정밀 안전 점검 후에 보완 공사를 할 예정이란다. 아직 입주 전인 10개 단지 중에서도 6개 단지는 보완 공사가 진행 중이고 나머지 4개 단지도 입주 전에 보완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일차적인 책임이야 공사비를 줄여 부당이익을 취하려는 업체에 있다고 할 것이나, 그렇다고 감독 임무를 도외시한 LH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알다시피, LH의 관리 부실과 안전 불감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러저러한 사고가 심심찮게 터지면 갖은 핑계를 대며 면피하기에 바빴던 그들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허술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그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여전히 빈번하게 터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선진국 시민의 자긍심을 여지없이 짓밟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LH가 뒤늦게 발표한 대책이란 것도 여론에 밀려 뒤늦게 사후약방문을 들고나온 격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시공사에만 책임 떠넘길 사안 아니다

LH는 철근 누락이 시공사의 과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사 발주부터 설계·시공·감리까지 공사 전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그들이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우기는 건 비겁하기 짝이 없는 면피성 행위다. 사방에서 비난이 쇄도하자, 그제야 LH 사장도 "그동안 LH는 주택에 대해서 발주만 했지, 공사엔 관심이 없었다. 사장으로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LH는 모든 분야에 대해 책임질 수밖에 없다"라며 뒤늦게 책임을 인정했다.

일각에선 무량판 구조 공법이 사고 원인이 아니냐며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무량판의 구조적 위험성보다는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운용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크다고 한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기 때문에 기둥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철근을 튼튼하게 감아줘야 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철근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건설업자의 말처럼 무량판 구조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고가 난 검단 아파트 붕괴도 발주자인 LH 측 설계 오류가 근본 원인이었다. 한 건설업자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짓는 아파트에서 철근을 빠뜨린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LH가 시공사에 이런 도면을 넘겨줬다는 건 제대로 확인도 안 했다는 의미”라며 성토했다. 건축을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힘없는 시공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는 억지 주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LH는 상당수 아파트를 무량판 구조로 짓는데, 이는 공사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원가 절감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LH가 시공사에 넘겨주는 설계서 상당수가 엉터리라는 점이다. LH 업무 시스템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밖에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 업계 주위에선 뿌리 깊은 안전 불감증을 끊임없이 지적했었다. 하지만 귀 기울이지 않다가 끝내 이런 변고를 당하고 나서야 허둥대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전반적 개혁 만이 LH 생존의 유일한 길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민간 아파트 중 일부는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건물 붕괴 시 인명피해는 불문가지다. 아파트라는 대규모 건물의 특성상 그 규모도 엄청날 것이다. LH의 허술한 공사 관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에 국토부는 민간 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조사 대상 아파트 단지도 수백 개에 달하므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자 정치권도 가만있지 않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LH를 강하게 꾸짖는 중이다. 그들은 LH가 설계·시공·감리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않았고, 관리 감독 책임에도 무책임했다고 질책하면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들에겐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런 공허한 목소리를 내는 시간에 제대로 된 법안 하나라도 만드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책임자에 대한 징계와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그는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할 LH 공기업이 지은 아파트에서 이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LH에 대한 감독 부처로서, 공공주택에 대한 사업 감독을 책임지는 국토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직접 짊어지고 이런 문제들을 원칙대로 처리하고 국민의 의혹이 없도록 철저하게 대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조직의 존폐를 고민할 만큼 중차대한 사건이다. LH는 자신들의 존립 목적을 잊지 않았는지부터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나아가 잘못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조직을 해체에 가까운 수준으로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참에 전관예우, 이권 개입 등에 관한 의혹을 훌훌 걷어내고 확실하게 거듭나야 한다. 과거처럼 미봉책을 앞세워 적당히 넘어가려 든다면 국민이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SN경영연구원장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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