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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인재 채용’, 특정 대학 동문회되는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특정 대학 동문회되는 공공기관
  • 권의종
  • 승인 2023.10.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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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가 경쟁을 누르고 예외가 원칙을 넘보는 제도는 실패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이 어언 시행 10년째다. 지역인재 채용은 지방 이전 공공기관이 소재지 대학 졸업자를 일정 비율 이상 뽑도록 하는 제도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153개 수도권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이에 발맞춰 이전 공공기관에서 지역인재 채용 제도가 도입됐다.

지역인재 채용 목표치는 2018년 18%부터 시작됐다. 매년 3%포인트씩 올라 2022년 30%에 이르렀다. 제도가 엇나간다. 특정 대학 편중이 심해진다. 서울 출신의 지역 이동을 막아 전국적 인재 균형을 이루려던 애초 취지와 달리 지역 내 인력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중앙일보가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과 함께 지방으로 이전한 임직원 500인 이상 공공기관 19곳의 2020~2023년 지역 인재 합격자 출신학교 현황’을 조사한 결과가 놀랍다. 특정 대학 쏠림이 지나치다. 어느 한 대학의 출신자 비율이 전체 지역인재 합격자의 절반을 초과하는 공공기관이 전체의 3분의 2를 넘는다. 

전북 소재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전형에서 전북대 출신이 70~80%를 차지했다.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2020~2022년까지 지역인재 대졸 합격자 142명 중 112명, 78.9%가 전북대 졸업자였다. 한국식품연구원은 합격자 9명 중 8명, 88.9%가 전북대 출신이었다. 광주·전남에서는 전남대 출신이 강세다. 한국농어촌공사의 경우 지난 3년간 지역인재 합격자 43명 중 32명, 74.4%가, 한국전력공사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합격자 337명 중 203명, 60.2%가 전남대 출신자이었다. 한전KDN도 같은 기간 합격자 108명 중 65명, 60.2%가 전남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특정 대학 쏠림, 서울 출신에 역차별, 지역 출신에 불이익

대구광역시에서는 경북대, 경남에서는 경상국립대로 쏠림이 현저했다. 대구로 이전한 한국가스공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체 합격자 53명 중 34명, 64.2%가, 신용보증기금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총 126명 중 73명, 57.9%가 경북대 출신이었다. 경북에 소재한 한국도로공사는 48.1%가, 한국전력기술은 62.1%가 경북대 출신으로 집계됐다. 

지역 대학은 그래도 성에 안 찬다. 공공기관 채용을 더 늘리기를 바란다. 지방 소멸에 대비하려면 더 많은 지역인재 채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현행 30%인 지역인재 채용 비율을 50%로 올릴 것을 주장한다. 지난해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26개 지방 4년제 대학 입학처장 협의회가 ‘공공기관 2차 이전과 지역인재 채용 비율 50% 확대’를 촉구했다. 지역에 기반을 둔 국회의원도 지역인재 채용 비율을 늘리는 법 개정안 발의에 경쟁적이다. 

지역인재 채용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큰 쟁점은 지역인재의 기준이다. 혁신도시법에 따라 지방 인재는 최종 학력,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소재지로 측정된다. 지방에서 초중고를 나와 수도권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으로 돌아와 취업할 때는 지역인재 혜택을 못 받는다. 반면, 초중고를 수도권에서 마친 거주자가 지역 대학을 졸업하면 지역인재에 해당한다. 명백한 논리적 모순, 엄연한 역차별이다. 

지역 간 형평성도 문제다. 지역별 공공기관 수와 대학 수가 차이가 있는데도 채용 범위를 이전 지역으로 한정하고 채용 비율을 같게 적용하다 보니 유불리가 발생한다. 가령, 4년제 대학 수가 부산은 14개, 제주는 2개인데 채용 비율은 30%로 동일, 부산에 있는 대학 출신은 제주에 있는 대학 출신보다 불리하다. 이 밖에도 개인의 평등권과 자유권 침해, 블라인드 채용과의 모순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역인재의 채용 비율은 극소화, 지원 범위는 극대화해야 

지역인재 채용의 또 다른 피해자는 공공기관이다. 인력 하향 평준화를 피할 수 없다. 공기업도 기업이고, 경영은 ‘사람 장사’다. 우수 인재를 유치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지역인재 채용 확대가 공공기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면 공기업은 ‘공(空)기업'이 되고 만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공공기관은 꿀 먹은 벙어리 행세다. 서슬 퍼런 정부에 잔뜩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못하고 속만 끙끙 앓고 있다. 애꿎은 채용절차 탓이나 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을 하다 보니 뽑아놓고 보면 합격자 출신 대학이 1~2곳에 몰려 있다“며 남 말하듯 한다. “지원자 풀이 좁아 어쩔 수 없다"며 "지역 소재 대학이 한정돼 있어 특정 대학 쏠림을 피하기 어렵다"는 변명을 쏟아낸다. 

지방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두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 대학 출신을 우대하려는 정책적 취지는 십분 이해된다. 그래도 정도껏 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공공기관이 특정 대학 동문회로 전락할 판이다. 인사관리 등 경영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일부를 우대하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에 해당하는 지역인재 채용은 최소 수준에 그쳐야 맞다. 지역인재의 채용 비율은 극소화하고 대상과 범위는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시·도 단위 기준의 채용 대상을 호남권·영남권·충청권 등으로 광역화하거나 지방 전체로 확대하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지역 초중고 출신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규제가 경쟁을 누르고 예외가 원칙을 넘보는 제도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제도를 시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잡아야 한다. 시행 10년을 맞아 이런저런 역기능이 불거지는 지역인재 채용. 과감히 손볼 때도 됐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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