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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행동하는 양심’, 한국 정치의 ‘행동하는 앙심’
에밀 졸라의 ‘행동하는 양심’, 한국 정치의 ‘행동하는 앙심’
  • 권의종
  • 승인 2023.11.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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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당이 선호하는 사업의 예산은 마구 올리면서, 다른 당이 추진하는 사업의 예산은 눈에 불을 켜고 깎아...자기 이익 말고 공익 책무 다하는 ‘좋은 국회’ 기대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목로주점>을 쓴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를 이해하려면 ‘드레퓌스 사건’을 알아야 한다. 1894년 참모본부에서 근무하던 프랑스 포병 대위 드레퓌스가 반역죄로 체포된 사건을 말한다. 보불전쟁 후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휩쓴 군국주의, 반유대주의, 강박적 애국주의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한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를 놓고 프랑스 사회가 격렬하게 투쟁했던 정치적 스캔들이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유린, 간첩 조작 사건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드레퓌스의 필체가 프랑스 정보요원이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에서 빼돌린 문서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에 있는 속칭 '악마의 섬'에 유배된다. 범행의 증거, 동기, 시기, 방법 등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기소됐다. 실질적으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가 드레퓌스를 진범으로 몰아갔다. 1897년 진범이 구속됐으나 군부는 사건을 은폐 조작 후 진범을 풀어 줬다. 

격노한 에밀 졸라는 1898년 1월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장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신문에 게재, 군부의 부도덕성을 대중에 고발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세계 각지에서 3만 통 넘는 격려의 편지와 전보가 쏟아지며 그를 지지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뉴욕 헤럴드에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나지만,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는 기고문으로 지지를 표했다. 

1904년 드레퓌스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고, 1906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며 사건은 종결됐다. 사실 졸라는 이 일에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됐다. 인세 수입으로 넉넉히 생활할 수 있었고 문학의 거장으로 존경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진실의 편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앞장서 보여 줬다. 

반대를 위한 반대, 선량치 못한 선량(選良)

​행동하는 양심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개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쓴 명언이자 어록이기도 하다. 2006년 전남대와 공주대 특별강연에서 처음 언급했다. 2009년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국제포럼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라고 연설했다. 실제로 그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독재와 싸웠을 때부터 이 말을 교훈으로 여기고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 야고보서 2장 17절과 26절이 의미심장하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 15절과 16절은 더 아프게 찌른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 하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한국 정치에는 행동하는 양심이 안 보인다. 오히려 ‘행동하는 앙심’이 준동한다. 대의기관의 역할이나 책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슨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한다. 자기 당이 선호하는 사업의 예산은 마구 올리면서, 다른 당이 추진하는 사업의 예산은 눈에 불을 켜고 깎으려 든다. 선량치 못한 선량(選良)의 실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전 분야 예산 1,820억 원 삭감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혁신형 소형모듈 원자로(i-SMR) 기술 개발 333억 원, 원자력 생태계 지원 1,112억 원, 원전 수출을 위한 수출보증 250억 원, 원전 등 무탄소 에너지 확산을 위한 CF 연합 6억 원, SMR 제작지원센터 구축을 위한 예산 1억 원을 잘랐다. 

자당 선호 예산은 ‘왕창’, 타당 추진 예산은 ‘싹둑’

최대 쟁점은 연구개발(R&D) 예산. 정부는 2024년 과학기술계 연구개발 사업 예산(21.5조 원)을 전년보다 13.9% 줄여 세웠다. 이에 야당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심사소위에서 정부 예산안 중 첨단 바이오 글로벌 역량 강화 등에서 1조1,600억 원 줄였다. 대신 과학기술계 연구원 운영비와 4대 과학기술원 학생 인건비 등 R&D 예산은 2조 원 늘렸다.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는 새만금지구 내부개발과 신항만 건설 비용 2,902억 원 증액했다. 

국토위 전체회의에서도 마찬가지.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건설 857억 원, 새만금 신항 인입 철도 100억 원 등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 예산은 설계비 123억 원 중 61억 원을 깎았다.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정부가 전액 삭감한 지역화폐 예산을 7,000억 원 증액했다.

청년 예산을 놓고 벌이는 기 싸움도 볼만하다.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 청년 일자리 정책인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 예산 4,200억 원 복원을 요구했으나 여당이 거부하자, 야당은 윤석열 정부 사업인 청년 취업 관련 예산 2,382억 원을 감액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 일 경험 지원 1,663억 원과 청년 니트(NEET)족 취업 지원 706억 원은 모두 깎였다. 

타 부처 청년 예산도 수난. 교육부의 ‘한미 대학생 연수’ 예산은 63억 원 중 18억5천만 원 줄였다. 6억 원이 편성된 ‘한일 대학생 연수’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보건복지부의 ‘청년 마음 건강 지원 사업’은 38억 원 중 2억 원, 국토교통부의 청년 정책 진흥 사업비도 21억 원 중 4억 원 줄였다. 예산이야 어떻게든 처리될 것이나,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자기 이익을 구하는 ‘나쁜 국회’에서 공익 책무를 다하는 ‘좋은 국회’로 환골탈태하는 일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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