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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헌법 경제 질서 규정과 자본주의 발전국가
제헌 헌법 경제 질서 규정과 자본주의 발전국가
  • 임수환
  • 승인 2023.12.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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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환 칼럼] 제헌 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정의의 구현과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정의는 균등 경제다. 말하자면 제헌 헌법 제84조는 균등 경제 구현과 균형 있는 국민 경제 발전의 두 원칙이 시장자유주의를 제약하는 구조다.

학계 다수설은 제헌 헌법이 사회적 기본권에 해당하는 균등 경제 원칙을 채택하게 된 연원을 독일 바이마르 헌법(1919)에서 찾는다. 바이마르공화국 건설 당시 독일인들은 러시아 혁명(1917)으로 집권한 볼세비키들의 계급 혁명 수출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적 기본권을 헌법에 규정하게 됐다. 

우리 건국 지도자들은 아직 산업화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급 혁명 수출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이미 유럽 최대의 산업 경제를 건설했던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 제정자들과 다른 처지였다.

바이마르 헌법이 사회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면, 신생 대한민국은 균등 경제 구현과 국민 경제 발전이라는 이중의 개입 명분을 갖게 됐다. 제헌 헌법상의 경제 질서가 지향하는 바가 자유경제인지, 아니면 통제/계획경제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학자들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여러 설명을 내놓았다. 이들 다양한 주장이 수렴하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제헌 헌법이 자유경제나 통제/계획경제 양편을 모두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 경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통제나 계획이 용납된다는 것이다.

자유경제와 통제/계획경제라는 모순된 개념을 어떻게 뒤섞어 경제를 운영해 갈 것인지는 역대 정부들에 주어진 수수께끼가 됐다. 역대 정부는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유경제와 통제/계획경제의 모순된 개념을 뒤섞으며 현실 문제에 대응해 가는 과정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고도성장 단계로 접어들었고, 이후 모순적 개념 혼합의 원리를 밝혀내는 ‘발전국가론’이 미국 학계에서 제기됐다. 

버클리대학의 정치학자 차머스 존슨은 1982년에 출간한 저서 ‘통상산업성(MITI)’에서 일본 정부가 산업정책으로 시장에 개입해 전후 고도성장을 이끄는 ‘자본주의 발전국가’의 원리를 밝혔고, 1987년 논문에서는 자본주의 발전국가 개념을 한국과 대만의 고도성장에도 적용했다.

자본주의 발전국가는 경제 발전을 정책적 우선순위의 최상위에 두고 전략적 목표로 설정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다만 시장순응적(market-conforming) 방법을 채택해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서 사적 영역을 인정한다. 존슨은 한국, 일본, 대만이 성장의 과실 중 투자자금을 제외한 부분의 분배에서 공정성을 유지함으로써 경제 발전 우선 정책을 장기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봤다.

자본주의적 발전국가라는 개념에서는 기업의 자유와 정부의 통제/계획이 모두 경제 발전에 기여하게 되므로 제헌 헌법 경제 질서 조항에 포함된 균등 경제 구현, 국민 경제 발전, 개인의 경제상 자유 향유가 병행될 수 있다. 

존슨은 자본주의적 발전국가가 통제와 계획으로 시장에 개입하면서도 민간 기업의 활력과 시장 메커니즘을 존중함으로써 레닌주의 경제가 빠지는 함정, 즉 관료주의, 부패, 개인의 창의성 말살, 비효율적 자원 배분을 피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의 평가는 한국 발전국가의 성공과 북한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임 수 환 (suhwan.lim@gmail.com )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원
       국립대만대학교(NTU) 정치학과 교환교수
       Journal of East Asian Affairs, 편집장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  서

        대한민국과 경제적 민주주의, 북코리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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