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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에도 있는 '온라인 시장', 금융에는 왜 없나
농산물에도 있는 '온라인 시장', 금융에는 왜 없나
  • 권의종
  • 승인 2023.12.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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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의 활로, 소비자 편익 증대를 위한 디지털 혁신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농림축산식품부가 큰일을 했다. 유통 마진을 줄이는 '24시간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개장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온라인상에서 24시간 거래하는 전국 단위의 도매시장이다. 국내 처음이자 세계 최초다. 3~4단계에 달하는 유통단계가 축소됨에 따라 비용 절감과 농산물 가격안정이 예상된다.

농식품부 장관이 자랑할 만도 하다. '온라인 가락시장'을 만든다는 목표로 2027년까지 3조7,000억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포부가 당차다. 온라인 도매시장은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농산물 유통의 디지털 혁신’을 대표하는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농식품부가 민관 합동 개설 작업반을 구성해 준비에 나선 지 10개월 만에 공식 개장에 이른 것이다.

별 게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전국 농산물 거래의 ‘허브’ 역할을 하는 도매 시장 기능을 단순히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국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농산물을 거래하는 인터넷 플랫폼쯤으로 가벼이 볼 수 있다. 큰 착각이다. 유통 구조가 복잡다단한 농산물 도매시장의 온라인 구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실로 지대하다.

1985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개장 이후 오프라인 도매시장 구조에 혁명적 변화다. 농가→산지 유통인→도매시장(도매법인·중도매인)→소매업자→소비자로 이어지는 공급 단계가 판매자(공판장·도매시장법인·산지출하조직)→구매자(중도매인·식자재마트·가공업체)→소비자로 단순해진다. 마트(소매업체)의 경우 전국 생산자의 상품을 검색해 산지로부터 직접 공급받을 수 있다. 유통단계마다 붙는 수수료와 운송료가 줄고 도매시장 간 칸막이도 사라지게 된다.

예금시장은 온라인, 대출시장은 오프라인 구조

농산물 유통비용 절감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중간 비용 축소는 농가 소득을 높이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개장 전 한 달간의 파일럿 사업 111건 거래에 대한 분석 결과가 고무적이다. 온라인 거래는 오프라인 거래에 비해 농가 수취가격을 4.1% 높인 반면, 소매단계 구매가격은 3.4% 낮춘 것으로 조사됐다. 유통경로 단축으로 농가가 부담하는 수수료와 운송비가 각각 30% 넘게 감소, 전체 유통비용이 7.4%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온라인 도매시장이 활성화될 경우 2027년에 가면 연간 7,000억 원의 유통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내다본다.

정작 온라인 시장이 필요한 곳은 따로 있다. 금융산업이다. 농산물에도 있는 온라인 시장이 금융에는 없다. 예금시장은 온라인화가 된 지 오래이나, 대출시장은 여전히 오프라인 구조다. 예금과 송금은 PC나 모바일을 통해 이뤄지나, 대출은 대면 거래 중심이다. 대출을 받으려면 은행 문을 두드려야 하고 대면 상담과 서류 제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심사가 까다롭고 의사결정도 부지하세월이다.

대출 온라인화는 재화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재화 유통은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 시장을 대체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 농산물만 하더라도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중도매인이 직접 품질을 점검하여 매입해야 한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농산물 유통단계에서 선별작업을 해야 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금융서비스는 그럴 일이 없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고 품질에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대출도 농산물처럼 전국 단위의 24시간 온라인 시장이 긴요하다.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온라인 대출장터’가 운용된 바 있다. 대출 기능에 경매 기능이 결합된 세계 최초의 시스템이었다. 은행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대출 경쟁을 촉진, 직·간접적 금리 인하 효과가 최대 73bps(0.73%)로 나타났다(강맹수, 권의종 & 이군희, 2012). 시대를 너무 앞선 때문이었을까. 3년을 못 넘기고 장터 문이 닫혔다. 차려준 밥상도 못 찾아 먹은 꼴이 되고 말았다.

온라인 대출은 은행과 소비자, 금융발전에 기여

온라인 대출의 구조는 심플하다. 대출 이용자가 온라인상에 원하는 금액을 입력하면 전국의 관심 있는 은행 영업점이 대출 의사와 가능 이자를 제시한다. 수요자는 그중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은행 영업점과 약정하면 된다. 은행 방문 없이 온라인상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다. 시간 단축과 절차 간소화로 은행과 대출 이용자 모두에게 유익이 된다.

금융발전에도 기여한다. 금융시장이 정부 등 외부 간섭이 아닌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금리가 수요 공급의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금리 왜곡이 생길 수 없다. 독과점 구조하에서 은행이 고금리로 배 불린다는 비난이 나오기 어렵다. 대통령이 '은행의 종노릇' 등의 용어로 은행권을 비판할 일이 없다.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사 회장단을 불러놓고 "금융권의 역대급 이자수익 증대는 국민 입장에서는 역대급 부담 증대를 의미한다"며 직격탄을 날릴 이유가 없다.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소비자보호법 상의 적합성 원칙을 들먹이며 은행을 다그칠 필요도 없다. ‘횡재세’를 거둬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 또한 나오기 어렵다.

혁신 부재의 현실은 일차적으로 금융회사에 원인이 있다. 경쟁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일이 터지면 금융회사를 혼내는 강박적 통제가 고작이다. 국내 은행이 해외로 뻗어가지 못하고 안방에서 이자 장사나 하며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이유다. 적수이부(積水易腐), 고인물은 썩으나 유수불부(流水不腐),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 터. 한국 금융의 활로는 소비자 편익 증대를 위한 디지털 혁신에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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